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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빛 Feb 06. 2023

내가 '사랑'을 결단하기까지

내 선택을 의심하고, 고민했던 결혼 준비 기간

 오늘도 새벽 2시까지 우리 커플의 보금자리를 찾아 헤매이다가 잠에 들었다. 얼마전 코로나에 재감염이 돼서 오늘로서 6일째 집에 갇혀있는데, 나는 그 6일 내내 학교 생활기록부를 쓰거나 집을 알아보거나 웨딩촬영 소품을 사면서 나름대로 바쁜 시간을 보냈다. 그 중 가장 어려운 일은 내 집을 마련하는 일이다. 아무래도 우리가 3040이다 보니 내 집 마련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된다. 삶이 완숙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적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내 마음은 늘 무엇인가에 쫓기고 있다. 


 주변 지인 중에서 내가 결혼을 고민할 때 이런 이야기를 했다. 


돈이 많으면 서로 싸울 일이 없어진다. 풍족하지 않으면 자꾸 서로를 할퀴게 된다. 마음 속에 조금이라도 걸리는 게 있으면 그만두는 게 맞다. 나이가 많으면 퇴직 시기가 빠르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돈이 그래도 조금은 풍족한 연하남을 만나기 위해 노력했어야 하는 건가. 아니면 차라리 혼자 사는 걸 선택했어야 하나.' 이런 못생긴 생각들이 나를 자꾸 쫓아온다. 상대방의 단점이 자꾸 보이고, 지원이 없는 시댁에 괜시리 뾰루퉁해진다. 그래서 하루에도 몇번씩 국내 결혼 준비 최대 카페라는 곳에 "시댁지원, 신혼집, 40대 결혼" 이런 키워드로 검색을 하며 혹시나 나를 위로해 줄 글이 없을까 찾아다녔다.


 검색을 해보니 많은 사람들이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기우는 결혼이라 친정에서 많이 도와주시는데 마음이 편치 않다는 글, 신혼집 매매 VS 전세 월세, 20평대 아이 키우기 괜찮을까요. 이런 글들이 많이 올라와 있었고 나도 읽어 보면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보았다. 친구들에게 꺼내놓으면 내 얼굴에 침뱉는 것 같고, 혹여 누구라도 그런 결혼 왜 하냐고 반문하면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막막해서 써놓은 글이 대부분이었다. 나도 그랬고. 


 비교를 하고, 또 하다가 마음의 생채기가 나고 있을 무렵 얼마 전 친구가 이야기 해주었던 조언이 떠올랐다. 그 때도 나는 남자친구가 모아둔 돈이 생각보다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마음이 심란했던 상태였다. 그래서 멀리 미국에 살고 있는 친구와 줌으로 만났고 결혼 이야기를 하다가 나의 고민을 넌지시 털어놓았었다. 그러자 그 친구가 막 웃고 이야기했다.


 "니가 볼 때 나 되게 잘사는 것처럼 보이지? 나도 신랑이랑 처음에 하나도 없이 시작했잖아. 그리고 우리 신랑은 이제 40대 중반이야. 근데 그래도 나 우리 신랑 사랑하잖아. 처음엔 나도 비교하고 고민 많이 했지. 그런데 어쩌겠어. 너나 나나 우리는 부모님께서 남자 경제력을 보라고 가르치지 않으셨잖아. 우린 사람을 보라고 배우고 자랐기 때문에 어쩔 수 없어. 이번 생의 업보야ㅋㅋ "


 그 말이 어찌나 위로가 되었던지. 그 친구는 여전히 신랑을 사랑했고, 너무 사랑하는 그 모습에 감화되어 나도 그런 사랑을 하고 싶었었다. 천생연분이란 그런 것이구나 싶었고. 그런데 이야기를 듣다보니 그 천생연분 또한 사람의 마음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걸 알았다. 


 내가 좋아하는 인스타툰 작가님 중에 하다하다(@hadahada.drawing)님이 계시는데 그 분이 '독신주의자와 결혼하기'라는 툰에서 남편분께 들으셨다고 남긴 이야기가 이제사 마음에 와닿는다. 작가님이 현재 남편분께서 사랑을 고백할 때 "사랑은 인내이자 이해, 온유함이자 모든 것을 참는 것이라 읽었소.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결단이고 그걸 평생지켜내는 것이오."라고 하셨다고 만화에 남기셨는데 이제서야 무릎을 치게 된다.


