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는 시간이 외로웠던 적이 사실 별로 없습니다. 외로움은 혼자여서 찾아오는 친구도 아니거니와(둘이어도 외로울 때가 있고, 군중 속에서도 외로울 때가 있죠.), 매일매일 하고 싶은 일들이 넘쳐나거든요. 언제부터 이렇게 취미 부자가 되었나 생각해보니 대략 20대 중반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그 시기부터 인생이 아주 풍성해졌어요.
성인이 된 이후 가장 먼저 찾아낸 취미는 야구입니다. 물론 제가 김입문 작가님처럼 야구를 직접 하는 대단한 사람은 아닙니다.
대학 신입생 때 단과대 야구부 매니저를 하다, (제대로 하지도 못하면서) 매니저랍시고 오빠들이 하는 사회인 야구 구장들을 여기저기 쫓아다니다, 그러다 어찌저찌 잠실야구장에 들락날락거리게 되었고 결국 야구에 푹 빠진 팬이 되어버렸습니다. 유니폼도 버전별로 많이 샀고요. (이젠 더 이상 몇몇 선수에 몰빵 안 하려고요..) 잠실은 물론 타구장 직관까지 서슴지 않고 다닙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평생 깐부가 되었습니다. 요즘은 잘 틀리지만 한창 야구 볼 때는 해설 없이도 포심과 슬라이더, 커브, 포크볼 등을 구분해냈습니다. 야구 보면서 하는 말이 "오늘 쟤 슬라이더가 왜 이렇게 날려? 이러다 큰 거 맞겠는데? 투수 바꿔야 하는 거 아니야?" 같은 말들이었어요.
예전 잠실구장 기억하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야구가 끝나면 야구장 앞에 돗자리가 깔렸었어요. 포차 개념으로 보면 되는데 수많은 돗자리나 신문지 위에 과자박스 엎어놓은 게 테이블이었고, 떡볶이나 제육볶음 등의 안주에 소주를 마셨습니다. 사람이 바글바글 해서 엘롯기랑 야구하는 날은 빈자리가 없었고요. 기분 좋게 취해서 깃발을 들고 야구장 주변을 뛰어다닌 적도, 자리가 없어 맨바닥에 판을 깔고 뒤풀이를 한 적도 있습니다. 한 번은 소주 몇 잔에 흥이 나서 응원가를 부르고 있는데 무언가 이상해서 보니 롯데 테이블이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합석을 해서 롯데 팬들과 함께 어깨동무하고 롯데의 강민호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살이 오르게 되었고, '운동을 하자!'라는 생각에 시작한 취미가 발레입니다. 고3 때부터 아프기 시작한 어깨가 소설을 쓰겠다며 자리에만 앉아있자 시멘트처럼 굳어버린 것도 하나의 이유였고요. 그 당시는 다이어트 요가 등이 유행이었는데 제게는 요가가 잘 맞지 않았어요. 칼로리 소모와 근력 증진, 재활(?)이 모두 적절하게 어우러졌다고 판단한 운동이 발레였습니다.
처음 발레를 시작했을 때는 취미 발레학원이 많지 않아 멀리까지 학원을 다녔습니다. 물론 그건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아요. 동네에 헬스장이나 필라테스 학원은 많은데 발레 전문학원은 보이지가 않습니다. 아직도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거리에는 발레학원이 없어요. 제가 발레를 한다고 하자 많은 사람들이 '차라리 격투기를 한다고 해줘.'라는 반응을 보였었는데요. 마르지 않아도, 턴아웃이 되지 않아도 즐겁게 춤출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신 발레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발레는 정말 너무너무 재미있어요!
글 쓰고, 일하고, 발레학원에 다니고, 그러다 보니 발레 공연도 찾아다니고, 시즌에는 야구를 보고(1년에 무려 144경기나 해요.) 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은 보통 꽉 차게 흘렀습니다. 하지만 그 사이사이엔 제가 꼭 해내야 하는 미션도 있었는데요. 승가원 체험홈, 혹은 그룹홈에 가서 아이들과 노는 일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나들이도 가고, 산책도 하고, 우리끼리 신문도 만들어보고 그랬어요. 정말 즐거운 날들이었습니다.
