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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마리 Apr 07. 2024

대담: <젊은 나에게>

-진행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자에게 묻고 답한다’ 시간입니다. 오늘부터 함께 만나 볼 책은 수필집 <젊은 나에게>입니다. 이 책의 저자 실마리 작가님을 모시겠습니다. 작가님, 안녕하세요!


-실마리

예,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진행자

최근 몇 권의 책을 연달아 내셨던데요. 바쁘셨을 것 같습니다. 물론, 보람도 크셨겠고요.


-실마리

예, 그렇습니다. 겨울방학 때 좀 쉬려고 했었는데, 결국 학기 시작할 때까지 매우 분주하게 보냈습니다. 처음에는 한 권만 내려고 했는데, 내친김에 그동안 생각만 해 왔던 계획을 실행에 옮기자는 마음이 들었죠. 그 결과 세 권의 책이, 그러니까 수필집, 시문집, 실용서가 차례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학생들의 요청으로 시작된 글


-진행자

오늘부터 살펴볼 책은 바로 그중 첫 번째로 나온 수필집 <젊은 나에게>입니다. 이 책은 어떻게 나오게 된 것인가요?


-실마리

예, 제가 몸담고 있는 대학의 학과에 학생회지가 있는데, 그쪽 학생들이 제게 원고를 청탁할 때마다 써 주었던 글이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진행자

학생회지라면 매년 정기적으로 나올 텐데, 그렇다면 그러한 요청으로도 꽤 많은 글을 쓰셨겠네요?


-실마리

그렇지는 않습니다. 학기별로 1번씩 나오니 1년에 두 번 정도 나오는 셈이죠. 매 호마다 원고를 요청받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진행자

매년 1편이라면 10년이라도 10편에 불과한데, 이 책에는 모두 35편의 글이 실려 있지 않나요?


-실마리

맞습니다. 청탁받은 원고만으로는 이 책이 나올 수 없었죠. 학생들이 글을 요청하지 않을 때에도 글을 썼습니다. 수업 시간 학생들에게 들려줄 만한 얘기들을요.


젊은 그가 아닌 나에게


-진행자

학생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책을 쓰셨다? 그렇다면, 이 책의 주요 독자는 대학의 학생들이 되겠네요?


-실마리

그렇습니다. 대학의 학부생과 대학원생들을 염두에 두었죠. 이 책의 제목 <젊은 나에게>의 ‘젊은 나’는 바로 그들을 가리킵니다.


-진행자

왜 ‘젊은 그에게‘나 ‘젊은 너에게’가 아니고 ‘젊은 나에게’인가요?


-실마리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젊은 날의 제가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좌충우돌하며 시행착오를 겪던 그때의 저 말이죠. 그래서 오래 전부터 이런 책을 쓰면 그 제목은 꼭 이렇게 지으리라 다짐하곤 했습니다.


-진행자

그렇군요. 자, 이제 책의 내용을 좀 살펴볼까요? 책의 내용은 ‘삶, 공부, 연구, 교육, 학문’, 이렇게 5부로 묶여 있던데, 처음부터 이렇게 염두에 두고 글을 쓰신 건가요?


-실마리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그때그때 마음 가는 대로 쓴 것을 나중에 묶다 보니 그렇게 되었죠.


공부와 연구의 차이


-진행자

이 가운데 ‘공부’와 ‘연구’는 얼핏 비슷해 보이는데, 어떻게 구분하신 건가요?


-실마리

예, ‘공부’는 남이 만든 지식을 배우는 것이고, ‘연구’는 내가 스스로 지식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저는 평소 그렇게 생각해 왔죠. 초중고를 거쳐 대학에 이르기까지는 주로 공부를 하는 거고, 대학원에 와서야 비로소 본격적으로 연구를 하며 석사, 박사 논문에 새로운 지식을 담아냅니다. 그래서 대학보다 대학원이 상위의 교육기관이라고 할 수 있어요.


-진행자

예, 그렇게 대학의 학부와 대학원을 구별할 수 있겠네요. 그런데 ‘교육’은 그 두 곳을 아우를 수 있을 것 같아 보이는데요.


-실마리

그렇습니다. 학부에서도, 대학원에서도 모두 교육이 이루어지니까요. 그래서 4부의 ‘교육’에서는 두 곳을 따로 구별하지 않고 이야기를 펼쳐 나갑니다.


