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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Dec 22. 2021

무단 침입당하다

침입자다!

 경찰에 신고할 수도 없는 녀석들이 무단침입을 했다. 마음속에 빈틈이 생기면 비집고 들어오고, 신체에 결함이 생겨도 뚫고 들어왔다. 우울증과 공황장애, 간질이 그렇게 내 안으로 들어왔다. 게임에서도 3 연타를 맞으면 즉사인데, 줄줄이 소시지처럼 들어온 이것들은 인생의 5분의 1 정도만 산 나에게 죽음 직전의 시련을 줬다. 


 우울증은 ‘고3병’이란 이름 뒤에 숨어 서서히 자신의 영역을 넓혔다. 공부도 열심히 안 하면서 학업 스트레스를 받는 학생이 바로 나였다. 어찌어찌 간호학과에 들어가서 그런지 대학에 입학하곤 고3 때보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했다. 너무 열심히 한 탓일까. 이때 공황장애가 나에게 침투해 결국 자퇴서를 뿌리고 나왔다. 적성에 안 맞아 공황장애가 날뛰어 학교 수업을 들을 수 없는 지경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운명의 장난인 건지 공부를 안 해도, 열심히 해도 마음의 암 같은 존재들은 어떻게든 내 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우울증과 공황장애의 콜라보레이션은 환상적으로 역겹다. 우울증이 사람을 살게 싫게 만들면, 공황장애는 간절히 살고 싶게 만든다.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를 테다.     


 우울증은 잔잔히 거지 같다. 아침이 오는 사실을 무섭게 한다. 밤이 와야 내가 우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게 감출 수 있으니. 사람들 앞에선 웃다가 혼자 남겨지면 180도 바뀌도록 조종한다. 지킬 앤 하이드 주인공으로 내가 섰으면 대성공을 했으리라. 그리고 맑은 공기를 갈구하는 사람처럼 창문만 보면 열어젖혀 뛰어내리고 싶게 한다. 죽음을 더욱 원하게 한다.     


 공황장애는 매우 파괴적이다. 심할 때면 하루에도 몇 번씩 숨을 탁탁 막히게 한다. 롤러코스터나 자이로드롭에서 떨어지는 느낌이 끊이지 않고 느껴지며, 온몸에 찌릿찌릿한 전율이 멈추지 않는다. 가장 무섭고 끔찍한 점을 꼽으라면, 세상에 나밖에 없는 고독함이 나를 관통하는 암흑 속이다. 그 속에선 제발 살려달라고 간절히 외치게 만든다.     


 얘네 둘을 뜯어내기 위해 여러 방법을 추천받았다. ‘추천받았다’라고 표현한 이유는 하려고 해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흔한 것들 말이다. 긍정적인 생각하기, 운동하기, 취미 활동해보기, 주변에 도움 청하기…. 내 상황에선 할 수 없었다. 이미지 메이킹을 ‘항상 농담하고 다니는 웃긴 사람’으로 해버려서, 그 이미지가 내 입을 막아버렸다. 쫓아낼 궁리는 수없이 생각했지만, 저 빌어먹을 이미지 때문에 죄다 수포로 돌아갔다.     


 여기서 눈치 없이 뛰어든 놈이 있는데, 간질이다. 우리 집 대대로 간질 환자가 없고, 어려서부터 간질의 ‘간’ 자도 들어보지 못할 만큼 나랑 관련 없는 병이었다. 성인이 되고 간질 진단을 받을 수 있단 사실을 병원에 가서 알았으니 말이다.     


 간질 발작과 공황발작은 증상이 유사하다고 한다. 내가 공황발작이라고 생각한 몇몇 발작이 사실 간질 발작임을 알았을 때 소름 끼쳤다. 그래, 뭔가 통나무처럼 팔다리가 뻣뻣해지더라니. 공황장애 자가 진단 테스트엔 그건 없었거든.     


 발작하는 모습을 간호사인 언니가 발견했다. 쓰러지며 팔이 경직되고 돌아갔다. 전형적인 간질 증상이었다. 그렇게 끌려간 큰 병원에선 간질이라고 말하는 의사의 모습이 마치 형을 선고하는 대법관이 망치를 땅땅 두들기는 모습 같았다. 내가 죄를 지어 간질환자가 된 걸까,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곰곰이 생각했다. 죄가 있다면, 참회해서 없던 일이 된다면, 반성해서라도 병을 없애버리고 싶었다. 내 가슴팍엔 죄수 번호 대신 낙인이 찍혔다. ‘간질환자’.     


 증상이 점점 세지고, 사회활동을 못 할 지경에 이르니 자연스럽게 사회에 도태된 인간으로 전락했다. 혹여나 밖에 나갔다가 우뚝 멈춰 서서 작두 라이더처럼 ‘그분이 오신다…!’를 속으로 외치고 쓰러진다면, 길거리 행인에게 그만한 민폐가 없을 거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단절’된 삶이 무엇인지 다시 깨달았다. 단순히 만남 자체가 줄어드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성이 떨어진다. 말도 더듬는다. 점점 낯선 사람을 대하는 상황이 어려워진다. 인간보다 짐승으로 변하는 느낌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쓰레기통으로 내던져진 지 오래였고 밥 먹고 배설하는 기계만 남아있었다.     


 이 자아 없는 침입자들은 내가 멱살을 붙잡을 수도, 울고 불며 따질 수도 없다. 일어난 상황에 누굴 탓할 수 없다. 그저 할 수 있는 게 없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무력해지면, 원망이 희미하게 생긴다. 대상 없는 원망. 하지만 원망은 목표물이 있어야 해서 누구든 붙잡는다. 가장 잡기 쉬운 대상은 바로 자신이다. 찐득한 절망 늪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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