행복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된 것은
아마도 30대 무렵부터였던 것 같다.
그때에는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행복의 기준으로 삼았던 것 같다.
왜냐하면 당시의 삶은 매우 힘들고 불행했기 때문이다.
당장의 삶이 매우 어렵고 불편하고 끝이 없어 보였다.
일주일 내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 했고,
그로 인해 정작 하고 싶은 일은 거의 하지 못했다.
그런 삶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 삶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었다.
그런데 50대가 된 지금 내가 바라는 행복은,
바로 지금의 일상이 지속되는 것이다.
가족의 건강과 관계, 하고 있는 일의 지속.
어느 날 이렇게 행복의 기준이 바뀌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게 되었을 때,
아, 나도 이제 나이를 먹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새롭고 지금보다 더 나은 삶에서 행복을 찾는 게 아니라,
지금의 삶이 지속되는 걸 바라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행복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게 된 이유는 무얼까?
내가 원했던 행복에 다다랐기 때문인가?
아니면 행복에 대한 더 이상의 추구를 포기했기 때문인가?
내가 30대에 원했던 행복이란, 힘들었던 당시의 삶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었다.
하고 싶은 일 대신, 생존을 위해 하고 싶지 않은 일만 하며 사는 것으로부터.
그때에 비하면 지금의 나는, 하고 싶은 일을 더 하며 살고 있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물론 여전히 하고 싶지 않은 일도 하고 있지만 절망적인 수준은 아니다.
분명히 내가 원하는 일을 남의 눈치 크게 보지 않고 내 기준과 내 속도대로 하며 살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내가 원했던 행복에 이미 다다른 것인가?
그 행복이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
혹시 내가 정말 원했던 행복을 포기한 건 아닐까?
당시의 힘겨웠던 삶으로부터의 탈출 이상의 그 무엇을.
물론 그 이후로도 끊임없이 행복이란 뭘까를 고민하며 살았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이 시점에서 드는 생각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찾고자 했던 그 대단한 행복이란,
어쩌면 신기루였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힘겨운 삶으로부터의 탈출.
현재의 삶에 대한 만족.
지금 이 순간의 삶이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
더 이상의 행복에 대한 추구를 바라지 않음.
이게 행복인가?
아마도 행복의 한 형태일 수 있을지 모른다.
모든 것은 변한다.
그러한 변화로 인해
나의 삶은 달라졌고
도무지 행복을 느낄 수 없는 삶으로부터,
이제는 더 이상의 행복을 굳이 찾아야 하나 하는 단계에 도달했다.
그러한 여정에는
내 삶의 진정한 동반자와의 만남이 있고
학문보다 육아가 더 값진 생의 이유라는 깨달음이 있다.
결혼과 육아를 통해
나만의 삶에서 벗어나
남과 함께 살 수 있는 나로 변화하였다.
지옥과 같은 삶에서
이브와 이삭을 만나
에덴에 거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때가 차면 누구나 다 하게 된다는 결혼,
결혼하고 나면 또 다 하는 것처럼 얘기하는 출산과 육아.
그렇지만 그 모든 것들이 내게는 해당 사항 없음으로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결혼과 육아는
내 계획이나 내 예상과 다른 때와 길로 내게 찾아왔다.
무엇보다 열린 마음과 자세, 겸손이 필요했다.
더 낮아질 수 없는 단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문이 열리고 예상치 못했던 삶이 펼쳐졌다.
아마도 이런 얘기가
누군가에겐 꼭 필요한 이야기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얘기를 하고 싶다.
계속해서 다듬고 다듬어 쉽게 듣고 이해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그런 얘기를 말이다.
내가 젊은 나에게, 내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