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왜 무언가를 이해하고 싶어 하는 걸까? 그것은 이해가 주는 마음의 안정, 평안을 얻기 위해서인 듯하다. 정신 분석의 사례를 보면, 정신 분석을 통해 본인의 아픈 과거나 현재의 마음을 이해하게 될 때, 정신적인 불안정성이 해소되거나 신체적인 병리적 증상마저도 즉각 개선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내게 벌어진 일에 대해 이해가 되지 않을 경우, 우리는 ‘무언가 잘못되었거나, 머지않아 잘못될 것’이라는 걱정과 근심에 무한히 빠지기 쉽다. 그러다가 별의별 억측과 과장된 상상, 심지어 망상에 사로잡혀 허우적대며 일상의 삶을 제대로 영위하지 못하기도 한다.
최근 일이다. 갑자기 귀가 먹먹해져 걱정이 들었다. 귓속을 들여다본 아내가, 내 귀 안이 꽉 막혀서 자기로서는 해결이 안 될 것 같으니 병원을 일단 들러 보란다. 날이 밝기를 기다려 이른 아침 병원에 갔더니 인산인해였다. 1시간 가까이 기다려 검진을 받고, 귓밥 등 물리적인 문제로 인한 것은 아니라는 설명을 들었다. 원인 불명의 급성난청이라는 진단과 함께 약을 4일치 처방해 주었다. 내가 가장 걱정하던 부분(귀 내부의 물리적인 문제)이 해소되자, 더 이상 쓸데없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정말 기뻤다. 근 이 주 동안 절정에 치달았던 공동 작업을 이제 마무리하며 과로를 줄이고 잠도 충분히 자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매우 피곤해졌다. 그러나 마음은 매우 가벼워져 아내가 도맡아 왔던 집안일 중 일부를 자청하는 등 의욕적으로 일상을 다시 살게 되었다.
이러한 체험을 통해 알게 된 것은, 이해가 마음의 안정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가였다. 개인의 삶에서 이해는 마음의 안정과 삶의 의욕에 대한 회복과 유지를 가능하게 한다. 인류의 차원에서도 이해는 민족과 사회, 국가 전체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 지속적으로 요청되어 왔다. 사물과 세계의 존재, 인식에 대한 이해는 사람마다, 학자마다, 학파마다, 시대마다, 지역마다 달라져 왔지만, 이해를 향한 그 열망만큼은 공통된 것이 아닐까 한다.
이해하고자 하는 욕망 옆에는 이해받고자 하는 욕망도 있다. 사실 두 번째 욕망이야말로 인간을 걱정과 근심의 나락으로 더 쉽게 빠뜨리는 것일지 모른다. 몇 시간 정도가 아니라 며칠, 아니 일생 전체를 좌우하는 관건이 될 수도 있다. 이런 문제를 가볍게 무시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그게 말처럼 정말 쉽지가 않다. 이해하는 것과 이해받는 것, 이해를 중심으로 회전하는 이 문제들은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나 가장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화두 중 일부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