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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Jan 13. 2022

나는 팽이다

빙글빙글!

 난 이상한 팽이. 증상이 시련 가득 담긴 채찍으로 마구 후렸다. 그래서 나는 똑바로 돌지 못하는 팽이였다. 차라리 가만히 있는 게 나을 것 같단 생각이 들 정도로 돌고 있었다. 이곳은 혼돈의 카오스, 뒤죽박죽, 난장판, 엉망진창, 어쩌고 저쩌고... 나를 후려친 채찍질은 이러했다.     


 까먹는다. 자꾸 잊어버린다. 말을 하다가도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단어도 잘 기억이 안 난다. 친구들을 붙잡고 "그... 뭐더라...! 그거 있잖아. 그거..."를 외치며 스무고개를 여러 번 펼친다. 문제는 약을 먹어야 하는 시간도 까먹을 때가 종종 있단 사실이다.     


 가만히 있지 못한다. 안절부절못한 상태가 온종일 지속되는 날이 있고, 어느 날은 정도가 심해져 공황이 뒤통수를 프라이팬으로 치듯이 지나간다. 머리에 있는 피가 다 빠져나가 어질어질하고,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가 버려 순식간에 내가 누구인지도 헷갈린다.     


 뒤로 자빠진다. 간질이 와라락하고 나를 덮치면, 그냥 픽-하고 쓰러져 팔다리가 통나무로 변신한다. 해리포터가 마법을 걸면 이렇게 변하는 걸까?


 이상하게 잠을 잔다. 술을 주량이 아닌, 치사량까지 먹고 잠을 자려했는데도 잠이 안 와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다. 하루는 12시간을 자고 3시간을 깨어 있다가 밥을 먹지도 않았는데 다시 잠이 쏟아진다.     


 식욕이 고무줄 같다. 미친 듯이 음식을 갈구한다. 체할 걸 알면서도 음식을 먹고 또 먹는다. 위가 찢어지고 위액이 올라와 식도가 탈것 같지만, 욱여넣는다. 그러다 굶는다. 약을 먹기 위해 아침 10시에 단백질 셰이크 한잔을 먹고 저녁 7시까지 물밖에 먹지 않는다.   


 움직이지 않는다. 나가기 무섭고, 귀찮다. 전자는 공황장애가 날 덮칠까 봐, 후자는 지독한 우울증이 찰싹 달라붙어 있어서. 그래서 아예 나가지 않는다. 이불은 내 친구다.     


 공허하다. '외롭다'보다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만 있다. 어찌 보면 더 무섭다.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감정.

 

 가끔 사람들이 왜 저렇게 행복한지 궁금할 때가 생긴다. 그냥.     


 몸에 상처가 났다.     


 가뜩이나 나를 표적으로 삼고 있는 원망이 내 안에서 일어나는 모습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온몸으로 느끼는 시간 동안 몸집을 더욱 키웠다. 서서히, 하지만 잠깐 눈 돌리면 어느새 커버리는 개구리알처럼 앙큼한 원망 덩어리는 기어이 나를 생명의 경계까지 밀어냈다.     


  채찍질은 팽그르르 돌아야 하는 팽이를 운명으로 이끄는 조력자다. 근데 나는 그냥 처맞고 있는 팽이다. 정상적으로 돌지 못하고 바닥에서 냅다 뒹굴고 있는 도태된 팽이. 언제쯤 나는 중심을 잘 잡는 팽이가 될 수 있지? 남들처럼 아름답게 돌 수 있을까? 난 그저 방 한편에 웅크리는 일만 할 수 있었다.     


 어느새 나는 이상하게 돌고 있었다. "돌지 못하는 수준에서 발전했으니 좋은 거 아닌가요?" 아니요. 다른 사람들은 팽이 중심을 잘 잡으며 꼿꼿하게 세워서 도는데, 나만 비보이가 브레이크 댄스를 추듯 엎어졌다 자빠졌다 난리를 치며 돌고 있었다. 뭐, 어떻게든 돌았다. 해석하자면 남들은 그냥 정상적으로 사는 반면, 난 '결과'란 개념을 죄다 '무시'하고 '어떻게든 되겠지~' 마인드로 살았다는 뜻이다.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정신이 삐딱 노선을 타서 반 정도만 돌아버렸다. 완전히 돌지 않은 건, 언젠가 다시 올곧은 팽이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 겁쟁이였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일부러 술을 마시고, 약도 마음대로 먹고, 태양을 보지 못하고 달만 보는 수면 패턴, 스마트폰에 머리를 박고, 온종일 끝없이 도전하는 방송만 봤다. 아플 건 다 아파하고, 아프다고 한탄하고, 다시 이상한 팽이같이 사는 루틴이다. 정말 어떻게든 살았다. 이게 진짜 내 모습이고, 아픈 사람이 마음대로 사는 것이 왜 문제가 되냐며 합리화시켰다.      


 현실을 외면하려는 정신머리도 한계였다. 미친 팽이 같은 내 모습을 점점 알아차렸다. 온몸의 근육은 다 빠져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찼다. 수면 패턴은 뒤 바뀌어 피로가 쌓이고 스트레스가 더해졌다. 무심결에 나오는 세상을 향한 원망과 열등감, 나를 향한 증오가 내 방 가득 차 버렸다. 자존감이 낮아질 대로 낮아져 더 이상 ‘나’란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냥, 모든 존재가 싫었다.     


 다시 빙글빙글 돌아가는 팽이로 돌아가야 했다. 이런 모습은 반만 돌아버린 나에게 은근한 충격이었다. 반쪽은 '원래 이런 사람이야.'하고 인정하지만, 반쪽은'이런 사람이 아니었어!' 하는 아수라 백작 같은 혼란상태였다. 무엇보다도 생난리를 피우며 도는 비보잉 팽이는 주변인들에게도 피해를 줬다. 약을 조절했는데도 호전되지 않아 의아해하는 의사 선생님, 걱정하는 가족과 친구들, 운동하다 나 때문에 당황하시는 필라테스 선생님... 요즘 세상에 독창적인 걸 좋아한다지만, 난 정상적인 팽이가 될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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