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국민학교를 다녔던 세대입니다. 그때에도 선생님의 가정 방문은 흔한 일이아니었죠.저 역시 선생님이 집에 오셨던 기억은 없어요. 그런 제가 시골 학교에 와서 선생님의 가정 방문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3월의 막바지가 되면 진행되는 학부모 상담 주간이 다가오자 저는 당연히 학교 방문 상담을 예상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어렵지 않다면 가정 방문을 하고 싶다'라고 단톡방에 공지를 올리셨습니다. (학부모와 선생님이 다 같이 있는 단톡방이 있다는 것도 시골에 와서 처음 경험해 보는 일이에요. 서울에서는 선생님의 번호가 노출되지 않게 개별 연락만 할 수 있는 앱을 사용했었거든요.) 장소만 바뀐 상담이니 크게 어렵지는 않겠다는 순간적인 판단으로 "괜찮습니다."라고 답을 했고, 저는 그렇게 생애 처음 선생님의 가정 방문을 경험하게 될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의외로 다른 학부모님들은 가정 방문 상담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고, 시간이 다가올수록 뭘 준비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과거의 나의 판단은 또 지독한 P(MBTI)로 부터의 결과물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죠.
그래도 뭐 어쩔 수 있나요. 가공된 모습을 평소의 모습으로 위장하려는 최선의 노력을 다할 수밖에 없습니다.
조금 과장된 비포 앤 에프터
좀 더 쓸고,
좀 더 닦고,
좀 더 숨겨두고,
좀 더 꾸며두고...
그러면 되지요.
상담 며칠 전 보내온 톡에서 선생님의 세심한 배려가 느껴졌습니다.
'아무것도 준비하지 말아 주세요. 물 한 잔이면 충분합니다.'
어떤 차를 내어 드려야 하나 고민했던 제 속마음을 읽으신 것 같네요.
그리고 당일이 되었고 방문해 주신 선생님의 손에는 커피와 쿠키 선물이 그득하게 들려 있었습니다. 방문을 받았지만, 대접은 제가 받은 셈이에요.
홈그라운드에서 펼쳐진 상담이라서 그런지 좀 더 편안하게 선생님과 대화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아이가 실제로 생활하는 공간을 보는 것이 아이를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선생님의 말씀도 너무 감사했습니다.
아직 얼마 안 되는 기간이지만 작은 학교라서 그런지 꽤 아이의 성향을 잘 파악해 주셨어요. 왠지 믿음이 생긴 마음에 제가 가지고 있는 고민에 대해서도 편하게 말씀드릴 수 있었습니다.
가정 방문 상담에서도,교육 과정 설명회에서도, 시골 학교의 선생님들에게는 뭔가 특별한 사명감이 느껴졌습니다. 아이들에게 어쩔 수 없이 관심과 사랑을 줄 수밖에 없다는 듯, 뭐라도 하나 더 주려 불편을 기꺼이 감수하려는 모습에 믿음이 생길 수밖에 없달까요. (서울 학교 선생님이 그러지 않았다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님들도 뭔가 다릅니다. 스스럼없이 교장 선생님과 산책을 가고, 차도 마셔요. 학교 방문도 자주 하고,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학교 행사에 관심을 갖고 자발적 모임을 만들기도 하고 학교 회의에도 적극 참석합니다.
생각해 보면 과밀 학급의 서울 학교에서는 아이뿐만 아니라 저 역시도 충분히 숨어 지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곳은 숨기에는 너무 아담하달까요. 어쩔 수 없는 것도 있지만 기꺼운 마음으로 학교의 일원이 되어가는 것 같아 일을 찾아서라도 열심히 하고 싶어 집니다.
시골 학교는 교사와 학생, 그리고 학부모가 좀 더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 자연스러운 곳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가정 방문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듯이 말이죠.
우리 아이에게도 이렇게 숨지 않고 도전(?)하는 엄마의 모습이 조금은 멋져 보이길 바라 보는 하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