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인애 May 04. 2023

게으름에 대한 단상

갓생은 글렀고요. 이번 생은 마음 가는 대로 삽니다.

나는 게으르다. 알고 있다. 그렇다 하여 약속을 펑크내거나 정해진 마감기한을 어긴다는 의미는 아니다. 해야 할 일은 제때제때 잘 해내려 노력한다. 돈 받는 일들은 더 많이 신경 쓴다. 타인의 시선으로는 크게 눈에 띄지 않는 고만고만한 삶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봐준다면 감사하다. 평범이란 커다란 꿈이자 소망이다. 사실 평범이 어떠한 현상인지 잘 알지 못한다.


돈 주는 곳에는 십 분 일찍 출근하고, 시간 될 때마다 운동도 하고, 사람들도 만나고, 지인들의 생일은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가족과 여행도 종종 다니고, 야구 직관이나 발레 등 공연 관람도 여유가 날 때마다 진행시킨다. 그래서 친한 친구가 대신해 준 MBTI 검사에선 파워 J라는 결과가 나와버렸다. 그런데 내가 보는 나는 언제나 P다. 업무용 내가 아닌 진짜 나는 J일 수가 없다. 해외여행을 가도 아무런 계획 없이 훌쩍 떠나버리는 나는 J들이 당혹스러워하는 완연한 P다.


해야 할 일은 파도처럼 밀려오는데 현실은 TV 앞 소파 위다. 팔걸이에 몸을 기대고 비스듬히 누워 유튜브나 인스타를 하릴없이 탐색한다. 머리를 말리다가도 강아지 영상들을 한 시간씩 보고, 글을 쓰겠다고 호기롭게 열어젖힌 노트북에서도 온라인 세상을 탐색하느라 시간을 다 보낸다. 이번 주말엔 꼭 글을 써야지! 하고 잠자리에 누우면 거짓말처럼 늦잠을 잔다. 가끔은, 사실은 그보다 자주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든다.


집에 있으면 쥬토피아 속 나무늘보처럼 행동하는 걸 알아서 어디든 나가려 하지만 귀차니즘이 한 번 발동하면 그마저도 포기한다. 카페에 나가지 않아도 집에 커피 있잖아, 밖은 시끄러워 집이 더 잘 써질 걸, 노트북 하고 휴대폰 오래되어 충전기까지 들고나가야 해, 요즘은 어디든 사람 많아, 날씨가 구려서 힘들어, 해가 좋아서 늘어지는 걸 따위의 변명을 하며 침대 위에서 뒹굴거린다.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아 주말마다 어디든 나가는 친구들을 보며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서핑을 하고 캠핑을 하는, 동호회 활동을 하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고 있는 사람들 역시 대단해 보이는 건 마찬가지다. 그에 비하면 나는 동굴 안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나이 든 곰 같다. 삶은 바람 따라 흘러가는 거야,라고 읊조리는 인도 바라나시의 수행자 같기도 하다.


그래서 4월에 도전하고 싶은 공모전이 있었는데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몸과 생각은 의지를 배반하고 빠르게 달리지 않았고, 억지로 키보드를 두드리자니 완성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무도 청탁하지 않은 소설을 열렬히 쓰며 나 혼자 마감 기간을 맞추지 못했다고 자책을 했다. 그러자 힘이 탁 풀리며 조금 더 게을러졌다. 이토록 화창한 봄날, 너는 오늘도 무얼 하고 있니 하는 자조 섞인 웃음이 입가를 떠나지 않는다.


게으름을 지향하지만 게으른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안 하고 침대에 몸을 파묻는 상상을 하면서도 실제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는 한심하게만 느껴진다. 열심히 사는 듯 보이는 그네들도 사실은 다 비슷하게 살 거라고, TV에 나오고 자기 계발서를 낼 정도의 특별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다 비슷할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자책은 어쩔 수 없다. 나의 오늘은, 나의 삶은 도대체 뭐였지 라는 생각을 하며 입을 꾹 닫는다. 이렇게 살다 결국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한 줌의 미래가 되겠지 하는 상상은 간혹 도움은 되지만 위안은 되지 않는다. 어제의 나도 게을렀는데 오늘의 나도 게으르고 말았다. 어쩌자는 거야, 인애야.


그럼에도 머리를 질끈 묶고 뛰어나가지 않는다. 역시 천성은 바꿀 수 없나 보다. 바지런한 데다 능력까지 있어 대단한 성취를 이룬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오늘의 나는 마벨이네 레트리버( 우당탕탕마벨이네 - YouTube)들을 보며 하루를 보낸다. 그래, 세상에는 이런 사람도 하나쯤은 있어야지 하며. 모두가 부지런하고 똑 부러질 수는 없는 거잖아,라는 자기 위안을 하며.



ps1. 그럼에도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은 정말 잘 집필해서 편집자님들께 보여드리거나, 연고 없는 출판사들에 일반투고를 하거나, 공모전에 내거나 할 생각입니다. 큰 틀로는 지방소멸에 한 이야기를 쓰고 있어요. 결국에는 그 안에 사는 사람들 이야기이지만요. 너무 늦지 않도록 꼭 열심히 할게요!


ps2. 소설 '창수야, 언니가(가제)'의 초고를 3월 말에 편집자님께 드렸어요. 7월 말까지 퇴고를 할 생각이고, 10월 중순에 물성을 가진 책으로 세상에 나올 예정입니다. 8~10월 넥스트 출판사 블로그에 브런치스토리에 올린 에피소드를 다듬어 새롭게 에세이를 올리기로 했어요. 법적 가족이 없는 성인 발달장애인의 삶을 그린 소설입니다. 아직 출판까지는 한참 남았지만 그래도 따스한 시선의 기대를 부탁드려 봅니다. 창수와의 인터뷰도 예정되어 있어요!


ps3. 광양 아파트 매수기를 마무리 짓고 싶은데.. 아.. 위 두 소설을 핑계로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핑계가 맞아요. 마음만 먹으면 다 쓸 수 있거든요. 5월에 네 번째 이야기 꼭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래놓고 운동 다시 시작해서 시간 없다고 안 쓰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핑계의 핑계의 핑계를 대지 말자고 오늘도 다짐을 해봅니다. 저같이 게으른 분..? 저만 이런 건 아니죠? (힝)

매거진의 이전글 절판 통보를 받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