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백수의 오락가락 도서일기/기억을 만난 적 있나요?/박완호
박완호 시인의 ‘기억을 만난 적 있나요?’를 읽기로 약속한 지 두 달이 더 지난 어제서야(2019.1.24) 겨우 시인의 시집을 모두 읽었다. 특별할 게 없는 하루였고, 시간은 더디게 가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이 많은 오후였다. 무언가라도 해야 했다. 서점에 들러 며칠 전 발간 된 성석제의 ‘왕은 안녕하시다’와 장석주 시인의 신작 시집 ‘헤어진 사람의 품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를 샀다.(시집은 재고가 없어 예약주문을 해 두었는데, 유명 시인의 시집이 없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대추 한 알’이라는 시인의 시는 정말이지 빼어난 수작이다.) 크로노스에게 먹히지 않을 최소한의 면피용이었다. 그리고 서점을 나오면서 “그래, 오늘은 박완호 시인의 시집을 읽어야지.”라고 생각했다.
지난해 11월 23일 이생진 시인의 시집 ‘무연고’를 읽고 나서 쓴 독후기를 카톡으로 시인에게 보내주었다. 조금 후 시인에게서 답장이 왔다. “J와 함께 한번 보자.”(J는 대학시절 나와 같이 당구에서 늘 시인에게 ‘물렸던’ 바로 그 J다.) 나는 J에게 바로 전화를 했고, 흔쾌히 화답하는 J의 목소리가 휴대폰에서 채 사라지기도 전에 카톡에 단톡방을 만들어 시인과 J를 초청했다. 그리고 어느새 50대가 된 우리는 오랜 기억을 되새기며 손가락으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약속은 정해졌다. 12월 14일, 아주 마음이 편안한 금요일 저녁 가슴을 설레며 우리는 양재동 쭈꾸미 구이를 잘하는 한 음식점에서 참으로 오랜만에(30년은 되었을 것이었다. 우리는 간혹 조사弔事나 동기회에서 만난 적은 있었지만 누군가 있으면 또 누군가는 없었다.) 만났다. 시인은 카톡 대문의 긴 머리를 연신 쓸어올렸고, 그 자리에는 J가 초청한 지금은 교장선생님이신 또 다른 J도 함께 했다.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마시다 배가 불러 못 먹겠다며, 소주로 단일화 한 우리는 자주 잔을 들었다 놓으며 동기들의 근황을 이야기하고, 문학과 시를 이야기하고, 지금 읽고 있는 책들을 이야기하고, 오래전 학교 앞의 파전집과 당구장을 이야기하고, 그때 취해 널브러졌던 여관을 이야기했다. 그리곤 오늘이 30년 전 구원舊怨을 해결할 가장 적당한 때라 천명하며 음식점을 나왔다. 음식점을 나오니 바깥은, 어느 작가의 소설 제목 같은 ‘바깥은 여름’이 아니라 춥고 매서워 옷깃을 여며야 했다. ‘바깥은 겨울’이었다. 익숙지 않은 골목길을 한참을 헤맨 끝에 우리는 목적지를 찾을 수 있었다. 당구는 겐뻬이(일본어 원평源平, 편갈라 치기라고 하면 뭔가 좀 어색하다. 용어가 원래 들어온 그대로 이름해야 당구의 맛이 난다. 영어에는 관대한데 일본어에 대해서만은 저급한 일제 잔재로 깎아내린다. 이유야 분명하지만 이제는 그 강박에서 벗어나야 할 때도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로 치기로 했다. 나와 J가 한 편을 먹고, 시인과 또 다른 J가 한 편을 먹었다. 지는 편이 2차를 내는 내기가 걸렸다. 1시간에 걸친 승부는 치열했지만 결과는 쓰리쿠션을 성공한 J의 마지막 큐로 갈렸다. 나와 J는 30년 한恨을 풀었고, 시인은 30년 승자의 지갑을 열어야 했다.
당구장을 나온 우리는 맥주 한 잔을 더 했다. 남은 이야기가 있었고, 내일은 종일을 널브러져도 괜찮은 토요일이었다. 하지만 채 잔을 들기도 전에 J는 아내의 호출로 귀가조치를 당했고, 남은 우리는 중년의 비애를 이야기하며 했던 이야기를 또 했다. 이제는 헤어져야 할 시간이 되었다는 전조였다.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 시인과 또 다른 J가 사라졌다. 난 황급히 술집을 나왔다. 어디선가 먼저 간다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는데, 어쩌면 그것은 바람 소리 같기도 했다. 어쨌든 나는 “잘 가라! 또 보자!” 소리쳤다. 취기와 함께한 욕이었는지도 몰랐다. 그날 난 매서운 추위 속에서 30분 가량 연신 손을 들었으나 택시를 잡지 못했고, 결국은 아내에게 전화를 하는 구명절초求命絶招를 써야만 했다. 시인과 J, 그리고 또 다른 J와 30년 만의 만남은 그렇게 시시하게 끝이 났다.