대학생들에게 꼭 해 주고 싶은 이야기


-진행자

5부 중 첫 번째의 ‘삶’은 다소 막연하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특별히 염두에 두신 점이 있나요?


-실마리

특히 대학의 학부생들에게 꼭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로 올라왔는데 여전히 마음은 고등학교에 머물러 있거나, 그게 아니면 아예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갈피조차 잡지 못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죠. 인생의 매 단계마다 자신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정립해야 합니다. 그 얘기로부터 시작하여, 행복한 삶을 위한 진로 설계, 최선을 다하기 위한 삶의 자세, 삶의 토대를 이루는 믿음과 선택, 올바른 삶을 위한 길이면서도 남들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게 해 주는 마음가짐, 삶의 진실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예술에 대한 향유가 이야기됩니다.


-진행자

그런 내용들이라면 저도 얼른 배워 삶에 바로 적용해 보고 싶은데요!


-실마리

고맙습니다. 책은 그런 바람직한 ‘삶’의 방식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여, 공부를 잘할 수 있는 방법, 연구를 잘할 수 있는 방법, 진정한 교육이란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거쳐, 마지막에는 ‘학문’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됩니다.


공부의 노하우


-진행자

2부의 공부 잘하는 방법은, 정말 공부를 잘할 수 있게 해 주나요?


-실마리

예, 그렇습니다. 중학교에서 줄곧 전체 1등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이 들어 있습니다. 천재를 이기는 방법도요.


-진행자

구미가 확 당기는데요. 그렇다면 그런 내용은 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거 아닌가요?


-실마리

예, 그렇습니다. 초등학교부터 고3까지 입시와 관련된 공부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사실, 그러한 공부 방법은 대학이나 대학원에서도 그대로 통합니다. 남이 만들어 놓은 지식을 받아들일 때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 있습니다. 흔히 공부에는 왕도가 없다고들 말합니다. 그러나 그런 말은, 왕도를 걸어 보지 못한 사람들이나 하는 말이죠. 분명히 공부에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걸 똑바로 알고 곧바로 실천하면 공부를 잘할 수 있습니다.


-진행자

그런 공부 방법이 있다면 누구나 다 공부를 잘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실마리

원칙적으로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게 사실임을 제 삶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우선 저 스스로도 그런 방법으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고, 또 대학원 박사과정 시절 과외나 학원 강의에서도 정말 공부에 관심이 제로인 학생들에게 적용해서 통했던 방법이죠. 예전에는 수능 언어영역 시험이 120점 만점이었습니다. 그때 30점 받던 학생을 가르쳐 4개월 만에 100점을 넘겼습니다.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죠. 정말 짜릿했습니다. 제가 고2 여름방학 때 시작하여 성적이 수직상승했을 때 썼던 방식을 그때 그 학생에게도 적용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분야에서 좀 알려졌었죠. 그러다가 유학을 떠나게 되었지만요.


-진행자

저도 정말 배워 보고 싶은데요.


-실마리

읽어 보십시오. 그 방법이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너무 쉬워서 좀 놀라실 거예요. 진리는 간단한 것 같습니다. 그게 진리라는 걸 알기 힘들고, 알았다 해도 그걸 실천하는 건 또 다른 문제죠. 두 박자가 맞아떨어져야 기적이 일어납니다. 정말 그래요. 저는 그런 방법을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서 그들이 배우고 싶은 내용을 잘 배울 수 있도록 해 주고 싶습니다.


-진행자

근데, 그런 방법을 많은 학생들이 알게 되면, 음, 그러면, 경쟁이 더 치열해지지 않을까요?


-실마리

그렇게 되면 입시 제도가 바뀌겠죠. 누구나 제대로 공부하는 방법을 알아 공부를 잘하게 되면, 거기에 맞는 평가 방법이 개발되어야 할 거고, 더 수준 높은 공부 방법들이 개발되겠죠. 그런 사람들로 가득찬 대한민국이 세계를 선도하게 될 거고요.


-진행자

얘기가 그렇게까지 가나요?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입니다.


-실마리

그렇군요. 말이 나와서 한 번 그렇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진행자

예, 그런 공부 방법으로 천재를 이기신 거고요?


