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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애 Dec 20. 2022

60대에 은퇴를 한다고요?

60대의 일자리

 내일의 나도 장담하기 어려운 세상에서 노년의 나를 상상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남들도 모두 이렇겠거니 생각을 하다가, 장년 혹은 노년의 분들에겐 지금 이 시대의 상황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평생직장이란 개념을 보고 자란 세대가 아닌가. 그분들에게 육십 대 이후의 인생이란 은퇴, 해방, 가족과 함께 즐기는 여유 있는 삶의 끄트머리였을지도 모르겠다.


 몇 년 전, 아빠가 지방으로 떠났다. 일자리 때문이었다. 참고로 우리 아빠는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나 평생을 서울에서 살아온 분이시다. 엄마도 서울에서 태어나 지방에 연고가 없는 건 마찬가지이시다. 그 때문에 어린 시절 나는 명절마다 텅 빈 서울에서 조부모 댁과 친척들 집을 오가곤 했다.


 육십이란 나이는 은퇴의 상징처럼 느껴지지만 일을 쉬기에 아빠는 너무 젊었다. 앞으로 살아야 할 날이 살아온 날만큼이나 많았다. 하지만 정년 이후의 나이로 분류되는 육십 대에겐 양질은커녕 저질의 일자리도 많지 않았다. 아직 건강하고, 무엇보다 경제적 소득이 필요한 장년층에겐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부동산이나 주식 배당을 통한 수익으로 대표되는 '파이프라인'이 탄탄하거나, 물려받은 재산이 많거나, 퇴직금이 상당하거나, 그도 아니면 연금이라도 빵빵하다면 골프와 해외여행 등으로 가득 찬 풍족한 노년을 즐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평범하디 평범한 서민들이 60세부터 100세, 혹은 그 이상의 나이까지 아무런 근로소득 없이 삶을 영위해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건 나도 별반 다르지 않다. (심지어 우리 세대는 열심히 낸 국민연금도 받지 못할 수 있다.) 그저 생각만 했을 뿐인데 벌써부터 가슴이 답답하다.


 이런 상황에서 아빠가 찾아낸 방법은 주택관리사였다. 아파트 관리소장은 보통 70세 정도까지는 너끈히 근무가 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평생을 서울에서 살아온 이에게 서울은 쉽사리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서울에 있는 아파트들은 60대 관리소장을 반기지 않았다. 그런 아빠에게 손을 내밀어준 건 지방에 있는 아파트들이었다. 아빠는 그렇게 지방으로 떠났다. 가족들의 삶의 터전은 이곳에 있으니, 홀로 짐을 싸서 지방으로 내려갔다.




 몇 년에 걸쳐 영월, 영주, 순천에서 일을 한 아빠는 올해 광양에 있는 한 아파트에 입사했다. 이전 직장이 순천이어서 순천에 거주하는 아파트에서 왕복 약 50km를 출퇴근했다. 아무리 여순광이 하나의 생활권으로 묶여있다고는 하나 세상에, 왕복 50km라니. 멀어도 너무 멀었다. 그래서 아빠를 위해 광양에 있는 집을 찾기 시작했다. 2023년에도 광양에서 일을  예정이라 하시니 더 고민할 것도 없었다. 지금 살고 계신 집이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38만 원, 관리비가 5만 원 정도인만큼 이 정도 선에서 비슷한 아파트를 찾아보기로 계획했다. 가능할 것 같았다.


 예상은 적중했다. 광양은 포스코가 바로 옆에 있어 성호로 대표되는 전월세 전용 아파트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40만 원 정도면 방 세 개짜리 아파트도 구할 수 있었다. (물론 복도식이긴 하다.) 그러다 월세가 35만 원, 30만 원, 무려 25만 원짜리 아파트들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곳의 아파트 매매가는 도대체 얼마이기에 이런 가격의 월세가 매물로 나올 수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충격에 빠졌다.


 세상에, 1억이 안 되는 돈으로도, 1억이 뭐야, 5000만 원이 채 안 되는 돈으로도 매매가 가능한 아파트들이 있었다. 믿어지는가. 충격이었다. 집이라는 건 어쩌면 평생 사지 못할 유니콘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아니었다. 알고 보니 광양뿐만이 아니었다. 지방에는 1억 남짓한 돈으로 매매가 가능한 아파트들이 꽤 많이 있었다. 서울이라는 우물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자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일자리만 있다면 삶의 질은 지방이 훨씬 더 높을 것도 같았다.


 통상적으로 부모님께 드리는 생활비나 부양비는 증여세 대상에서 제외된다. 가족 간 증여액도 10년에 6억이 넘지 않는다면 양도세가 없다. 그래, 그렇다면 이건 내가 아빠한테 한 큐에 드리는 2023년 생활비야!라고 생각하고 아파트 매매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아빠에게 광양 아파트를 선물해야지!


 그렇게, 태어나서 한 번도 광양에 가보지 않은 나는 광양에 있는 아파트를 매수하기로 결심했다. 물론 아빠의 명의로. 이건 우리 아빠한테 드리는 내 선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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