 나는 이 남자를 감정적으로 사랑한다고 여겼지만, 결단을 내리고 평생지켜내고자 마음 먹는 일을 망설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와 사랑이 그렇게 어렵고, 힘든 일임을 깨닫고 있다. 그냥 감정가는 대로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나 역시도 부족한 점이 많다. 감정 기복이 있고, 하기 싫은 일은 끝까지 미루다가 막판에 가서야 밤을 새며 하는 계획성이 없는 사람이다. 집안 정리에 서투르고 게으르다. 하고 싶은 일은 많은데 끝까지 해 내는 일은 많지 않다. 남자친구도 이런 나의 단점을 잘 알고 있고, 그래서 결혼하면 잘 살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특히 집안일을 할 때 본인에게 내가 예민하게 굴거나 화를 낼까봐 걱정이 많았다고. 그가 보기에 나는 바깥일에는 능하지만 자기 자신을, 집안을 챙기는 데에는 미숙한 어린아이였던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은 나를 사랑하기로 어느 순간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런 나의 단점을 감내해야 할 것으로 여기고 보듬어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의 남자친구의 최대 단점은 사실 경제력과 키이다. 경제력도 부족하지는 않다. 공단에 다니고 있으니 정년까지는 끄덕없고, 워라밸도 좋다. 대기업 만큼 연봉이 높지 않고 현재 모아 놓은 돈이 많지 않다는 면에서 부족하다고 표현했을 뿐 사실 매우 평범한 축에 속한다. 그렇다고 시댁이 부족한가? 그렇지도 않다. 늘 나를 고맙게 여기시고, 따뜻하게 보듬어주시려고 노력하신다. 지원해주시기 힘드신 만큼 마음으로 도와주시려고 결혼 전인데도 목 아프지 말라고 모과차를 만들어서 선물해주시기도 하셨다. 일하는 사람 힘들게 하면 안된다고 남자친구에게 먼저 이야기해주시기도 하시고. 


 결혼을 처음 결심했을 때는 우리 남자친구는 돈 조금 못 모은 것 빼고는 완벽하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최대의 단점이라면 이 사람은 매우 좋은 사람이라고 판단했었다. 성격이 못되거나 나를 힘들게 할 구석은 하나도 없었으니까. 오히려 내가 술마시고 늦게 들어오면 나를 기다려주고, 데리러 나올 따뜻한 사람이다. 


 고민이 계속되다 보니 남자친구도 느꼈는지 어제 그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바뀌지 않을 상황들로 너무 고민하지마. 우리가 시작을 작은 집에서 한다고 그게 영원할 거라는 의미도 아니고, 우리 둘이 행복하게 지내면 누가 봐도 저 커플은 사랑하는구나, 멋지다고 이야기해줄거야. 나는 너랑 그렇게 살고 싶고, 그렇게 사랑하고 싶어."


나에 대한 그의 사랑을, 그의 결단력을 이 말에 느꼈다. 이 사람은 내가 투자를 하다가 실패해서 돈이 없더라도, 부득이하게 일을 그만둬서 집에서만 있더라도 나를 비난할 사람이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더 깨달았다. 이제는 나의 결단력이 필요할 때이다. 나는 늘 감정에 휘둘리는 사랑을 해왔다. 이성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내 마음이 가면 직진하는 것이 내 삶이었는데 이 사람을 만나 새로운 사랑을 생각하게 된다. 내 경우 사랑이라는 감정이, 이성적인 판단으로 옮겨가는 데까지 진통이 있었다. 모든 것이 완벽한 사람이 아니면 누구도 사랑해서는 안될 것만 같은 감정 때문이었다. 이제서야 이 사람이라면, 나에 대한 결단을 지켜낼 수 있겠구나라는 확신이 생긴다. 주변 시선에 그만 신경쓰고 내 사랑을 지켜내는 데 좀 더 힘을 써야겠다. 모든 것이 완벽한 사람은 있을 수 없으니 결단을 지켜내는 일에 조금 더 신경을 써야겠다. 그게 곧 내 사랑을, 내 행복을 지켜내는 일이 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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