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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타샤 Feb 09. 2022

계산하는 마음

“나는 딱히 바라지도 않았는데 네가 해주고 싶어서 한 거면서 이제 와서 나더러 왜 네 마음 몰라주냐고 섭섭하다고 화내면 어쩌라는 건데?”


그와 다툴 때 주로 내가 했던 말이다. 평범한 연인 사이에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기도 하고 우리가 자주 싸웠던 원인이기도 했다. 사실 이는 연인 사이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서 충분히 일어나는 일이다. 한쪽이 상대를 생각해서 무언가를 했는데 그 상대방의 반응이 시큰둥하거나 혹은 한쪽이 준 마음만큼 그 마음을 알지 못할 때 대개는 섭섭함을 느끼고 이는 결국 다툼으로 이어지게 된다. 무언 갈 바라고 한 것은 아니라 해도 사람인 이상 준 만큼 받지 못한다면 마음이 상할 수밖에 없다. 


늘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는 이곳에서는 마음을 계산하는 일이 더 자주, 강렬하게 생긴다. 수치로 정확하게 계산하지는 못하지만 대략 내 마음은 이만큼인데 상대방의 마음 크기가 다르다면 자꾸 내가 해준 것들과 ‘나라면 그렇게는 안 했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며 상대방의 마음 크기를 계산하게 된다. 

참 아이러니한 것이 한번 만나고 다시 못 만날 확률이 더 높은 환경이기에 그런 감정에 덜 연연해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정작 그런 상황에 놓이면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가 참 어렵다.


일 하는 동안 나름 배려해서 일부러 더 도와주고, 더 많이 일을 했는데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 듣지 못했을 때, 혹은 나는 정말 마음이 잘 통한다고 생각하면서 긴 비행 동안 대화를 잘 나눴는데, 일이 끝난 후에 잘 가라는 인사 한마디 듣지 못했을 때라든가…. 나는 이만큼의 정성을 쏟았는데 상대는 그렇지 않았다는 걸 느끼는 순간이면 마음이 참 서럽다. 

분명 오늘 하루 끈끈한 동료이자 친구였고, 헤어지기 너무 아쉬워서 오프 때 꼭 다시 만나서 그간의 안부와 시시콜콜 수다를 나눌 것처럼 굴다가도 비행이 끝나면 그대로 남남이 되어버린다. 시베리아의 바람보다 더 차갑고 춥다. 그럴 때면 ‘사람의 인연이 원래 내 마음 같지가 않지…’ 하다가도 참 외롭고 서글퍼진다.


특히 그 상대가 한국인이라면 더 그렇다. 한국인도 많고, 나름의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지만 제각각 바쁜 스케줄로 얼굴 한 번 보기가 어렵고 저마다 이미 이전부터 각자 친한 친구가 있다 보니 비행에서 만난 사람은 곁다리가 되어버리기 십상이다. 그게 잘못된 게 아니고 어쩔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가끔은 그런 마음이 유난히 차게 느껴진다.

그런데 신기한 건, 이런 마음을 이야기할 때면 모두가 그렇게 느낀다는 것이다. 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고, 한 달 스케줄이 약속으로 꽉 찬 것 같은 사람들마저도 그렇게 느낄 때가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어쩌면 나 역시도 누군가에게는 상대의 마음만큼 돌려주지 못하는 그런 차가운 인연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외국이라는 환경이 마음을 더 시리게 하는 것도 있을 것이다. 만약 똑같은 상황이 한국에서, 내 가족과 친구들이 언제나 가까이 있는 그런 곳에서 있었다면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도하라는 곳, 떠돌아다니는 비행이라는 직업은 늘 외롭고 허전한 법이다. 그런 쓸쓸함에 익숙해졌다 싶다가도 이따금씩 향수는 밀물처럼 밀려오기 마련이고 그럴 때면 마음에 여유가 없어진다. 작은 일에도 크게 적적함을 느끼고,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에도 쉽게 서운해진다. 그러다가 또 향수가 잦아들면 일전에 내가 느꼈던 서운함이 너무 부끄러워서 떠올리기조차 머쓱해진다.


한국이 너무 그리울 때, 호텔방이 유난히 크고 적막하게 느껴질 때, 오렌지 색 도하의 석양이 문득 참 쓸쓸하게 느껴질 때면 내 마음과 타인의 마음 크기를 자꾸 비교하고 그들의 마음을 자주 계산한다. 그냥 별 뜻 없는 타인의 말을 자꾸 곱씹고, 서운했던 상황을 불필요하게 반복해서 되새긴다. 그러면서 ‘어차피 관은 1인용’ 이라며 혼자서 잘 살아보자며 마음을 다잡곤 한다. 시간이 지나 내 마음이 평온해지면 ‘아 진짜 그때 왜 그랬지?’ 하고 온 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수치스러워할 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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