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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빛 Nov 05. 2022

나는 6년째 덕후로 살고 있다.

나는 왜 덕질을 하게 됐을까?

 나는 사람들이 흔하게 이야기하는 덕후다. 그렇다고 음침한 분위기를 풍기지는 않는다. 오히려 내 주변의 덕후들은 적당히 활력있고 밝게 살아가고 있다. 주변 덕질 메이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덕후 본능은 유전자에 새겨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 덕질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쉽게 몰입하고, 생각보다 오랫동안 그 일에 매진한다. 물론, 그 일은 ‘사람을 사랑하는 일’ 일 수도 있고 ‘캐릭터를 좋아하는 일’ 일 수도 있다. 서른이 넘은 후에만 나는 아이돌, 클라이밍, 스쿠버 다이빙, 춤(포호-소셜댄스), 필라테스, 웨이트 트레이닝에 몰입한 경험이 있다. 그래서 조금씩은 다 할 줄 안다는 것이 나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이 중 오늘은 ‘아이돌 덕질’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 싶다.


 언제부터 연예인을 좋아했었는지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 시작에는 이승환, 서태지, 라디오헤드가 있다. 중학교 시절에는 라디오헤드 CD를 수입버전까지 모았고 서태지의 TAKE 시리즈 앨범이 절판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주변 친구들의 언니 오빠들이 갖고 있는 테이프를 수색해서 마침내 하나를 얻어 모은 적도 있다. 고등학교 2,3학년 때는 부모님을 설득해서 12/31일에 남동생과 잠실에서 이승환 공연을 보고 새벽 3시에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오기도 했다. 쎈넷, 드림팩토리 등 초창기 사이트에서 활동을 하기도 했었다. 대학생이 된 이후에는 다양한 대외활동을 하느라 덕질은 조금 소강상태였으나 꾸준히 2pm의 장우영, 슈퍼주니어의 김희철을 좋아했던 기억이 있는 걸 보면 내 안의 덕후 유전자는 여전히 활동 중이었던 것 같다.


 덕질을 본격적으로 하지 않았던 이유는 연애에 몰입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스물셋부터 연애를 시작해서 6년, 3년씩 장기 연애를 했었고 그 연애가 모두 마무리 되고 난 시점이 2016년 정도였다. 서른이 갓 넘어 가뜩이나 마음이 싱숭생숭한데 결혼을 생각했던 남자와 헤어진 나는 몰입의 대상이 필요했다. 사랑했던 남자에게 장문의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고, 그가 남긴 부재중 전화를 붙잡고 울기도 했었다. 이 모든 행동이 결국 나를 소진시켜 버리는 일임을 알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그러던 중에 베스트 프렌드에게 크게 꾸지람을 듣기도 했다.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 외로움에 친구에게 너무 기대버렸고 그 행동이 힘들었던 친구는 결국 나에게 한소리를 안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나를 갉아 먹는 일련의 일들이 벌어지던 그 시기 나는 프로듀스 101 시즌2를 만났다.

 

 그 프로그램이 얼마나 조작되었는가는 지금도 나에게 중요한 이슈가 아니다. 나는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위로를 얻었다. 10대~20대의 아이들이 자신의 꿈을 향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일주일에 1번씩 보면서 그들의 마음에 나도 동화되어 갔다. 누구보다 간절해 보였던 그 아이들을 농락하는 엠넷을 싫어했으면 싫어했지, 그 곳에 나와서 어떻게든 한번 더 카메라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려던 그들의 모습은 지난 날의 나를 되돌아 보게 했다. 내가 간절하게 무엇인가를 원했던 시점, 사랑했던 시기. 그 때 빛나던 내 모습. 특히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하성운이었다. 당시에는 들어보지도 못했던 소속사 출신이었다. 94년생으로 당시에는 20대 중반이었고 20대 초반에 데뷔했지만 여전히 무명인 탓에 온몸이 부서져라 춤을 추고 노래를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나는 하성운을, 워너원을 좋아하게 되었다. 2017년 6월에 결성되어 8월에 데뷔한 그들의 덕질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2018년까지 약 1년 간 워너원의 모든 콘서트를 다 다녔고(팬콘을 제외하고는 올콘), 그들이 등장하는 예능 프로그램은 빼놓지 않고 보았다. 그리고 2019년 2월에 하성운은 솔로로 데뷔하게 된다. 성운이는 노력파였다. 팬들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고, 그 노력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코로나 시국에는 앨범 판매량도 줄어 들었지만 꾸준히 팬과 소통했고 연습하는 모습을 SNS에 공개하기도 했다.


 나는 이미 주변에 공개된 덕후다. 차에 CD 플레이어가 있는 지인들에게는 성운이 CD를 나눠주기도 하고, 친한 친구들에게는 MP3도 가끔 보내준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서 나에게 하는 말들이 있다. 생각보다 많은 친구들이 이런 나를 부러워 한다. 성운이 콘서트를 보고 오면 에너지가 생겨서 다른 활동도 더 열심히 하게 되고, 음악을 듣다 보면 행복감에 마음이 즐거워지기도 한다. 오죽하면 주변에서는 너처럼 행복할 수만 있다면 나도 덕후가 되고 싶다고 하겠는가. 덕후들은 순수하다. 순수하지 않으면 대가없이 누군가를 이렇게 좋아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행복도 사사롭게 자주 느낀다. 최애가 행복해 보일 때, 최애가 앨범을 냈을 때, 예능에서 최애가 빛을 보일 때 등등. 최애가 오프 공연을 자주하면 에너지를 얻을 곳이 많아 지니 더욱 좋다.


 돈을 쓰는 만큼 활력을 얻는 활동이 삼십대가 넘어가고 나니 많지 않다. ‘사랑’과 ‘애정’을 쏟아 붓고 또 그걸로 누군가 만족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런 관계에 목말라 있다. 가족에게조차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거나 주지 못하는 경우도 많으니 말이다. 제대로 된 최애는 그 애정을 춤과 노래로 돌려준다. 나는 성운이의 무대를 특히 좋아한다. 최애는 본업을 잘해야 의미가 있다고 했던가. 성운이는 본업을 참 잘한다. 춤도 노래도 점점 나아지는 모습을 2022년 현재, 지난 5년간 확인하고 있다. 이제 나의 최애에 대한 사랑은 이전처럼 불타오르는 열정 그 자체는 아니다. 오히려 은은하게 타오르는 모닥불같다. 잊고 있다가도 삶이 힘들 때, 꺼내보면 힘이 나는 그런 존재.


 많은 사람들에게 ‘최애’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꼭 아이돌일 필요는 없다. 연예인일 필요는 더욱 없다. 대가없이 사랑할 수 있는 일, 이해관계없이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삶은 생각보다 쉽게 행복해진다. 그래서 덕후는 사라지지 않는다. 덕질은 행복하기 위한 활동이기 때문에. 내일 나는 2022 JTBC 서울 마라톤에 참가한다. 2019년에 성운이가 무대했던 대회이다. 그 뒤로 2021년 언택트 JTBC 마라톤에 참여했었고 그 인연이 올해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덕질은 새로운 도전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성운이가 아니었다면, 있는 줄도 몰랐던 활동이겠지.


 덕질은 역시, 행복한 일을 늘려주는 취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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