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임지은 에세이 <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들에 대하여>
작가 임지은은 싫어하는 게 많은 사람이다. 동시에 싫어하는 것을 집요하게 들여다보는 데 강한 사람이기도 하다. 보고 또 계속 보면, 그 반대편에 여과되어 소금처럼 반짝이는 애정을 발견하게 된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작가의 엄마는 자신의 개인 '호두'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다른 개들은 모두 호두보다 더 못생겼다고 흉을 봐 버린다. 세상 모든 개가 호두보다 못생겼다는 것은 아마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겠지만, 이 말은 균등하지 않은 사랑이야말로 진짜 사랑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모든 것을 좋아한다는 것은 무엇도 특별하게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그래서 책의 제목은 싫어하는 것들을 가리키고 있지만, 실은 지독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너무 소중해서 그 표면에선 열등감과 위선, 찌질함 같은 감정들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쩨쩨한 사랑에 대하여.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건 그것대로 멋진 일이다. 그러나 무언가를 미워한다는 것 또한 때로는 좋은 일이다. 거기에는 거기서 찾아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p.9)
내 주위에 있는 이들이 내게 알려주는 것
책은 두 개의 큰 챕터로 나뉘어 있다. 1부는 나에 관한 것, 2부는 당신에 관한 것. 나/당신에 대한 이야기가 명확히 구분되는 것이 아니므로 각 소챕터들은 결국 모두 자신과 당신에 대한 이야기다. 작가는 자기 주위에 있는 당신들을 통해 와닿는 마음을 조망한다. 대체로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진솔한 에피소드들이다.
'엄마'와 처음으로 타로를 보러 갔을 때는 맞는 얘기도 무조건 틀렸다고 해서 타로마스터에게 무안을 주는 엄마에게 화가 났으나, 결국 엄마의 생떼는 죽어라 고생하면서 사는 삶이 정해진 운명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기원한 것임을 발견한다.
'할머니'가 집착하던 가짜 에르메스 백은 작가에게 수치심을 주었으나 그 안에서 가족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마음과 누군가의 최선에 대한 성찰을 발견한다.
'동생'과의 대화에서 동생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언니가 아니라는 사실에 속 좁은 질투를 느끼지만, 마음을 다한 존재의 뒤편에 놓인 채 앞날을 응원하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동거인'과의 삶으로 얻은 안정을 통해 한계까지 술을 마시던 시기의 불안정했던 마음을 들여다본다.
그런 것들이 그립다.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만큼. 그걸 추모하기 위해 내게는 그렇게나 많은 취한 밤이 필요했다. (p.118)
반면 작가를 상처입히는 자들도 그에게 깨달음의 계기를 제공한다. 자신의 책을 기어코 들여놓아 주지 않은 '동네 책방 주인'에게 가지게 된 옹졸한 마음으로 인해, 사랑하는 일에 대해 진심일수록 결코 아무렇지 않을 수 없다는 진실을 발견한다.
벗은 몸의 영상을 가지고 있다고 협박하는 '전 연인 K'로 인해 잘 살기 위해서 미리 죽어 보는 일도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초등학생 때 작가를 괴롭히던 '옆집 남자애'가 발가벗겨져 비인격적으로 혼나는 것을 목격한 날, 그에 대한 앙심이 쪼그라들어 버렸으나, 그것은 자신이 소화해야 했을 감정이지 원하던 결과가 아니었다는 것을 회고한다.
'딥페이크 가해자'로 인해 성인 사이트에 얼굴 합성 영상이 올라가는 충격적인 사건을 겪고, 그 이미지들은 자신이 아닌 가해자에 대한 진실을 거울처럼 보여주고 있으며 훼손된 것은 오히려 그의 영혼이라고 담대히 고한다.
그는 과연, 자기 자신을 소외시키는 곤경을 각오했을까? 나는 언젠가의 내가 그토록 두려워하던 것들이 그를 삼키려 화롯불마냥 넘실거리는 걸 먼 발치에서 지켜본다. (p.142)
우리가 에세이를 읽는 이유
임지은 작가는 전작인 <연중무휴의 사랑>, <헤아림의 조각들>을 통해 '어떻게 이런 얘기까지 할 수 있지?'라고 생각될 정도로 솔직한 자신의 이야기들을 펴낸 바 있다. 작가 자신에게 약점이 될 수 있는 얘기들까지도, 말랑말랑한 부분들을 기꺼이 보여줌으로써 독자의 여린 부분에도 맞닿고자 하는 것이다. 신작 <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들에 대하여> 역시 유사한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전작들에 비해 더 많은 독자에게 가닿을 수 있는 보편성을 녹여냈음이 느껴진다.
이처럼 <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들에 대하여>는 임지은 작가 자신의 삶에 대한 치열한 고민의 결과물이다. 지극히 개인의 이야기인 에세이를 타인인 독자가 왜 읽게 되는가, 생각해 보면 그 안에서 결국 나에 대한 것을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나와 유사한 경험, 혹은 다른 경험, 깊은 사유는 읽는 이 또한 스스로에 대해 깊이 사유하게 한다.
마음이 시끄러운 연말이라면 임지은과 함께 스스로를 다독이고 톺아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겠다.
지금 아는 건 이따금 나에겐 나를 격려하거나 흔드는 타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자는 기쁘고 후자는 두렵다. 그러나 흔들림으로 발견하게 되는 것. 그건 내가 앞으로 알게 될 것과 가까이에 있다. (p.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