자원봉사라는 단어는 사실 불편합니다. 제가 재미있어서 가서 노는 건데 그런 명칭을 붙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누군가 저와 아이들의 관계를 물어볼 때마다 '자원봉사자예요.'라고 답하는 것도 싫었습니다. 아이들한테는 그냥 언니이자 누나인데,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자원봉사자'라는 말을 꺼내는 것이 거북했습니다. 그래서 누가 '봉사시간 많이 채웠겠다.'라고 하면 음? 하는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봉사라고 생각하지 않으니 시간도 기록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냥 가서 아이들과 놀았습니다. 저를 그렇게까지 무조건적으로 좋아해 주는 사람들과 노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이고, 오히려 제가 고마워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그룹홈에 가끔만 찾아갑니다. 아이들도 이제 나이가 들어 모두 취업을 했거나 교육생 신분이어서 퇴근을 하면 피곤해하거든요. 그래서 날을 잡고 놀러 갑니다. 코로나로 인한 제재가 끝나서 다행이에요.
모든 취미가 활동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책을 읽는 것도 좋아하고, TV를 보는 것도 좋아합니다. 특히 수사물을 좋아해서 SVU, 셜록, NCIS 시리즈, 크리미널마인드, 멘탈리스트, 캐슬, 엘리멘트리, FBI, 시카고PD 등도 챙겨보았고, 시대물도 좋아해서 왕좌의게임(?), 다운튼애비, 아웃랜드 등도 챙겨보았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프렌즈나 섹스앤더시티도 낄낄거리며 모두 챙겨봤고요. 라오스 방비엥에 갔을 때는 카페거리에 앉아 하루 종일 프렌즈를 보고 또 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풍성한 이야기들 덕에 제가 소설을 써야겠다고 결심하고 또 포기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 너무 재미있어요.
이야기가 길어져 더 들어갈 공간이 없어 보이지만 저는 프로 여행러(!)이기도 합니다. 여행을 좋아하고, 자주 다녀요. 국내도 해외도 모두 돌아다니기를 좋아합니다. 올해도 벌써 제주도와 여수&순천, 목포에 다녀왔고요. 해외여행은 홍콩, 대만, 이탈리아, 프랑스 등 유명한 여행지들은 물론이고, 레바논, UAE(아부다비), 라오스, 벨기에 등 다소 레어 한 곳들에도 다녀왔습니다. 2020년엔 아프리카에 갈 계획이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망했어요. 다녀오는 즉시 '닥터 브라운' 2편 쓸 예정입니다.
네, 취미 부자입니다.
이미 하고 있는 것들이 많은데 나이가 들수록 그 수가 조금씩 더 늘어갑니다. 유화를 그리고 싶어 올해 5월엔 미술학원에 등록했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하여 아크릴화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바빠 보여도 시간은 내면 생기더라고요. 참 신기합니다. 그렇게 취미들을 즐겨도 아직도 시간이 많은 것을 보면요.
이 중엔 돈이 꽤 많이 들어가는 '여행' 같은 카테고리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돈이 많이 들어가지 않는 '독서'나 'TV 시청', '야구 관람', 돈이 들어가도 학원비 정도만 들어가는 '발레'나 '그림' 등도 있습니다. 취미에는 제 피 같은 돈들이 들어가지만 하나도 아깝지는 않습니다. 그 돈으로 제 인생의 사진첩들을 채우고 있다고 생각하면 가성비가 끝내준다는 생각도 합니다. 이렇게 모든 페이지를 예쁘게 꾸미고 꽉꽉 채워서 사는 인생이라니, 스스로 뿌듯하거든요. 재미있기도 하고요.
그래서 아침에 눈을 뜨면 '우와! 아침이야!' 하고 신나 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날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보통 해가 뜨고 눈을 뜨면 기분이 좋습니다. 한 친구가 전화로 '뭐? 아침에 해 떴다고 기지개 켜면서 기분 좋아한다고?'라고 물어봐서 '그게 이상한 거야?'하고 대답한 적도 있었습니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살고 있는 줄 알았어요. 아침에 해가 떴는데 기분이 좋지 않다고..? 하고 생각하다가 그래, 사람은 모두 다르니까. 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래도 저는 속상할 것 같아요. 아침에 눈을 떴는데 기분이 좋지 않으면요.
에너지가 부족하고, 심심하고, 일상이 지루한 분들께는 아주 조심스레 제안드려봅니다. 돈을 조금 쓰게 되더라도 취미를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떠실까요? 건강한 취미는 인생을 살며 필연적으로 만나는 거지 같은 관계나 상황들에 과몰입하지 않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