-실마리

예, 저 같은 지극히 평범한 학생도 천재를 능가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정말 짜릿했습니다. 천재가 무서운 게 아니라 천재적인 사고가 무서운 거죠. 천재만이 천재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일반인도 일정한 훈련을 통해 천재적인 사고를 할 수 있고 정말그렇게 하면, 사회에서는 그를 천재라고 불러줍니다. 저도 그런 천재가 되고 싶었죠. 후천적인 천재요.


-진행자

흥미진진한 얘기입니다. 그러한 얘기 말고도, 공부에 대한 원론적인 이야기나, 책이란 과연 무엇인가에 관한 대목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른들에게도 필요한 이야기


-실마리

제게는 그 모든 이야기들이 뼈아픈 경험들을 통해 삶에서 우러나왔습니다. 위기는 기회가 되었고, 제 삶이 바뀌었죠. 그래서 많은 이들과 그런 진실을 나누고 싶습니다. 특히 제가 대학에서 가르치는 학생들과요.


-진행자

물론 그렇겠지만, 공부에 대한 그런 노하우는 대학생들뿐만 아니라 고등학생이나 중학생, 아니 초등학생에게도 바로 적용이 가능할 것 같은데요? 학부모님들도 알아 두면 자녀 교육에 도움이 될 거고요.


-실마리

예, 그렇습니다. 그런 공부 방법은 아이들 교육에서도 필요하지만 성인의 학습에서도 그대로 유효합니다. 무언가를 배울 때 필요한 방법이니까요.


-진행자

이 책을 읽으신 어떤 분을 만나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분도 비슷한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비단 공부 얘기뿐만 아니라 이 책의 거의 모든 얘기는 학생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충분히 귀담아들을 만하다고요.


-실마리

고마운 말씀이네요. 저도 실은 그러기를 바랐습니다. 그렇지만 막연하게 독자층을 설정해 둘 수가 없어서 일단 대학의 학생들이라고 명시한 것이죠.


일상의 삶과 연구


-진행자

그렇군요. 흥미진진한 공부 이야기 다음에 나오는 건 ’연구‘ 이야기입니다. 왠지 좀 어려울 것 같은데요. 아까 연구란 건, 남의 지식을 배우는 차원을 넘어 자기 스스로가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 내는 거라고 하셔서요.


-실마리

잘 기억하고 계시네요. 새로운 지식을 생산한다는 건 무척 어렵기도 하지만 정말 짜릿한 일이기도 합니다. 세상에 없던 지식을 새로 만들어 냈다고 생각해 보세요. 바로 내가 말이죠. 무언가 창조해 낸다는 건 정말 놀랍고도 신기한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들이 하지 않는 질문을 할 줄 알아야 하고, 하나의 문제를 가지고 정말 오랫동안 생각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흔히 젊은이들에게 많은 경험을 하라고 충고하는데, 거기서 그치면 안 됩니다. 경험들로부터 그것이 가지는 의미를 곱씹어 찾아내지 못하면, 경험은 다만 기억으로, 결국엔 희미한 기억으로 사라지고 맙니다. 나중에 다시 같은 경험을 하면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 쉽죠. 체험하거나 접한 것으로부터 무언가를 이끌어내는 것, 그것을 3부 ’연구‘에서 다룹니다. 실은 일상 생활에서도 우리는 늘 연구하며 삽니다. 우리가 그걸 연구라고 느끼지 못해서 그렇지, 그런 연구 없이는 삶의 어떤 문제도 제대로 잘 해결할 수가 없죠.


-진행자

앞서 말씀 드린 그분도 비슷하게 말씀하시더라고요. 글쓴이가 하는 연구가 전문적이어서 잘 모르겠지만 글을 읽다 보면 정말 그게 뭔지 알고 싶어지더라고요.


-실마리

정말 기쁜 말씀입니다. 감사하고요.


교육에 관한 소름 돋는 이야기


-진행자

4부 ‘교육’에서도 정말 하고 싶은 말씀이 많으신 것 같았습니다. 감동도 있었고요. 정말 그런 일을 겪으셨다면 진짜 뿌듯하셨을 것 같아요. 피부에 이렇게 돋는 거, 그게 뭐죠? 갑자기 생각이 잘 안 나서. 아, 맞습니다. 소름이요.


-실마리

부끄럽지만, 당시 저도 그랬어요. 멍한 기분이 들기도 했고 울컥하기도 했죠. 정말 모두 따뜻한 기억이었습니다.


