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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영 Dec 14. 2022

실패를 경험시키지 마.

2022년 12월 12일 월요일


예전에 일본에서 했던 실험이다.

지능이 평균 정도로 비슷한 아이들을 모아놓고 두 그룹으로 나누었다.

같은 시간, 같은 내용의 수학 학습지를 매일 풀게 하였다.

A그룹은 먼저 스스로 문제를 풀고 답과 풀이를 확인하게 하였고, B그룹은 답과 풀이를 확인한 후 문제를 풀게 하였다.


그리고 얼마 후 똑같이 시험을 봤다.

어떤 그룹의 점수가 더 높았을까?

먼저 답과 풀이를 확인한 후 문제를 풀었던 B그룹의 점수가 월등히 높았다.


이 실험은 꽤나 오랫동안 이루어졌는데

실험이 끝나고 몇 년 후 성인이 된 아이들을 추적해보니

'B그룹의 아이들이 상대적으로 좋은 직업군에 종사하더라.'

라는 이야기. 믿거나 말거나.


이 실험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가 아니다.'라는 가정에서 시작되었다.

A그룹의 아이들은 B그룹의 아이들보다 평소 학습지의 점수가 낮게 나올 수밖에 없었다.

B그룹은 처음부터 답을 보고 풀었으니 당연히 100점일 수밖에...


A그룹은 낮은 점수에 주눅이 들었고,

B그룹은 어려운 문제를 100점 받았으니 자신감이 생겼다.

수학 문제를 더 풀고 싶어 했고, 점차 답을 보지 않고도 문제를 풀 수 있게 되었다.


즉, 실패 경험이 적을수록 아이들은 자신감이 커져

좀 더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성격이 되고,

이를 바탕으로 성인이 됐을 때 사회적으로도 좋은 직업을 가지게 된다는 것.


EBS 다큐에서 봤는지, ABA(응용행동분석; Applied behavior Analysis) 관련 서적에서 봤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는 그 후 우리 아이들에게 그 위대한 '도전'이라는 것을 함부로 강제하지 않게 되었다.

왜냐면 나도 - 딱 봐도 어려워 보이는 것에 - 도전하는 게 무섭기 때문이다.


10년 넘도록 장롱면허였던 내게 "면허가 있으니 운전해봐!" 했을 때 정말 싫었다.

큰맘 먹고 운전대를 잡았는데 나는 차가 가운데로 가고 있는지 조차 몰라 신경이 온통 '차선을 이탈하지 않는 것'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내게 창문을 내리고 육성과 함께 손가락 욕을 날린 운전자도 있었고, 신호를 제대로 못 봐 두 번이나 빨간불에 지나치기도 했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든 생각은 '나는 운전하면 안 되겠다.'였다.


결국 운전연수를 다시 받고서야 제대로 운전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연수를 시켜준 운전 선생님은 답안지를 미리 보고 문제를 푸는 것처럼, 내가 궁금했던 것을 다 알려주셨을 뿐 아니라 '운전 잘한다.' 칭찬을 엄청 해주셨다.

덕분에 지금까지 매일 운전대를 잡고 있다.


참 신기하게도, 엄마들은 지나오면 별것도 아닌 일들을 공통적으로 고민하곤 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퍼즐 맞추기'다.

아이가 퍼즐을 못 맞추면 매우 깊은 고민에 빠진다.

나도 그랬었고, 최소 그 고민을 하는 엄마를 넷 이상은 만났다.


"마지막 한 조각만 빼고 엄마가 다 맞춰 주세요.

대신 마지막 한 조각만큼은 아이가 끼울 수 있도록 해보세요."


그럼 그 퍼즐은 누가 완성한 걸까?

분명 마지막 한 조각을 끼운 아이의 표정은 내가 해냈다는 성취의 만족감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그다음엔 두 조각을 아이가 끼울 수 있도록 하고,

그다음엔 네 조각, 절반 하다 보면 아이가 혼자 할 수 있게 되는 날이 온다.

처음부터 빈 퍼즐판을 해보라고 내미는 것.

딱 보기에 어려워서 막막한 기분이 드는 것.

하기 싫어지는 것.


상윤이에겐 모국어가 없다.

모국어가 없는 상윤이가 한국말을 배운다는 건,

모국어가 학습된 우리가 제2 외국어를 배우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자꾸 말해보라고 한다.

말해보라고 하니 기껏 용기 내 말을 하면 못 알아듣는다.

말하기 싫게...


지들도 외국인 앞에서 영어 한마디도 못하면서...

외국인이 "뭐라고?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했어. 다시 한번만 말해줄래?"

두 번, 세 번 되물을수록 목소리는 기어들어가고,

그래도 못 알아들으면 주눅 들어 말하기 싫으면서...


김상우가 상윤이한테 태권도를 가르친다고 떽떽거린다.

"아니, 형은 왜 이것도 못해!" 말하며 한숨을 푹푹 쉰다.

부글부글.

지는 언제부터 잘했다고. 얼마 전까지 발차기도 못했으면서.


'너나 쉽지. 너나. 너는 이미 할 줄 아는 거니까.'


그러니깐 내가 하고픈 말은,

못하는 거 같으면 화내지 말고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할 수 있도록 지도해 주세요.

그리고 많이 많이 칭찬해주세요.

잘하시면서!






우리는 '도전 정신'을 매우 높게 평가하며

아이들에게 해보지 않은 거에 대해 무작정 '도전'을 강요한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도전하길 꺼리는 것은 아이들이 아닌 어른들이다.

아직 실패의 경험이 부족한 아이들과 달리,

많은 실패와 아픔, 좌절의 경험들이 도전을 피하게 하고 진취적 삶보다는 안정적 삶을 선택하게 한다.


즉, 아이들을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면

무작정 도전을 강요할게 아니라

'실패의 경험을 줄이고 성공의 경험을 많이 쌓는 게 우선'이라는 것.


도전을 통한 성취감을 느끼게 하기 이전에,

성공률을 높여 도전하고자 하는 자발화를 심어주는 작업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것을 우리는 자존감이라고도 한다.


"해봐! 할 수 있어!" 보다

"이것 봐! 너 할 수 있잖아!"를 직접 느끼게 해주자.


"우와, 상윤이 정말 잘하는구나!!"



2020년 2월 26일 일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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