담담적취(湛湛積醉, 축축히 쌓이는 술취함이여)/막음불성(莫飮不醒, 마시기를 멈추지 않으면 술 깨지 않도다)/거거거시(去去去時, 가고 가고 가는 시간이여)/대취필귀(大醉必歸, 크게 취해도 반드시 돌아감이로다) 나는 무경武經 1장 ‘대취大醉’를 지어, 시경詩經 소아小雅 ‘담로湛露’ 4장 “담담노사(湛湛露斯, 축축히 젖은 이슬이여)/비양불희(匪陽不晞, 볕이 아니면 마르지 않으리)/엽엽야음(厭厭夜飮, 느긋하게 마시는 밤 술이여)/대취무귀(不醉無歸, 취하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으리)”를 댓구했다.
‘기억을 만난 적 있나요?’ 예순한 편의 시가 기록된 시집은 더디게 읽혔다. 한 단어 한 단어를 생각해야 했고, 한 줄 한 줄을 이어서 그 의미를 이해해야 했으며, 한편 한편을 또 그렇게 연결해 앞뒤를 살펴야 했다. ‘상실과 생성의 변증법’이라는 문학평론가의 무려 15쪽이나 되는 시 해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겠고, 시인이 여기까지 생각했을까를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수님조차 나자렛에서 존중받지 못했고, 공자 또한 노나라에서 크게 쓰이지 못했다고 하지만 시인의 자잘한 개인사까지 알고 있는 나로서는 평론가의 해설을 쓰여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시인은 단지 기억을 만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회한, 어머니를 종교로 모시던 아버지에 대한 불편한 기억, 부끄러웠던 아버지와 유년의 가난, 사회적 담론에 한발이라도 들이밀어야 했던 시인이면서 가르치는 사람으로서의 양심, 그리고 그러한 것들을 탁월한 묘사로 승화시키는 시인의 상상력과 언어적 감각. 60여 편의 시를 읽으면서 내가 느낀 것은 단지 이러한 것들이었다.
탐닉
분수대 옆 화단, 지나던 개가 우두커니 서서 노란 꽃
의 얼굴을 뚫어져라 들여다본다, 산들
산들, 콧구멍으로 숨결이 거칠게 들락거릴 때마다 노란 입
술을 오므렸다 폈다 하며 꽃은
저를 쳐다보는 낯선 얼굴 쪽으로 고개를 들이미는데, 둘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꽃봉오리를 쳐다보다 입을 맞추다 하는 개의 콧등에 묻은
노랑무늬가 폴폴 흩어질 때, 담장 위에서는
얼룩줄무늬고양이가 납작 엎드려서는 둘이 주고받는 수작
을 눈에 새겨 넣는 중이었다
‘탐닉’은 사물에 대한 탁월한 관찰력이다. '산들' 하고 연을 나누는 기교는 빼어난 발상이다. 운율의 흐름과 기다림의 궁금증을 증폭시키는 두 가지 효과를 그 띄운 한 줄, 무음의 행간으로 극대화했다. 개와 노란 꽃의 수작酬酌이 수작秀作이 됐다. “노란 입술을 오므렸다 폈다. 할 때, 존재는 생명성의 최고의 강밀도(intensity)의 상태에 있는 것이다.” 라는 평론가의 해설은 내가 모르는 이야기였다.
급소
나는 급소가 너무 많다
감추고 싶은 게 생길 때마다 하나씩 늘어난다
툭하면 자리가 바뀌는 탓에
어디가 급소인지 깜빡할 때도 있다
아까도 한방 제대로 맞았지만
어제의 급소는 말짱한 대신
난데없는 헛손질이 그만
오늘의 급소를 건드렸다
바로 거길 가려야 해
가장 치명적인 곳, 하지만
벼락은 늘 낯선 자리에 와 꽂힌다
오래전 내 급소는 엄마였다
엄마란 말만 들어도 죽고 싶었던,
죽는 게 꿈이었던 날들
엄마를 지나 아버지를 지나 또 누구누구를 지나
자꾸 급소가 바뀌어 간다
이제는 급소가 너무 많아
눈을 씻고 봐도 안 보이는,
아무 데도 없는 것들 때문에 아파질 때가 있다 지금은
얼굴 없는 당신이 가장 치명적인 급소이다
오래전 돌아가신 엄마와 아버지는 시인의 급소였다. 난 예전에도 그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토록 치명적일 줄은 몰랐다. 과거 시인의 모습은 늘 밝고 긍정적이었으나, 그 웃음 뒤에서 엄마와 아버지는 늘 그의 급소를 건드리고 있었다. 어쩌면 그 급소는 ‘담’처럼 영원히 치유되지 않을 영혼의 상처였다.
담
공사판 목수였던 아버지는 언제나 담을 끼고 살았다.