-진행자

교육에 대한 이야기는 어렸을 때 기억으로부터 시작하더군요. 아버지께서 엄하셨던 것 같습니다.


-실마리

예, 좀 그러셨어요. 불 같이 화를 내는 성격이셨죠.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크셨을 겁니다. 저는 머리가 꽤 늦게 트인 편입니다. 나이라는 개념도 7살 때 처음 알았고 제 이름도 초등학교 들어가서야 비로소 제대로 썼으니까요. 그런 제가 아버지 보시기에는 참 답답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런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화냄과 다그침이 아니라 인내와 지켜봄입니다. 저도 제대로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 아이도 좀 그렇거든요. 저는 그 아이가 앞으로 제 몫을 충분히 잘해 내리라 믿습니다.


교육이란


-진행자

교육이란 학생 스스로가 본인의 능력을 이끌어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실마리

우리나라에서는 답은 이미 정해져 있고 학생들이 그 답에 얼른 도달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걸 교육이라고 믿는 것 같습니다. 그런 교육은 창의성이나 자율성과는 참으로 거리가 멀죠. 학생 개개인이 다른 개성과 다른 목표를 가지고 있는데 오직 하나의 답을 향해 경쟁하도록 이끈다는 것이 정말 옳은 걸까요? 그러한 정답조차 학생 스스로 깨달을 수 있게 해 주어야 하는데 그마저도 하지 않습니다. 참으로 답답한 교육 현실이죠. 모든 교육이 입시 위주입니다.


-진행자

정말 생각할 때마다 절망적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돌파구를 찾으려 노력해 오셨죠?


-실마리

미력하나마 제게 주어진 여건에서 그렇게 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당장 수업부터 그렇게요. 수업의 기조와 구체적인 방식에서 어떻게 하면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고민의 결과를 실행에 옮기려고 했죠.


-진행자

그 과정과 결과를 이 책에 써 놓으신 거고요.


-실마리

그렇습니다. 강의 자체와 강의 교재 모두 개선해야 할 점들이 많습니다.


이런 수업 처음 들어요


-진행자

작가님 수업에서 어떤 학생이 대학 수업 처음 듣는 것같다고 했을 때 기분이 어떠셨나요?


-실마리

무척 기뻤던 것도 사실이지만, 제가 우려했던 게 정말 현실이구나 하는 생각에 암담하고 갑갑했습니다. 이제 대학은 더 이상 삶을 고민하고 진리를 사색하는 곳이 아닙니다. 대학 들어오느라 입시에 허덕이던 학생들이 이번에는 취업 전쟁에 휘말려 정신 못 차리는 곳이 대학이죠. 주어진 상황에서 스스로 사유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연습을 제대로 해 보지 못한 학생들은, 대기업에 취직해서도 기대와 너무 다른 현실에서 환멸을 느낀다고 합니다.


-진행자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환영받는 인재는 탁월한 문제 해결 능력을 가진 인재들이라고 하는데, 우리의 교육 현실은 그런 인재를 키우는 데는 정말 관심이 없는 것 같군요.


-실마리

정말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하기 시작해야죠. 제 삶의 모토 가운데 하나가,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거죠.


-진행자

작가님의 수업을 듣던 학생 하나가 기말 과제를 제출하며 학교를 떠나겠다고 메일을 보내왔을 때 심정이 어떠셨나요?


-실마리

처음에는 이게 무슨 일인가 했죠. 정말이요. 그런데 그게 제 수업의 기본 메시지였습니다. 언어학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 수업의 주된 내용이다 보니, 철학적인 대화가 많이 오갔습니다. 그러면서 자연히 자기 자신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많이 요구되었죠. 지금 대학원 수업을 듣고 있는 내가 정말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인지. 그러다 깨달은 거죠. 그 학생은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 깨달았고 그래서 과감히 학교를 떠나 자신의 길을 찾아 걸어갔죠.


-진행자

4부 교육에서 마지막의 글도 제목부터 심상치 않았습니다.


한국 판 죽은 시인의 사회


-실마리

아, ‘죽은 시인의 사회’요?


-진행자

그렇습니다. 모교의 첫 강의에서 호된 신고식을 치르셨던데요.


-실마리

예, 정말 똑똑한 학생들이자 고약한 학생들이기도 했습니다. 첫 대면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정말 처참한 기분이 들었었죠.


