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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빛 Jun 22. 2023

서른여덟, 결혼을 했다.

인연은 진짜 정해져 있는 걸까?

 서른 한살의 연애를 마지막으로 꽤 오랜 시간 싱글의 삶을 만끽하며 살았다. 그래도 아쉬운 것이 없었다. 세상에 관심이 많았고, 방학이라는 여유가 있었던 나는 서른한살부터 코로나가 터지기 전까지 열심히 놀았다. 2015년에 스쿠버 다이빙을 시작했고, 2016년에는 스노우 보드를 경험했다. 오키나와, 제주도, 보홀, 사이판, 모알보알을 다녀왔고 2018년 하성운 덕질을 시작했다. 중간 중간 콘서트를 다녔고, 2019년에는 포호(Forro)라는 춤을 시작했다.


 삼십대 중반까지 약 5~6년간 나는 일하고 놀고 먹는 데 충실했다. 놀만큼 놀았고, 교사로서 나름대로의 경력도 잘 쌓아서 책을 내고, 문제를 출제하는 데 발가락 하나 정도 걸치기도 했다. 그 와중에 소개팅은 들어오는 대로 다 했다. 그런데, 나에게 집중하다 보니 '연애'를 꼭 해야 하는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아니 오히려 연애를 시작하면 덕질을 못하게 될까봐, 육아 휴직으로 경력이 단절될까봐 걱정이 됐다.


 나는 결혼에 절실하지 않았고, 계속 되는 소개팅은 나를 지치게 했다. 인연으로 이어지지 않는 사람들과의 계속되는 만남에 내 자신이 소진됐고, '나는 결혼이 목표인 사람인가?'라는 궁극적인 질문이 내 안에서 생겨났다. 그 와중에 '상승혼, 하향혼'이라는 이상한 키워드도 접하게 되면서 '결혼의 목적'이 무엇인지 꽤나 고심했다.


 - 돈이 많은 남자와 결혼하고 싶은가?

 - 결혼 후에 행복하려면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은가?

 - 경제력이 충만하면 나는 '행복'할 수 있나?


 돈이 많은 사업가, 집은 있지만 정년이 보장되지 않은 회사원, 공무원 등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며 내 스스로에 대해 객관적으로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나를 인정해주는 사람과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결론을 내리고 보니, '저와 결혼하면 학교를 그만 두어도 된다.'고 말하거나 '육아에 전념할 수 있는 직업이라 소개팅을 결심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경제력이 좋아도 걸러내게 되었다. '덕질을 하는 사람은 이해할 수 없다.'거나 '취미가 너무 많다.'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탈락!(그 사람들도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당연히!)


 결혼은 그 다음 선택의 문제였다. 그렇게 지지부진한 소개팅하는 날들이 이어졌고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되었다. 키도 작고, 연봉도 내가 더 많았지만 대화가 끊이지 않았고 순박해 보이는 모습이 좋았다. 40대 초반의 나이에도 때묻지 않은 모습에 끌렸고 한번 더 만나볼까. 한번 더 만나볼까 하면서 서로를 알아갔고 능숙하지는 않지만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모습에 본격적인 연애를 결심하게 되었다.


 우리는 둘다 만혼이다. 특히, 신랑은 만혼 맞다. 40대 초반의 나이에 제대로 된 연애는 처음이라고 했다. 주변 친구분들도 나를 만나서 다들 '고맙다'고 하더라. 누군가는 나에게 아깝다, 미련하다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자신있게 지금까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괜찮아서 결혼했다고 이야기한다.


 결혼을 하기 전까지는 나도 고민이 많았다. 괜히 손해보는 것만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 때도 있었고, 어차피 늦었는데 결혼이라는 걸 꼭 해야하나 싶기도 했다. 그냥 살던 대로 사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꼭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예식장을 잡고 나니 목적과 방향성에 대해서는 잊어 버린 채 결혼을 향해 달리게 되었다. 심지어 우리 집에서는 조금 반대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셨는데도! 그 기저에는 이 사람과 함께한다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줄 것 같다는 마음이 있었다.


 사귀는 중간에 아버지가 초기 위암 판정을 받으시고 수술을 하셨는데 이 사건도 한몫했다. 나는 외로움에 생각보다 취약한 사람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고, 장녀로서의 책임감 또한 무거웠다. 누군가와 짐을 함께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찾아왔고 이 사람은 그 역할을 옆에서 잘 해주었다.


 그래서 결혼을 했다.


 완벽한 결혼은 있을 수 없다. 저마다의 인맥풀이 다르고, 감당할 수 있는 영역도 다르다. 적어도 나에게 절실한 것은 경제력이나 남자의 직업이 아니었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 나와 시간을 보내려 노력하는 사람이 1순위였기 때문에 지금의 남편이 최적의 상대였다. 결혼을 하고 나니 오히려 그동안 아쉽게만 느껴졌던 남편의 단점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집안일을 더 하려 애쓰고, 나보다 꼼꼼한 면이 더 두드러진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질투심도 조금 줄었다. 같이 결혼 준비를 하던 옆자리 선생님이 명품 자랑, 시댁 자랑, 돈자랑을 하면 왠지 모르게 위축됐던 꼬인 마음이 사라진 게 참 신기하다. 그만큼 지금의 생활이 만족스럽기 때문이겠지?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존중한다. 딩크도 싱글도 모두 함께하는 다양한 세상이 좀 더 재미있기도 하다. 그래서 이 글은 결혼을 장려하는 글이 아니다. 다만 뒤늦게 결혼을 하게 된 계기를 정리해 보고 싶었다. 결혼의 목적을 되짚어 보고, '나의 결혼'이 갖는 의미에 대해 생각하며 애초의 마음을 새겨보는 것이다. 가끔 흔들릴 때, 결혼 괜히 했어! 싶을 때 지금의 마음을 되짚어 보기 위해서.


 인연은 정해져있지 않다. 하지만 '나에게 맞는 인연'은 따로 있긴 있다. 그런 사람과 만나서 마음을 나누려면 객관화와 타협하지 않는 마음이 중요하다. 지금 내 상황에, 내 경제력에, 내 나이에 만날 수 있는 나의 인연. 그런 인연이 찾아왔는데도 스스로에 대한 객관화가 부족하면 놓칠 수 밖에 없다. 과한 욕심으로 정해진 인연도 발로 찰 수 있다. 그래도 상관없다면 역시 타협하지 말아야 한다. 마음에 흔쾌하지 않은데 억지로 억지로 힘든 길을 가다보면 그 역시도 언젠가 곪을테니까. 나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주체성'을 가지면 좋겠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시기가 늦어지더라도 자신의 선택을 뜯어보고 그 선택애 후회하지 않을 수 있도록 결정한다면 모두가 결국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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