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김현성, <자살하는 대한민국>
대한민국의 변화는 분명히 급격하고 파괴적이다. 우리는 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망하고 있는 것이다.
몇십 년만 있으면 나라가 망할 거라는 망국론은 인터넷 커뮤니티, 뉴스 댓글 어디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 원인으로 지적하는 것 또한 다양하다. 요즘 젊은것들이 문제다, 나이 든 사람들이 문제다, 출생률이 문제다, 과밀화가 문제다…. 문제시되어 보이는 어떤 하나의 현상에 손가락질하는 것은 간단하다. 그러나 <자살하는 대한민국>에서는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하나의 관점을 「돈」으로 정의한다. 한국인들에게는 돈이 부족하고, 그것으로부터 다른 모든 문제가 가지처럼 뻗어 나간다는 것이다. 단순하리만치 명료한 해답에 대해 작가는 조목조목 풀어 나간다.
소비는 많고, 소득은 적다
국제 무대에서 한국의 위상은 어느 때보다도 높고, 건국 이래 가장 풍요와 여가를 즐기는 사회가 되었는데 돈이 부족하다는 것이 어불성설로 느껴질 수도 있다. 이 점에 대해 작가는 한국인들이 자신의 생활 수준을 유지하기에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유지를 위해 내놓을 돈이 없다고 설명한다. 내놓을 여윳돈이 없다는 것은 첫째로 지출해야 할 돈이 많다는 이유일 수도 있고, 둘째 벌어들이는 소득이 적다는 이유일 수도 있다. 즉, 한국인의 돈 부족 현상은 소비와 소득의 측면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소비의 측면에서, 한국은 생필품과 식료품이 터무니없이 비싼 나라다. 필자도 최근 TV에서 여행 예능을 보았는데, 스위스같이 물가 높기로 유명한 나라도 마트 물가가 우리나라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조금 더 낮다는 사실에 놀란 적이 있다. 장보기 비용이 비싸다는 건 대부분 느끼고 있을 테지만, 실은 이 사실이 서민들의 생활을 심각하게 위협하지는 않는다. 반대로 생활에서 필수적이지만 물가가 아주 저렴한 분야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인프라와 서비스다. 이를테면 한국은 에너지를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데도 휘발유, 난방, 전력 등의 비용이 싼 편이다. 이러한 구조는 공공부문의 적자를 누적시키지만, 가격을 올리려면 일반납세자의 생활 비용이 너무 큰 폭으로 상승하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또, 각 가계에서 돈 들어갈 데가 마트에만 있는가? 아이가 있다면 너도나도 지출하는 사교육비, 수도권으로 모두가 진입하고 싶어 하며 상승하는 집값 등의 요소를 더해 보자. 각 가정에서 지출해야 할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된다.
소득의 측면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길게 일하지만, 일하는 만큼 많이 벌고 있다고 하기 힘들다. 노동생산성이 낮기 때문이다. 노동생산성이라는 개념은 어감과는 달리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지와는 완전히 무관하다. 그 사회가 어떤 재화에 가치를 두는가, 현장에 자본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투입되는가에 달려 있는 지표이다. 국내에서 가장 노동생산성이 낮은 분야는 서비스업이지만, 안타깝게도 서비스업은 국내 고용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자영업 종사자 비율이 매우 높고, 이 분야 안에서 극심한 경쟁이 발생한다. 경쟁이 전반적인 물가를 스스로 억제하고 있어 일반소비자는 낮은 서비스 비용을 누릴 수 있지만, 국가 생산성 측면에서는 좋지만은 않다. 한국의 서비스업은 수출에 적합하지 않아 내수에 의존하는데, 내수는 점점 쪼그라드는 상황에서 서비스업 비중이 높으므로 전반적인 노동생산성이 함께 끌어내려지기 때문이다.
이렇듯 지출해야 할 비용은 많고, 소득은 그에 받쳐 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청년들이 가장 먼저 포기하는 것은 결혼이다. 돈과 시간 측면에서 결혼과 출산은 너무 비싼 선택이다. 우선 당연하게도, 결혼하려면 주거지가 필요하다. 신혼부부 월세는 한국에서 그다지 보편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둘이서 몸 누일 곳 하나 구하려면 축적된 자본이 필수다. 어찌 결혼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출산까지 선택하기는 더 힘들다. 특히 여성의 경우, 남성보다 영세업체 취업률이 높기 때문에 미래 경제력 축적을 많은 부분 포기해야 하는 선택을 하기가 더더욱 어려워진다.
이렇게 비싼 선택지들만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구성원들은 그 소득 등의 크고 작음에 관계없이 불행에 시달리게 된다.
'돈의 문제'를 풀 수 있는 이는 누구인가
시시각각 다가오는 소멸 안에서, 우리의 황혼은 어떤 모습일까? 어두운 미래는 쉽게 상상할 수 있다. 합계출산율이 낮아지고, 규모의 경제가 무너지면 모두가 점차 조금씩 가난해질 것이다. 내수로 규모의 경제가 해결 불가능해 글로벌 시장 의존도가 높아지면 금융시장 자체의 취약성이 강화될 것이다. 사회의 가장 변두리부터 소멸하며 지방은 점점 더 쇠락하고 수도권 집중은 점점 심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저 운명 같은 소멸을 손 놓고 기다려야 할까?
작가는 이 얽히고설킨 문제들을 풀어낼 하나의 키워드이자 주체로 「정부」를 제시한다. 당장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빼놓고 보면 유일하게 바로 시도해 볼 수 있는 방안으로 '국가 지출의 증가'만이 남는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나라의 채무를 증가시키고, 안 그래도 앞길이 험난한 미래 세대에게 짐 덩이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짐을 질 미래 세대가 아예 남아나지 않게 되기 전에 국채 발행을 증가시켜 내국인 매입을 장려하자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현재 경제 활동 인구가 많은 X세대와 밀레니얼 세대 사이에서는 '투자하지 않으면 바보'라고 할 정도로 재테크 열풍이 불고 있다. 이들이 운용하는 잉여 자본을 위험한 가상자산 등이 아닌 국채로 돌릴 수 있다면? 그만큼 국채가 매력적인 투자처가 되도록 정부가 주도해 나갈 수 있다면? 우선 정부가 과감하게 돈을 써서 한국의 높은 생활물가 문제를 잡고, 꼬인 실을 풀듯이 하나하나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도 있지 않을까.
생산성의 균형이 맞춰지고 나면 황금 티켓은 자연스럽게 그 힘을 잃는다. 모두가 몇 장 안 되는 티켓에 목숨을 걸지 않아도 크게 차이나지 않는 생산성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살하는 대한민국>은 우리가 함께 자멸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파편화된 이유를 「돈」으로 꿰어낸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서로 단단하게 얽힌 사회문제의 실타래를 풀기 시작할 수 있는지에 대한 관점을 제시한다. 간단하게 소개했지만, 책 속에는 훨씬 상세한 맥락과 이유가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실로 모두가 삶에 치이고 미래를 걱정하는 것으로 보이는 요즘이다. 우리는 소멸의 모래시계를 뒤집을 수 있을까? 한국에 사는, 살아가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