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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빛 Sep 17. 2022

삼십대, 5년만에 첫번째 이별

소개팅은 올해만 여섯번째.

 평소에는 내 나이를 실감할 일이 별로 없다. 아침에 뒤척이는 것도, 밤에 잠이 잘 안오는 것도 나이탓이려니 하지만 입버릇일 뿐, 나이가 들었음을 실감하게 하지는 않는다. 그런 나에게 오랜만에 이별이 찾아왔다. 서른 여섯이나 먹어 놓고도


 '어디가서 서른 둘이라고 해도 먹히지 않을까? 아냐, 서른 넷?'


 이런 생각을 하는 철없는 나에게, 정말 오랜만에 이별이 말을 건다.


 '너 이제 삼십대 후반이다.'

 

 사람을 나이로 가늠하는 것이 싫었다. 비혼인 사람을 두고, 왜 결혼을 못했는지 알 것 같다는 사람들의 무례함에 몸서리쳤던 나인데 막상 이별을 눈앞에 두니 내 탓을 하게 된다. 5월말에 만났던 사람이 약 4개월만에 잠수이별을 택했다. 혼자 살아온 시간이 길다보니 맞춰 나가는 것이 버거웠던 그는, 나의 입을 막고 도망가는 것을 선택했다.


 20대 후반의 나였다면 갈등은 대화로 해결해야 한다는 믿음으로 수백통의 전화를 그에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말로 아무리 타일러도 통하지 않는 사람이 있음을 안다.  지인들은 그 사람이 이상하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잠수이별은 그가 처음이 아니다. 작년에 만났던 소개팅남도 그랬다. 그 전날까지 자기 회사 앞에 와서 기다려주면 안되냐며 웃음을 남발하다가 잠수를 탔다.


이쯤되면 고민하게 된다. 혹시 내 문제일까?

나도 모르겠다. 서른이 넘어 반복되는 이별은 내 잘못일까?


 결혼은 선택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이별을 눈앞에 두고서는 마음이 약해진다. 자꾸 이렇게 사람을 떠나보내는 내가 정상인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십대의 나에게는 묻지 않았을 질문을 한다. 아이는 갖고 싶은지, 결혼은 정말 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 삼십대에 만난 첫번째 이별은 나에게 어떤 어른이 될 것인지 진지하게 묻는다. 비혼을 이야기하려면 이제는 철학이 필요해졌다.


 삼십대 후반을 눈앞에  나는, 사실은 아직 사랑을 하고 싶다.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하고 싶어질 , 목적으로 두고 싶지 않다. 아이도 마찬가지이다. 딩크인지 아닌지를 사랑하는 사람없이 택하고 싶지 않다. 그러면서도 직업인으로서의 전문성을 갖고 싶다. 그런데 이제 이십대가 아니니까, 나이를 먹었으니까 선택해야 한다고들 한다. 비혼인지, 딩크인지, 승진을  것인지.


선택이 필요한 나이. 이유없이는 비혼을 택할 수 없는 나이. 나는 평범한 대한민국의 30대 후반 싱글 여성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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