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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애 Mar 15. 2023

현요아를 읽는다.

청소년 소설 『스토끼』를 읽고.

현요아 작가님께서 계간지 '어린이와 문학'에 청소년 소설을 발표하셨습니다. 기회가 닿아 작가님의 작품을 먼저 읽어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얻었어요.


작가님의 기존 에세이와 색과 결을 함께 하는 소설입니다. 요아수록 레터를 구독하셨던 분들은 레터에 수록되었던 소설 '묻지 말아야 할 질문'을 접하셨을 텐데요. 그 소설과도 느낌이 비슷한 작품이었어요.


많은 분들께서 읽어주셨으면 하는 요아 작가님의 바람을 함께 담아 제 감상이 담긴 졸고도 함께 덧붙여봅니다.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계간지 '어린이와 문학'을 판매하는 인디펍의 링크도 함께 올려요. 오늘도 묵묵히 문학길을 걷는, 본인이 택한 분야에서 예술을 하고 계신 모든 예술가들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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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요아를 읽는다.               



죽음과 상실,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     


현요아의 에세이 『나를 살리고, 사랑하고』에서 저자는 친동생의 죽음 이후 직면해야 했던 상황들, 느꼈던 감정들, 그럼에도 버틸 수밖에 없는 오늘에 대해 이야기한다. 삶은 소중하며 살아있는 사람들의 시간은 더없이 값지다는 메시지를 단단하고 애틋한 시선으로 보낸다. 이러한 견지는 작가의 새 소설 『스토끼』에서도 계속해서 이어진다. 『스토끼』에서 주인공 ‘나’는 엄마의 상실을 경험한 고등학교 남학생이다. 소설은 스스로 죽음을 택한 엄마를 떠나보낸 후의 주인공의 시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통상적으로 가족은 개인에게 가장 커다란 의미를 갖는 집단이다. 그 시작은 결혼일 수도, 혈연일 수도, 그 외의 법적 절차일 수도 있지만 한 번 가족으로 연을 맺게 되면 가족들의 서로에 대한 의미는 세상 그 무엇보다 각별해진다. 이역만리에 살게 되어도 철천지원수처럼 큰 다툼을 하여도 결국엔 서로를 찾는다. 보통의 경우라면 삶의 마지막 순간에 결국 떠오를 사람들 역시 가족일 테다. 이런 가족이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경우, 남아있는 사람들은 형언할 수 없는 불안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건 미안함일 수도, 죄책감일 수도, 때로는 미움의 감정일 수도 있다.


『스토끼』의 주인공 ‘나’는 엄마가 세상을 떠난 후 ‘튼튼하게 홀로 서는 누나나 아빠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그 경지에 다다르지 못한’ 청소년이다.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는 친구인 ‘우주 형’이 자퇴를 결심해도 그만의 사정이 있겠거니 추측하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애어른이다. 사실은 누나도 정신과 약을 먹으며 버티고 있고, 아빠 역시 살고 싶은 마음과 살고 싶지 않은 마음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도 그 모습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무력한 존재이다. 이러한 ‘나’의 혼란은 에어컨 수리 후 쏟아져 나온 흙탕물을 보란 듯 마시고 싶어 하는 장면에서 잘 드러난다.


하지만 삶에 대한 애정 어린 입장을 갖고 있는 작가는 ‘스토끼’라는 매개를 통해 삶에 대한 ‘나’의 혼란스러운 감정이 언젠가는 나아질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스토끼’는 세상을 떠난 엄마가 다육식물 ‘스투키’를 잘못 발음한 단어로 소설 속 화자에게는 각별한 의미를 지닌 식물이다. 엄마가 남긴 사실상 마지막 유품인 ‘스토끼’를 화장실 한구석에 방치하고 결국엔 누나에게 던지듯 회피했던 ‘나’는 담임 선생님이 건넨 스투키 화분을 다시 돌보기 시작하며 살아야 하는 의지를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마라전골’ 역시 비슷한 의미의 매개이다. 슬프고 화가 나고 그립기도 한 복합적 감정을 주인공 ‘나’는 과거엔 찾지 않았던 매운 음식을 먹으며 부딪치고 또 극복하려 노력한다.


다소 아쉬운 점으로는 ‘우주 형’이란 인물에 개연성이 부족해 보인다는 점, 엄마 역시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었는데 식사준비를 혼자 도맡아 했던 듯 보이는 설정(‘아빠는 퇴근하고 나서 피곤한 몸으로 저녁밥을 차렸고’라는 표현에서 유추했다. 엄마 역시 퇴근하면 피곤한 건 마찬가지였을 테다.), 간간이 보이는 어색한 표현들을 출간 전 잡아내지 못한 점 등을 꼽을 수 있겠다.


그럼에도 우리가 『스토끼』를 읽어야 할 이유는 상실을 경험한 청소년의 감정을 다른 어떤 소설보다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며 얼굴도 알지 못하는 저자의 동생과 내내 함께한 기분이었다. 아직 어린 그에게 더 무너져도, 더 솔직해도, 더 어린아이 같아져도 괜찮다는 위로를 감히 보내본다. 제삼자의 위로와 연대의 표현이 상처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한층 더 성숙해질, 언젠가는 다른 소재로도 청소년 소설을 씩씩하게 써낼 현요아를 기다린다. 그가 작품집을 낸다 하면 누구보다 먼저 서점으로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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