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의 잠꼬대에 감동하는 나
2주 전 주말에 친구 아버님께서 돌아가셔서 장례식에 다녀왔다. 자식들 보다 더 힘들어 보이는 어머님의 모습이 결혼 후에야 더욱 눈에 들어온다. 친구는 어머니를 더 걱정하고 있었다. 실제로 노년의 부부는 배우자를 여읜 후에 슬픔을 견디다 따라가는 경우도 많다고 하던데, 타인으로 시작한 인연이 평생을 거쳐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깊어지는 거구나 싶어 집에 돌아오는 길에, 관계에 대한 책임감을 느꼈다.
그 이후로는 침대 누워 옆에 있는 신랑을 가만히 쳐다보는 일이 잦아졌다. 숨을 쉬는 이 생명체가 나를 믿고, 결혼해서 같이 살고 있다는 것이 놀라우면서도 걱정스럽다.
- 만약 내가 아프거나 사고를 당한다면?
- 옆에 누워 있는 이 사람이 갑자기 사라진다면?
그 상실감에 대해 생각하다가, 잠을 뒤척이는 신랑에게 "건강해야해. 우리 건강하자."라고 말했다. 요 며칠 건강타령을 하는 내가 어이가 없었던지, "나 건강해. 무슨 일 있어?"라고 말하곤 이내 잠에 든다. 그러기를 반복하다가 잠이 오지 않아 거실에 나와서 영상을 보고 있었는데, 안방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왜, 왜, 왜 왜?? 다리에서 피가 나??"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서 안방에 뛰어 들어가 보니 잠꼬대를 하던 신랑이 버둥거리고 있다. 피를 흘린다고 피를 왜 흘리냐고 버둥거리고 있길래, 들어가서 가만히 안아줬다.
"나 괜찮아. 나 피 안나. 나 여기 있어."
이야기하고 안아줬더니 품에 들어와서는 피를 흘리고 있어서 걱정했다고, 이야기하면서 무슨 이상한 말들을 쏟아 내더니 다시 잠에 든다. 며칠 내가 물었던 질문들이, 이 사람을 은근히 걱정스럽게 했나 싶어서 미안한 마음이 들다가도 불과 2년여전에는 타인이었던 그의 꿈 속에 내가 등장한다는 사실이 의뭉스럽게도 조금 설렌다. 내가 느꼈던 책임감과 관계의 무게를 남편도 느끼고 있었구나 생각하다가 이 사람도 겁이 날 수 있겠구나 싶어서 다시 한 번 건강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부모님께는 죄송하지만, 철부지 딸로 집에 얹혀 사는 동안 나는 타인을 위해 건강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다이어트를 하거나 운동을 하는 이유는 온전히 '나'를 위해서 였다. 부모님이 건강하셨으면 좋겠다고는 생각했지만, 그것 또한 혼자 남겨질 나의 슬픔이 두려워서- 라는 욕심 때문이었다.
그런 내가 새로운 가정을 꾸려서, 또 한 명의 '가장'으로 책임감을 이제서야 조금씩 느끼게 된다. 내 방을 쓸고 닦는 것에는 인색했던 내가 매일 집을 청소하고, 물컵 하나 제대로 씻는 법이 없었던 내가 설거지통과 배수구까지 매일 깔끔하게 닦아 낸다. 엄마가 방구석에 머리카락이 왜이렇게 많냐며 잔소리를 하실 때면, 내 눈엔 안보인다고 툴툴거렸었는데 거실 구석에 떨어져 있는 머리카락 한올까지도 놓치지 않고 매일 청소한다.
'책임감'은 나를 독립된 한 명의 사람으로 키워내고 있다. 스스로의 건강을 챙기고, 집안의 환경을 정돈하는. 결혼 전에 철부지인 내가 방청소도 어려운데 집안 살림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걱정할 때 마다 먼저 결혼한 친구들이 자기 집이 생기면 달라진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더니 다 근거있는 말들이었다. 책임감은 오롯이 '서로만을 믿고' 시작한 이 여정에서 독립된 한 명의 인간으로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키잡이다.
'함께 살고 싶은 인생'에 동반자로서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오늘도 노력하며, 나 때문에 꿈 속에서도 걱정하는 이 남자를 조금 더 마음을 열고 사랑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