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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Dec 29. 2021

나의 뿌리

우울과 불안

 친구가 카톡을 보냈다. 곰돌이 푸 심리테스트를 해보란다. 단톡방에 있는 친구들은 이미 하고 결과를 캡처해서 공유하고 있었다.     


 “난 ADHD래.”

 “나는 강박증 환자래!”     


 심리테스트의 정확한 이름은 ‘곰돌이 푸 정신병리 테스트’. 선뜻 내 결과를 공유하기 어려웠다. 주의력 결핍, 불안, 과잉행동, 강박, 자폐, 우울, 조현병 6가지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나는 우울이 70%가 훌쩍 넘어 있었다. 뒤따라 불안도 높은 수치였다. 친구들은 서로 결과가 신기한 듯 채팅창에 ‘ㅋㅋㅋ’와 ‘대박’으로 도배되고 있었다. 나만 안 보내기엔 이상해질까 슬쩍 툭- 던지듯 보냈다.     


 “오, 너는 우울이랑 불안이 엄청 높네? 그렇게 안 보이는데! 역시 심리테스트는 재미로 보는 거라니까.”     


 나의 감추기 능력은 수준급이라 들키지 않은 것뿐이다. 하지만 정도가 심해 약 20년 동안 나 자신도 속이다 반쯤 돌아버려 완벽 범죄가 끝나고 말았다. 우울과 불안은 태어날 때부터 내게 붙어있었다.     


 우울증, 공황장애, 간질이 내게 들어온 건 내 탓이 아니다. 하지만 문득 생각이 났다. 간질은 내 뇌에 문제가 있다 치고, 나에게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올만큼의 우울과 불안이 있었는지 궁금했다. 우울증과 공황장애에 걸리게 되는 ‘우울 및 불안 기준량’이 있을 터. 물론 개개인이 다르겠지만, 모두에게 ‘긍정’을 외치고 다니던 사람이 이렇게 망가진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지구만 한 우울과 불안이 나에게 쏟아진 건가? 한 번에?     


 예상과 달리 우울은 기질적으로, 보이지 않는 내 밑바닥부터 있었다. 우울증과 공황장애로 심리상담을 받으러 갔을 때, 심리상담 선생님은 내게 말씀하셨다.     


 “기질과 성격은 달라요. 기질은 타고나는 거고, 성격은 후천적인 겁니다. 이건 기질을 알아보는 테스트인데... 음, 두 가지가 너무 상충하네요? 체험하고, 탐험해보고 싶어 하는 마음은 굴뚝같은데, 위험을 감지해서 피하려는 마음도 너무 높아요. 둘 다 100이 나왔어요. 이렇게 반대되는 수치가 크게 나오면 기질적으로 불안할 수밖에 없어요. 불안과 우울에 취약하단 거죠.”     


 내가? 초중고 내내 반에서 뛰 댕기는 돌+I가 바로 나였는데! 친화력은 물론이요, 항상 웃고 다녀서 분위기 메이커란 소리를 듣는 나였는데! 불안과 우울은 전혀 맞지 않다고 생각한 나였는데. 기질이 불안한데 어떻게 성격은 이렇게 똥꼬 발랄 우르르 까꿍 하는 사람일 수 있을까? 갑작스러운 병적인 강한 부정이 내 머릿속에 소용돌이쳤다. 하지만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기억을 끄집어내서 곱씹었다. 반추동물이 음식물을 개워 다시 씹고, 또 씹고, 마지막으로 씹듯이 끔찍이도 생각했다. 결론적으로 기억과 내 기질은 일치했다.     


 한 번은 엄마가 죽으면 어떡하지-하고 밤을 새운 적이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일이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진 모른다. 그냥 엄마가 사라질 것 같았다. 그래서 몰래 새벽에 방문을 열고 엄마가 살아있나 확인까지 했다. 글로만 봐도 이상한데, 상상해보니 내가 소름 끼치는 요상한 아이 같다. 다 큰 성인이 그랬으면 당장 쇠고랑 찼을 테다. 그 어린애가 밤새 안 자니 부모님은 망태기 할아범이 잡아간다고 겁을 주셨지만, 난 일면식 없는 할아버지보다 우리 엄마가 사라지는 게 더 무서웠다.     


 언제는 친구들이 내가 없는 단톡방을 만들어 내 욕을 한다고 분명히 확신했다. 내가 보낸 카톡 메시지를 읽지 않는다거나 친구들이 제대로 답장해주지 않으면, 흥분한 말티즈마냥 두 눈동자를 훼까닥 돌리며 확신했다. 쟤네가 나 빼고 단톡방 만들어서, 분명히 내 욕을 하는구나. 나 이제 왕따 당하는구나. 앞으로 어떡하지. 우울감과 불안함이 온몸을 감싸 금방이라도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러다 답장이 오면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것 참. 돌아버리는 모습을 귀여운 말티즈로 비유한 사실이 강아지에게 미안해질 정도다.     


 이 같은 집착은 꽤 오래전 일이라 잠시 잊고 있었다. 막상 기억해내니 남들 눈엔 천진난만 걱정 없이 사는 긍정적인 사람이지만, 뒤에선 부정적인 집착 사이코 같은 면모가 나도 많이 소름 끼쳤기에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이해되지 않던 모습이 이제 이해가 된다. 기질적으로 우울과 불안에 취약한 사람. 성격에 기질이 반영되어 나오니 이런 결과가 나온듯하다.      


 난 우울을 나약함의 상징으로 여겼고, 불안을 패배의 징표라고 생각했다. 흔히들 생각하는 낮은 자존감·자기 비하·자살사고 등의 베이스가 되는 감정인 우울, 불안이 내게 다가오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그래서 남에게 밝은 모습만을 보여야 한다는 미친 강박이 있었다. 내 안에 본능이, 성격으로 기질을 감춰버렸다. 성격은 내가 바꿀 수 있는 영역이니까. 속에 있는 우울과 불안이 문득 튀어나오면 애써 모르는 척, 왜 그런지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나 자신을 속였다.     


 어느새 강박은 날 지키는 방패가 아닌 내 목을 겨누는 칼날이 되어있었다. 나 자신에게 더 밝은 모습을 요구했고, 우울한 면을 죽이라고 고래고래 소리쳤다. 숨겨지려야 숨겨질 수 없는 모습은 이상하게 표출되며 나 자신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은 미친 강박은 검사를 통해서 처음 꼬리를 잡히고 말았다.  


 나의 뿌리에 우울과 불안이 있다.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온 이유도 내 뿌리의 영향이 있을 테다. 내 탓이 있다. 나 때문에 내가 힘든 거다.


'그저 일어난 상황이다.'


 버팀목이 되는 유일한 말이 산산이 부서져 버린 순간이었다. 나는 무너져 내렸고, 희망을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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