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일까, 오해일까
배경음악. Coldplay [Fix You]
*들으며 읽으시면 더 좋아요:)
이해하다.
1. 깨달아 알다. 또는 잘 알아서 받아들이다.
2.남의 사정을 잘 헤아려 너그러이 받아들이다.
[출처. 표준국어대사전]
사람과 관계를 맺다 보면 ‘이해’라는 단어가 참 자주 등장한다.
“알겠어, 이해해.”
“이해 좀 해줄 수 있어?”
“네가 나를 이해하기는 해?”
“이해해줘서 고마워.”
우리는 이 단어를 얼마나 온전히 이해하며 사용하는 걸까.
이해란 누군가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아름다운 행위다. 관계를 유연하게 만들고, 갈등을 회복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 말이 본래의 의미를 잃고, 누군가를 쉽게 판단하는 방식으로 사용될 때, 문제가 시작된다.
주위를 둘러보면, 자신만의 잣대로 타인을 쉽게 평가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나는 저 사람을 이해해”라는 말이, 정말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표현일까. 아니면 “저 사람은 이러이러한 사람”이라는, 개인의 기준 안에 가두려는 말일까.
후자라면, 그 속에는 때로 상대를 깊이 헤아리려는 마음보다, 나의 관점으로 상대를 평가하고 재단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이해는 착각이다.
불교의 가르침 중에 “언제나 새로운 사람처럼 상대를 대하라”는 말이 있다. 이 가르침은 상대를 이미 알고 있다는 확신을 내려놓고, 열린 마음으로 다시 바라보라는 뜻이다.
이해라는 이름으로 본인의 틀에 가두기보다는, 그 사람의 이야기를 새롭게 들어야 한다. 이해는 그 사람의 변화를 계속 마주하려는 노력이다.
또 가끔은, 서로를 너무 잘 안다고 착각할 때 균열이 생긴다.
가족은 우리가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때로는 더 어려운 관계다. 어릴 적, 나는 엄마와 자주 다퉜다. 엄마는 종종 말씀하셨다. "네가 날 이해한다면, 엄마 말이 맞는 지 알 거야" 그럴 때마다 나는 반박했다. "그러는 엄마는 왜 내 마음을 이해하지 못해?"
그 시절, 나는 엄마의 걱정과 사랑을 이해할 깊이가 없었다. 엄마 역시 내가 가진 불안을 온전히 들여다보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나도 엄마의 나이에 가까워지면서 알게 되었다. 엄마의 말은 단순히 나를 통제하기보다는, 나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나온 표현이었다는 걸.
우리는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비로소 진정한 대화가 시작될 수 있었다. 이해란 상대의 입장을 다시금 생각하려는 끊임없는 시도다.
연애에서도 '이해'는 갈등과 화해의 중심이 된다.
한 번은 연인이 중요한 약속을 잊은 적이 있다. 나는 서운한 마음에 따지듯 물었다. 그는 말했다. “내가 요즘 얼마나 바빴는지 알잖아. 네가 이해할 수는 없어?” 그 말을 듣고, 더 화가 났다. “왜 내가 모든 걸 이해해야 해? 그건 너의 문제잖아.”
순간적으로 화를 냈지만, 그의 말을 곱씹으며 알게 되었다. 그가 말한 '이해'란, 단순히 상황을 알아달라는 부탁이 아니었다. 자신의 마음을 헤아려 달라는 표현이었다. 그리고 내가 원한 건, 내 서운함을 가볍게 넘기지 않고, 감정을 인정해주는 것이었다. 서로가 바라는 이해의 방식이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는 서로가 가진 경험과 감정을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단순히 "이해해"라는 말 대신, "지금 내 마음이 이렇다"라는, 그 속에 담긴 구체적이고 솔직한 표현을 주고받아야 한다. 상대의 복잡한 감정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그 무게를 함께 느끼며 노력해나가는 과정이다. 진정한 이해는 책임이 따른다.
누군가와 갈등이 생길 때, 우리는 너무 쉽게 "왜 저 사람은 저럴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정작 "왜 나는 이렇게 느낄까"라고 스스로에게 묻는 데는 서툴다. 이해는 상대를 바라보는 시선이 아니라, 나 자신을 돌아보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우리는 자신조차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감정이 폭발하는 이유를 모르고, 때로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헤매곤 한다. 스스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타인을 깊이 헤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될 때 비로소 타인을 존중할 여유가 생긴다.
타인에 대한 이해는 나 자신도 알기 어려운 존재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을 때, 바로 그 겸손함에서 시작된다.
이해는 아름답고 따뜻하다. 그렇기에 이 말을 신중하게 사용하고 싶다.
내가 진정으로 상대를 이해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저 나의 기준에 끼워 맞춰 판단하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야 한다. 무엇보다, 이해는 나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고 있다는 진심에서 시작된다.
그 시간을 통해 우리는 상대를 더 깊이 알아가고, 불완전한 관계 속에서도 성장할 수 있다.
당신은 누구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나요.
당신은 자신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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