오른쪽 왼쪽 허리를 엇박자로 오가던 담이 어깨 쪽으로 쏠
리기라도 하는 날이면
어느 편으로도 돌아눕지 못하는 몸을 쓰디쓴 소주로 달래
던
아버지, 툭하면 술에 취해 아무 데나 엎어져 있는
그이를 간신히 데려다 방바닥에 눕히곤 했던,
마흔셋 한창 나이에 혼자된다는 게 어떤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던 나의 사춘기는
먼저 간 엄마가 그리운 만큼 아버지를 원망하는 날들로 가
득했다.
누구라도 미워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그때,
그이는 내 미움을 쏟아부을 하나뿐인 누군가였다.
마흔셋에 떠난 엄마나 환갑도 못 채우고 간 아버지나
누구 하나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고 여기까지 와버린 나,
까닭 없이 찾아든 담을 앓는 밤,
어디서 아버지의 신음 소리가 들린 것 같아
아무도 없는 방 안을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어둠 속에 울먹이는 그이의 어깨를
쏙 빼닮은 얼굴 하나와 마주친다.
그이가 날마다 끼고 돌던 담 모퉁이,
언 발을 동동 굴러가며 아버지를 기다리는
열 몇 살짜리, 먼 길을 돌고 돌아
그날의 담벼락 다시 몸속에 일으켜 세우는
나와는 구석구석 참 많이도 닮아 있다.
나이가 들면서 시인의 급소는 자꾸 늘어난다. 자리를 바꾸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보이지조차 않는다. 하지만 걱정할 건 없다. 누구나 나이가 들면 급소가 늘어나고 아무렇지 않던 급소도 치명적이 된다. 시인의 치명적 급소였던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아버지에 대한 불편함 또한 나이가 들면서 아내라는 존재로 치유되고 승화되고 있지 않은가? “꿈에서만이라도/꽃길을 걷고 싶은 걸까?/잠든 아내의 발이 꽃무늬 쪽으로 옮아간다./딴 데 눈 돌릴 틈 없는/가난과 남모르는 속앓이를 키워냈을/발가락의 굳은살들./지금껏 내가 준 것은 먹먹한 돌길뿐이었나./꽃무늬 쪽 이불을 끌어다 깔아주고는/슬며시 아내의 발을 만져가며/수화처럼 건네는 나의 속말을/그녀는 듣지 못하고/꿈에서도 돌길을 밟는지 아픈 숨소리를 낸다....(하략)”(‘아내의 발’ 中)
시인에겐 초라하고 아픈 기억이었지만 시인은 다시 기억을 만나러 간다. 아픈 기억조차도 나이가 들어 해원解冤하고 나니 그리움이 되었다. 가난한 유년 ‘구봉리 2’와 ‘구봉리 3’을 통해 만나는 기억은 그런 시인의 마음이다. “엄마, 하고 부르면 음매, 하고 따라 울었다. 여물을 씹다 말/고 어미 소가 뒤를 돌아보았다. 담장 너머 살구가 노을에 물들어 갔다. 진흙 묻은 아빠의 구두는 뒤축보다 앞쪽이 먼저 닳았다./백곡산자락부터 따라왔을 도깨비바늘이 잔뜩 달라붙은 바/지를 입은 채 엎드린 그이한테선 만날 소주 냄새가 진동을 했다.”(‘구봉리 2’ 전문)
‘함박눈’은 탁월하다. 상상력과 묘사가 압권이다. 나자렛의 시인을 아무리 폄하하려해도 깎아내릴 건더기가 없다. 글로 쓴 그림, 설경雪景 한 폭을 보는듯 했는데, 눈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빼어난 공감각共感覺이다.
함박눈
흰 고양이들 지붕 위를
소리 없이 건너다녀요.
창문 밖 출렁이는 나뭇가지마다
반작이는 울음 매달고
가로등 불빛 따라
사뿐사뿐 맨발로 뛰어가요
그만 들어오라고
엄마가 부르지 않았다면 나도
고양이랑 나란히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을걸요.
이건 시인의 문장이 아니다. 뭔가 방언이라도 내려받았나? 난 시인의 상상력과 문장에 감탄했다. 하지만 시인답지 않은 시도 몇 편 보인다. ‘낮달인지, 저녁달인지’와 ‘나뭇잎 경(經)을 듣다’는 내가 알기론 시인의 사유도 철학도 아니다. 괜히 간화선看話禪 스님이 된 듯 부리는 허세다. 그가 변했나? 그럼 어쩔 수 없다. 이렇게라도 한 줄 비판을 하는 수밖에.
시인의 시집을 이렇게 꼼꼼히 읽어 보기는 처음이다. 그동안 시인에게 있어 나는 나자렛이었고 노魯나라였다. 비수로 상처받고 비판받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앞선 다섯 권의 시집 또한 그러한 이유로 제목만 훑어봤을 뿐이다. 하지만 어떠한 이유로 나는 시인의 '기억을 만난 적 있나요?'를 읽기로 약속했고, 늦었지만 그 약속을 지켰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키기를 참으로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시인의 시들은 씹을수록 맛이 났고, 읽을수록 그 맛이 깊어 웅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