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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 Oct 20. 2021

별거에서 별거 아닌 일로

나의 정신과 닥터쌤-두번째 만남

6월26일

5일 째 약을 먹었다. 약을 먹기 시작하고 오전엔 거의 아무것도 못할 정도로 몽롱했다. 졸리고 어지럽고 모니터의 글씨를 읽어야 하는데 아무 것도 읽히지가 않았다. 최근 팀장 발령을 통보 받았고 일이나 태도로 보여줘야 했다. 나를 선택해준 사람들에게 나는 최선과 최대의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싶었다. 나를 잘 선택했고 나는 잘 해낼 거라는 믿음을 주고 싶었다.

그런데 너무 졸렸다. 약을 먹으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커피를 먹으면 부작용이 생길까 내 위염이 돋을까 카페인을 밀어 넣을 수도 없었다. 1시간을 멍하게 보내고 휴게실에서 쪽잠을 자고 화장실을 일부러 많이 왔다갔다 했지만 견딜 수가 없었다. 도저히 안되겠다.

아침 약을 먹고 점심에 병원예약을 잡았다. 다시 오라는 날이 3일이나 남았지만 병원을 다시 찾았다. 일하다 찾은 정신과는 주말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나 : 안녕하세요

D : 괜찮아요? 약 좀 먹으니깐 어때요?

나 : 아침, 저녁에 좀 힘들어요. 심장 콩닥거림은 있어요.

D : 우울한가요?

나 : 생각나면 우울하고 그래요.

D : 약 먹으면 그래도 평온하죠?

나 : 네, 근데 오전에 회사에서 너무 졸려요. 졸려서 졸고 휴게실가서 그냥 자버렸어요.(갑자기 웃음 터짐) 회사에서 1~2시까지 그냥 잤어요.

D : (닥터도 웃음)안정제라 편해져서 졸음이 올 거에요. 약을 좀 줄여볼게요.

나 : 아! 저 취미로 책을 쓰는데 이번 일을 기록하려구요. 쓸 때는 너무 슬프고 가슴을후벼 파는 것 같이 아픈데 괜찮겠죠?, 너무 빨리 상처를 마주하는 일이 악영향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여쭤보고 싶었어요.

D : 아~ 잘하고 있어요. 정면으로 마주하고 적다보면 별거 아닌거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잖아요. 그때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도 있어요. 잘하고 있어요. 계속 해봐요.


그렇게 2번째 정신과 진료를 마쳤다. 아침에 먹던 3알짜리 약에서 파란색 약이 빠졌다. 조금  졸리긴 하지만 그래도  졸리다. 졸리다. 너무너무.

그런데 차라리 잠이 쏟아지니 잡념과 슬픔이 없어졌다. 파혼이라는 게 별일이었는데 별일 아닌 일이 되어 가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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