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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꼬 Mar 30. 2023

시골 봉투어를 시작하다

쌓여가는 꽃사진들. 중년아, 오고 있니?

내려올 길을 굳이 힘들게 올라가는 등산이라는 운동은 지금껏 내 인생에 없었습니다. 회사를 다녔을 때 '임직원이 함께하는 '이라 쓰고 '막걸리 파티'라고 읽는 비자발적 등산을 제외하고는 말이죠.


나름 이유를 찾자면

1) 아니어도 많이 가니 산의 보호 차원에서

2) 딱딱 소리 나는 무내려올 때 나가버릴까 봐

3) 다른 운동도 많은데 굳이?

정도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내가 이제는 내 돈으로 등산화를 사고 시골집 근처의 봉들을 찾아 오르며 자발적 '봉투어'를 하고 있습니다. 지리산에 폭 쌓여 있는 듯한 마을에는 꽤 여러 개의 작은 봉우리들이 있는데, 이름난 등산 코스는 아니더라1~2시간 산행을 하기에 아주 좋더라고요.


봉의 정상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다

그렇다고 산과 하나되는 경지에 이를 정도로 등산의 묘미에 빠진 것은 아니에요. 무료할 수 있는 일상에 가끔은 도전하는 마음으로 오를 수 있어서 하루 안의 작은 성취감을 맛보기에 딱 좋은 것 같달까요?


나에게 '봉투어'란?


1) 숨이 차게 오르다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싶을 때, 뒤돌아 내려다본 경치는 진짜 '이거지!' 합니다. 왜 권력자들이 높은 곳에 앉아 내려다보는 걸 좋아했는지 알 것 같은 심정이에요.


2) 끝까지 오르고 나서 경치를 내려다보며 먹는 간식이 뭘 먹어도 맛있어서 참 좋더라고요. 땀이 식을 정도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면 따뜻하게 타온 믹스 커피 한 잔. '잘 먹고 잘 산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 싶습니다.


3) 나갈 일이 없어 씻지도 않게 되는 게으른 하루를 땀 흘려 어쩔 수 없이 씻게 되니 개운한 하루로 바꿀 수 있어요.


진달래들아, 내가 오는 줄 알고 피었니?

인적 드문 산길에서 꽃들에게 '피느라 고생했다, 예쁘다.'  말도 걸어 주고 칭찬도 해줘 봅니다.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소리를 듣고 '봄날은 간다'의 유지태로 빙의도 해보고요. 보는 사람 없으니 평상시라면 미친 year처럼 보일까 봐 안 하던 짓들을 하며 한껏 놀아 재껴요.


초록색이 좋아지고 꽃사진을 찍어대는 걸 보니 중년에 접어든 걸까요? 예쁜 꽃사진을 찍어 친구들에게 보내니 이제 그만 되었다며 나머지는 너의 사진첩에 잘 간직하는 것으로 하잡니다.



6년이 되도록 집 근처 둘레길도 안 가던 제가 많이 바뀌었네요. 아직은 초보 딱지 붙은 산악인(진정한 산악인들께 죄송하지만)이지만, 언젠가 등산의 세계에 푹 빠지는 날이 나에게도 오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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