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내가 되다
뭐라도 해야 돼서 살기 위해 책을 읽었다.
결혼을 하고 1년 만에 첫아이를 낳고, 그다음 해에 연년생 둘째를 품에 안았다. 그때부터 내 하루는 온전히 육아와 집안일로 가득 찼다. 남편은 회사일이 바빠
도와줄 시간이 없었고, 모든 일은 자연스레 내 몫이 되었다.
하루하루가 복사하듯 반복되면서 어느 순간 나는 나 자신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육아와 살림에 지쳐 다른 무언가를 할 여유는커녕, 그런 마음조차 사라졌다.
“이런 삶이 언제까지 이어질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고, 남편 뒤치다꺼리에 아이만 키우다 내 인생이 끝날 것만 같아 마음이 무겁고 우울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들 모임에서 “우리 이제 나이도 있는데 한 달에 한 권, 일 년에 12권 정도는 책 읽어야지!” 지나가듯 내뱉은 친구의 말이 내게 와 꽂혔다.
너무 바쁘고 피곤했지만,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은 지쳐 있었지만, 마음속에서는 책을 읽고 싶은 갈증이 솟아올랐다.
그렇게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나에게 변화가 일어났다. 텅 빈 것 같았던 내 머릿속이 차곡차곡 채워졌고, 죽어있던 나의 감각들이 살아났다.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일들을 할 수 있게 되면서 나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 조금씩 회복되었다.
책을 한 권 한 권 독파해 나갈 때마다 책을 통해 목표가 생겼고, 배우고 싶은 것들이 생겨났다. 1년에 120권 이상의 책들을 읽어나가면서 독서라는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다.
이런 시간이 나에게 주어진 것에 감사했고 그 시간이 너무 소중했다. 새로운 도전들을 하면서 용기를 얻었고 이 좋은 것들을 그냥 잊어버리기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 알고 있기보다는 예전에 나처럼 힘들어하고 있을 누군가에게도 나누고 싶었다.
그때부터 읽은 책을 간단히 기록하는 습관이 생겼고, 인스타그램에 책 계정을 만들어 책으로만 소통하기 시작했다. 꾸준히 책을 읽고 글을 올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욕심이 생겼다.
‘글을 잘 쓰고 싶다. 내가 쓴 글이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책을 통해 감동받고 채워지는 것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좋은 것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 마음으로 글쓰기를 시작했다. 블로그도 열어보고 일기도 쓰고, 필사도 하면서 조금씩 성장해 갔다. 글쓰기와 관련된 다양한 시도도 해보았다. 그렇게 글을 쌓아가던 중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알게 되었다. 다만 브런치는 누구나 글을 올릴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심사를 통과한 사람만 ‘브런치 작가’라는 명칭과 함께 글을 발행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매력적인 만큼 쉽지 않았다. 작가 신청은 번번이 떨어졌다.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걸 알았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했다. 마지막으로 기도하며 글을 보냈던 것이 작년이었다.
“이번에 떨어지면 제 길이 아닌 줄 알겠습니다. 이 길이 맞다면 붙여주시고, 붙여주신다면 열심히 해볼게요.” 며칠 뒤 도착한 메일을 열었을 때, 나는 믿을 수 없었다.
매번 보던 “아쉽지만…”이라는 문장이 아닌,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소중한 글 기대하겠습니다, 작가님.”이라는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나는 드디어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작가라는 명칭이 아직도 어색하고, 내놓을 만한 작품도 없지만, 그 순간은 내게 정말 큰 기도의 응답이자 앞으로 나아갈 원동력이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일일지 모르지만, 내게는 앞으로 가야 할 길의 커다란 이정표였다. 그리고 브런치에서는 매년 출판 프로젝트를 통해 새로운 작가들을 탄생시키며 출간의 기회 또한 제공해 주어서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여러 방면으로 도전할 수 있는 찬스와 계기를 마련해 주고 있어서 신뢰가 갔다.
이제 책과 글쓰기는 내 삶에서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책은 나의 영원한 친구이자, 나만의 고요한 시간을 채워주는 벗이 되었다. 책을 읽으며 배우고, 성장하고, 위로받는 이 시간은 내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선물이다.
그리고 조금 더 욕심을 내어본다. 인생의 중반 기로에서 새로운 꿈을 가져본다.
나 또한 겪어봤기 때문에 힘들어하는 누군가에게 자꾸 마음이 간다. 나의 문장들이 모여 외로운 누군가의 마음에 가 닿기를 바란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그 힘듦을 나도 안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것을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는 걸 아니까. 절대 쉬운 일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받은 조건 없는 사랑을 생각하며 나 또한 누군가에게 나눠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고 싶다.
그런 사람들로 인해 이 험한 세상도 조금은 더 따뜻해질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누군가에게 수고하셨다는 응원의 말을 전하고 싶었다.
아직은 많이 부족한 글이지만 작가라는 그 꿈을 가슴에 품어본다. 나의 글들이 누군가의 마음에 따뜻한 온기를 가져다줄 수만 있다면 나는 계속 도전할 거다.
브런치를 통해 멀게만 느껴졌던 작가라는 꿈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좋은 글들을 만나고 글을 쓰는 사람들을 만나고 또 글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말이다. 아직 이루고 싶은 꿈이 있음에 감사하며 오늘도 이렇게 끄적여 본다. 나의 꿈을 향해서.
#브런치10주년작가의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