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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영 Dec 15. 2022

통합교육에 대한 제 점수는요

2022년 12월 13일 화요일

나의 엑스 직장은 공기관이라 매년 기관평가를 하곤 했다.

원래 나는 1점과 5점을 잘 안주는 사람이었다.

대부분 3점, 좋으면 4점 안 좋으면 2점을 주는 사람.

3점이 보통이니깐.

입사 후 첫 기관평가에서 나는 회사에 3점과 4점을 주로 주었다.


기관평가는 성과급과 연결되어 매우 민감한 사안이었는데 기관평가가 좋지 않게 나왔다.

"아니 어떤 이상한 사람이 '매우 좋음'을 안 준 거야!"

직원들이 난리가 났다. 윗선에서도 매우 언짢아했다.

무조건 매우 좋음인 5점을 눌러야 되는 게 암묵적 룰이었던 거다.

'미리 말해주든지. 내가 알고 그랬나.'

신입사원이었던 나는 혹시나 범인들을 발본 색출해내진 않을까 긴장했지만 모르는 척하느라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이후 내게 설문지란 무조건 '매우 좋음'이다.

특히 평가와 관련된 설문지는 '다 좋습니다. 매우 좋아요.'이다. 나의 평가가 이 사람의 성과와 연결된다고 생각하니 조금 기분 나쁜 일이 있더라도 좋게 평가해주게 된다.

'좋은 게 좋은 거지.'


운동을 하고 씻고 나왔더니 웬일로 오전 중에 도움반 선생님에게 문자가 와있다.

'혹시 상윤이에게 무슨 일이 있나?'

문자를 눌러보니 '특수학급 교육과정 관련 설문에 참여해주세요.'라는 내용이다.


'금방 끝내버리자.' 하고는 링크를 눌러 들어갔다.

여느 때와 같이 별생각 없이 '매우 좋음', '참여한다.'를 누르고 있었다.

설문은 막힘 없이 착착착 진행되었다.


그러다가 [성공적인 통합교육을 위하여] 파트에 들어서자 손가락이 멈췄다.

시작부터 '매우 만족'을 누르지 못했다.


11.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통합교육에 대해 만족하십니까?


상윤이가 뭘 배워오는지, 어떤 친구랑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하나도 모른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학교에서 연락이 오지 않음에

'상윤이가 오늘 사고를 치진 않았나 보다.' 여기며 되려 감사히 여길뿐이다.

알림장을 봐도 국어와 수학 숙제에 대한 이야기들 뿐이라,

통합교과에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만족하는가?


13. 장애이해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만족도는 얼마입니까?


상우가 사립유치원에서 병설유치원으로 옮긴 이유 중 하나는 흔히 병설유치원에는 '도움반'이 있기 때문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러므로 ''장애이해교육'에서 자연스럽게 형의 장애를 받아들일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같은 친구의 장애를 보며 '우리 형만 이런 게 아니구나.'를 알아갈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보냈다.

그런데 문제는 학교 병설 유치원에는 도움반이 없다는 것.

'그래도 '장애이해교육'은 사립유치원보다 잘해주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는데, 선생님께 들은 바에 의하면 장애인에 '발달장애인'은 거의 다루지 않는다고...


여전히 상우의 친구들은 '왜 상우의 형은 말을 못 하는지', '왜 아픈 데가 없는데 장애인인지.' 알지 못한다.

만족하는가?


14. 통합교육 지원활동으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프로그램을 선택해주세요.
  -통합학급 장애체험
  -특수학급 초청 프로그램
  -기타


이 설문을 하면서 '이게 뭐지?' 황당했다.

일단 '발달 장애 체험'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나도 그 체험을 해보고 싶다.

상윤이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너무 궁금해서...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드는지 너무 궁금해서...

저 문항 자체가 발달장애인은 통합교육 지원활동에서 제외되어 있다는 말로 들렸다.


'특수학급 초청 프로그램'은 또 어떤가.

어째서 프로그램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한결같은지.

상윤이와 같은 반 아이들이 통합반 속에서 이질감이 없었으면 한다.

'통합반에서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도 충분히 많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기타를 눌렀다. '둘 다 안 했으면 좋겠다.'라고 썼다.


15. 효율적인 통합교육을 위하여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장애이해교육
  -또래도우미 조직 및 교육
  -통합교사 연수
  -학습자료제공
  -특수교사와 통합교사와의 협력
  -기타


역시 기타를 눌렀다.

'우선순위가 없는 것 같다. 모두 다 필요하다.'라고 썼다.


효율적인 통합교육을 위해서 누구의 역할은 중요하고 누구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나? 상윤이의 가족도, 담임 선생님도, 도움반 선생님도, 같은 반 아이들도, 그 아이들의 부모님들도, 교장선생님도, 교감선생님도, 치료실 선생님도, 교육청도, 보건복지부도, 정부도 모두 다 조금만 관심을 준다면 바뀔 텐데... 우리 아이들도 가까운 학교에 다닐 수 있을 텐데...


그럼에도 굳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고르라고 한다면...

그렇다면 전 '모두의 관심'이요.


장애를 이해하려 하지 말고

다름을 이해하려고 노력해 봐...





1년이 끝나간다.

며칠 후면 상윤이의 1학년 생활도 끝이 난다.


'하늘의 별 따기 같은 특수학교 입학이 좌절되어

학군에 배치된 아이의 취학통지서를 보며 '망연자실'하거나,

복잡한 심경에 흔히 말하는 멘붕을 겪고 있는 부모님들이 많을 시기겠구나.' 싶다.


나도 상윤이가 특수학교를 떨어지고 학군으로 배정되어 입학할 때까지 심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작년에는 남들 다 받는 취학통지서를 - 유예를 결정해서 - 못 받는 상황이 서글퍼 심란했고,

작년에는 - 특수학교에 가야 한다고 믿었던 - 상윤이가 일반학교에 입학하게 됐다는 취학통지서를 보고 있노라면 걱정과 혼돈의 카오스였다.

입학하기 이틀 전엔 입학을 취소하고 싶다고 학교에 전화 걸어 생난리를 쳤던 적도 있었다.

'아직 상윤이는 학교에 갈 준비가 안됐다고!'

지레 겁먹고 지레 판단하고...


하지만 준비가 안됐던 건 상윤이가 아니라 나였다.

상윤이는 1년 동안 매우 평화롭게 학교를 잘 다녔고,

앞으로는 어떨지 모르지만 지금까지는 이 학교에 다니게 돼서 오히려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미래가 앞서 걱정되기에 매월 1일 교육청 특수교육지원센터 홈페이지를 들어가 특수학교 티오를 확인하곤 하지만...


아이들은 부모의 걱정보다 훨씬 잘한다.

게다가 새로운 환경에 어른들보다 더 잘 적응한다.

그러니 모두들 너무 걱정 안 했으면 좋겠다.

당신의 아들, 딸들 정말 잘할 테니깐!


내년엔 모두들 좋은 선생님, 다정한 친구들만 만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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