-진행자

그러나 마지막은 달랐잖아요. 처음과 정말 대비되는 마지막 시간이었습니다.


-실마리

지금도 그 일이 마치 영화 같은 결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때 학생들의 모습과 눈빛들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주인공 키팅 선생이 전혀 부럽지 않은 순간이었습니다. 정말 힘든 수업이었고 아마 평생 가장 기억에 남을 종강이었던 것 같습니다.


학문하는 삶


-진행자

이제 5부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나누고 나서 오늘 말씀을 마무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5부는 ‘학문’에 대한 것인데, 이곳은 ‘학문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라고 이해하면 될까요?


-실마리

훌륭하게 정리해 주신 것 같아요. 연구하는 삶에서 필요한 이야기들입니다. 무언가 최초로 발견하여 그것을 학계에 보고하고 주장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그때 필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죠. 저도 직접 겪어 보니 장난이 아닙니다. 저항이 매우 심하죠. 학계는 정말 보수적입니다. 바뀌려 하지 않죠.


-진행자

입장에 따라 그렇게 현실이 다르게 그려진다는 것도 참 흥미로웠습니다. 이론의 힘이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실마리

그게 학문하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입니다. 토마스 쿤은 그걸 패러다임이라고 했고, 미셸 푸코는 그걸 에피스테메라고 불렀습니다. 인식의 틀이라고 옮기면 어떨까 하는데요, 입장 혹은 관점에 따라 같은 사물이나 현상이 정말 달라 보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양한 시각과 입장이 있다는 걸 알아야 하죠. 그런 걸 대학 들어와 배워야 합니다. 대학원에서는 그런 바탕 위에서 자신만의 관점을 만들어 내야 하죠. 그게 이론의 창조입니다.


스승과 제자


-진행자

어렵겠지만 정말 멋진 일일 것 같습니다. 스승의 고뇌와 제자의 좌절을 통해 학문이 발전한다는 것도 인상 깊었습니다.


-실마리

스승이 언제나 앞서 가고 제자가 언제나 뒤따라 가는 것이라면 학문의 발전은 없습니다. 스승이 수십 년 걸려 이룩해 놓은 업적을, 제자는 몇 년 안에 배워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제는 스승을 능가해 앞으로 나가는 거죠. 공자는 그래서 후생가외라고 했죠. 후배가 무섭다는 겁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죠. 그래서 학자는 죽을 때까지 뒤쳐지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물론 제자들에게 추월을 당하는 건 시간 문제이겠죠. 그게 곧일 수도 있고 꽤 있다가일 수도 있겠죠.


-진행자

슬프기도 하고 숭고하게 느껴지기도 하네요. 아, 참, 대학원 다니시면서 고생을 많이 하신 것 같은데요.


-실마리

누구나 저마다 삶의 아픔이 있을 겁니다. 제게는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후 그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연구하는 것이 사치로 여겨질 정도로 제 삶이 팍팍해진 때가 있었습니다. 꽤 오랜 기간 그랬죠. 제 몸 하나 건사하는 게 아니라 가족들까지 책임져야 하는 시기였습니다. 그에 대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려면 앞으로도 꽤 많은 시간이 흘러야 할 것 같습니다. 그때 삶을 포기할까 하는 약한 마음도 몇 번 먹었죠. 또 한 번의 큰 위기였습니다. 그때 고민을 심각하게 했어요. 제게 주어진 암담한 현실을 바꿀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세상 대신 저를 , 저 자신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연구와 일의 우선 순위를 정반대로 바꾸었죠. 주객전도. 그랬더니 제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배우 비싼 수업료를 치렀고, 그 덕분에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그게 지금의 저를 있게 한 원동력입니다.


학문과 육아


-진행자

단 몇 줄의 글이었지만 아직도 그때의 고통을 삭이고 계시는군요. 마지막 글은 학문과 육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떤 분은 그 글을 읽고 전율을 느끼셨다고도 하던데요. 물론 그러한 깨달음도 쉽게 얻어진 것은 아니겠죠?


