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획출판의 형태로 출간한 책이었다. 약간의 비용을 내고 인세를 20%로 설정한 계약서의 문구는 꽤나 마음에 들었다. 많이 팔리면 나는 부자. 한국의 밀레니엄 시리즈를 꿈꾸며 야심 차게 첫 발을 내디딘 소설이었기에 자신감도 넘쳤다.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들의 발판이 되는 소설인만큼 인물들의 관계 형성, 스토리의 구조적 탄탄함에도 꽤나 많은 공을 들였다.
하지만 독자들의 선택은 냉정했다. 얼굴도, 이름도 알지 못하는 작가의 소설이 매대에서 많이 팔리기란, 아니 살아남기란 역시나 쉽지 않았다. 원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진 않았다. 이것저것 다 차치하고, 글이 보다 매력적이고 재미있었다면 더 많은 독자분들께서 찾아주셨을 테다. 절판의 아쉬움은 이렇듯 결국 자기반성으로 귀결된다.
그럼에도 신기했다. 절판 통보 연락을 받고도 마음은 꽤나 담담했다. 생때같은 작품이 절판되었다 해도 절망스럽다거나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거나 하는 감정은 들지 않았다. 그저 출간 이후 보관, 유통, 판매를 책임져주셨던 출판사에 감사했고, 나중에 부족한 부분들 보완해서 꼭 개정판 내야지! 라는 귀여운 생각만이 들었다. 단단한 사람이어서 그런 건지 그저 머리가 꽃밭인 사람이서어서인지는 잘 구분하지 못하겠다.
확실한 건, 첫 의도와는 너무나도 다른 소설로 출판되어 버린 첫 소설 '百'도, 밀레니엄 시리즈를 꿈꾸었지만 절판이 되어버린 '닥터 브라운'도 내게는 너무나 소중한 작품들이라는 사실이다. 출판되지 못하고 그저 한글파일로 남아버린 수많은 장편소설들과 그 소설들을 빚어내기 위해 노트북 앞에 앉아있던 수많은 시간들, 더 반짝일 수 있던 소중한 시절들이 혼자만의 이야기로 묻혀버리는 건 슬픈 일이다. 예술이 왜 배고픈 일인지를 정말 뼈가 저리게 일깨워준다.
그래서 더 소중하고 애틋했다. '안녕하세요, 자영업자입니다'가 소설로 발표될 수 있었던 것도, 올해 출간될 장편소설이 무사히 편집자님의 손에 넘어갈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이전 두 소설이 세상에 나와주었기에 가능한 기적이었다. 물론 긴 시간 동안 포기하지 않고 흥, 평생 쓸 테다 하는 마음가짐을 가진 나의 질김 역시 글을 계속 쓸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이제 세상에 남은 '닥터 브라운'은 내 책장에 꽂혀있는 저자증정본 몇 권과 전국 도서관에 비치된 책들이 전부이다.
정말 재미있는데.
너무 머지않은 미래에 '닥터 브라운'의 개정판도, 그에 이어지는 후속 이야기들도 모두 출간될 수 있기를 진심을 다해 바라보는 오늘이다.
유나, 무함마드, 안나, 폴, 핫산, 로베르토, 산제이, 세이렌, 작은 새들, 그 외 모든 등장인물들에게 감사인사를 바친다. 그동안 수고했어, 얘들아. 그럼 우리 잠시만 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