-실마리

결혼하는 것도 제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가진 게 워낙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저 하나만 바라보고 결혼해 준 고마운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로 인해 인생의 새로운 페이지를 열게 되었죠. 그 다음은 육아였습니다. 내 인생에 아이는 없구나 하고 포기할 무렵 아이가 생겼습니다. 늦게 난 아이를 키우는 나이 든 부모의 분투가 시작되었죠. 연구로 밤을 새우다가 이제는 1시간 30분마다 깨서 울어 대는 아이를 보면서 밤을 새우게 되었습니다. 체력의 한계도 한계였지만, 연구를 할 수 없는 고통이 매우 컸습니다. 그래서 또 한 번 인생의 높은 벽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진행자

결국 그때 또 하나의 커다른 깨달음을 얻으신 거군요. 학문과 육아의 목적은 결국 같다는.


-실마리

그렇습니다. 학문을 하는 목적도 인류를 위하는 것이고, 아이를 키우는 것도 결국 인류를 위하는 것입니다. 나는 한 사람에 불과합니다. 그런 한 사람으로서의 내가 다른 한 사람을 직접적이고 전폭적으로 위할 수 있는 길이 바로 육아였습니다. 이 얼마나 숭고하고 보람찬 일인가요? 육아는 잘난 사람만 할 수 있는 게 아니죠. 누구든 아이를 가진 부모라면 다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삶은 그토록 위대한 일을 평범한 우리 모두에게 열어 놓고 있었습니다. 부모가 되어 자식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도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를 위한다면 그것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정말 값진 일이라는 걸 깨닫고는, 이제 연구에만 목을 매는 일이 없어졌습니다. 삶은 그토록 아름다운 것이라는 걸 육아를 통해 깨달았습니다.


-진행자

다른 분들도 육아를 위해 자신이 그동안 해 왔던 일을 그만둘 때 그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이 글에서 학문을 하는 교수가 그런 말을 하니 어쩌면 그렇게 자신의 생각과 비슷한 생각을 할 수 있을까 하고 놀라셨다는 거죠. 길은 서로 통하는 것 같습니다. 깨달음은요.


책을 엮으며 생각을 엮다


-실마리

저 하나의 깨달음이었지만 그것이 다른 분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는 건 정말 기쁜 일입니다. 이 책을 엮고 나서 얻은 게 분명히 있습니다. 글 하나하나는 파편화되어 존재하지만, 그런 글들이 하나의 책으로 모여 일정한 주제로 분류되자, 생각이 더욱 체계화되고 더 큰 파급력을 가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제 학생들에게 조언을 해 줄 때 주제별로, 단계별로 더 체계적으로 조언을 해 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게 참으로 큰 기쁨을 가져다 주더군요.


-진행자

학생들 생각을 정말 많이 하시는 것 같습니다.


-실마리

저는 대학이 참 좋습니다. 대학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뜁니다. 91년에 대학에 들어와 지금까지 대학에서 지내고 있으니 34년째인데, 그래서 지겨울 만도 한데, 여전히 신입생 때처럼 가슴이 설렐 때가 많아요. 이곳에서 공부하는 학부생과 대학원생들에게 제가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해 줄 수 있고, 그 작은 말들이 결실을 맺게 되는 걸 종종 볼 때 이만한 보람을 또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제 학생들 몇이 모여 제게 조언을 구하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뜻을 같이하는 학생들이 저를 불러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합니다. 전공을 넘어 그런 학생들에게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줄 수 있다면 저는 앞으로도 정말 더욱 기쁘게 연구와 사유를 계속해 나갈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그동안은 제가 하고 싶은 말을 학생들에게 주로 들려 주었다면, 이제부터는 학생들의 말에 제가 더 귀를 기울이며 그들의 말을 듣고 싶습니다. 그러면서 저도 더 배우고 그들의 고민을 더 깊고 넓게 고민해 보고 싶습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정말 많습니다.


-진행자

오늘 우리는, 수필집 <젊은 나에게>를 쓰신 실마리 선생님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어떤 내용을 다루신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모든 궁금증이 다 풀린 건 아니지만, 이 책은 적어도 실마리 작가님께 매우 값진 인생 이야기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흔히 작가는 그 누구를 위하기 이전에 자기 자신을 위해 글을 쓰기도 합니다. 일종의 독백이지요. 그런 독백이 때로는 타인의 공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한 타인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저인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부디 마음의 문을 열고 이 책을 읽어 보시기를 권합니다. 아쉽지만, 오늘은 여기서 마쳐야 할 것 같습니다. 끝까지 함께하신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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