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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빛 Oct 18. 2023

철부지 새댁의 첫번째 명절

아무것도 안하는데도 서러운 추석?

 5월에 결혼 후 그럭저럭 무탈한 신혼을 보내다가 드디어 첫번째 명절을 맞이하게 되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명절에 한복을 입어야 한다', '절대 자고 와서는 안된다', '시키는 일을 곧이 곧대로 하지 마라' 등등 훈수 아닌 훈수들을 들었고 모든 부모님들은 결혼 전후가 다르다는 괴담같은 이야기도 들으며 설레임 반, 두려움 반으로 명절날이 다가왔다.

 

 다섯살이 많은 신랑이 어른은 어른인지, 명절이 열흘 전부터 명절 날 무얼 사야할지, 어떤 준비를 해야할지 나에게 의견을 물으며 분주해 했다. 직장일에 치이고 있었던 나는 신랑의 말을 듣고서야 '며느리'의 자리가 실감이 났고 무엇인가 준비를 하긴 해야겠다는 마음에 친정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하루 자고 와야지.' 라고 하시며 첫명절이니 용돈만 드리기 보다는 선물도 함께 준비하는 것이 좋다고 이야기하셨다. 


 "그래도 처음으로 식구가 된건데, 하룻밤을 자고 와야지." 


 이 말이 왠지 따뜻하게 들렸다. 주변에서는 나의 이런 결정에 대부분 반대했다. 첫 명절에 자고 오기 시작하면 계속 그래야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런데도 나는 왠지 시댁에서 하루 자면서 그 날 밤에 시부모님과 아가씨와 우리 신랑과 술도 한잔하고 도란 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전을 부치고 뒷정리를 하는 것은 자신이 없었지만 그 모든 일이 끝난 밤에 새로 가족이 된 사람들과 수다를 떨며 그들을 알아가고 싶었다. 그래서 신랑에게 말했다.


"오빠, 첫 명절이니까 하룻밤 시댁에서 자고 오자."


 그 말은 듣고 신랑은 깜짝 놀랐는지 안그래도 된다고 손사레를 쳤다. 시어머님께서 안그래도 전화하셔서 연휴가 긴데 시댁에 오지 말고 여행이나 다녀오라고 하셨단다. 그래도 첫 명절인데 어떻게 안가냐고 하니, 굳이 올거면 명절 당일날 왔다 가라고 차례도 안지내서 준비할 게 없다고 하셨단다. 그런 대화를 나누던 중에 내가 가서 자고 오겠다고 하니 깜짝 놀란 모양. 그러면서도 은근 고마워하고, 좋아하는 걸 보니 마음이 뿌듯하기도 했다. 우리는 늦게 결혼했기 때문에 서로의 부모님과 지낼 수 있는 시간이 짧다. 온전히 건강하게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아마도 10년 정도가 아닐까? 10년 후에는 부모님도 거동이 불편해지실테고, 혹시 아이가 생기면 함께 시간을 보내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더욱, 신랑은 고마워했다. 자신이 늦게 결혼했지만, 잘살고 있다고 부모님께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우리는 추석 전날 오후에 시댁에 갔다. 막상 도착해 보니, 어머님께서 미리 준비하신 전과 잡채, 갈비가 부엌에 있었다. 부엌일이라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그래서 과일을 깎다가 놓쳐서 바닥에 털어뜨리는 일이 잦는 며느리가 일을 돕겠다고 그러다가 다칠 것을 우려하신 어머님의 배려였다. 그래서 나는 늦은 점심을 얻어먹고 신랑 친구 부부와 만나 시간도 보낼 수 있었다. 저녁에는 우리가 사간 소고기를 함께 구워먹었다. 와인도 곁들이며 대화를 나누었고 시부모님의 신혼 이야기, 신랑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잘 시간이 되었다. 아무래도 집이 아니기 때문인지 씻는 게 왠지 불편해서 적당히 씻고 나와 신랑 방에 누웠다. 누워있으니 마음이 이상했다. 아무도 나에게 일을 하라고 하지 않았고, 그 누구도 눈치를 주지 않았다. 오히려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오랜만에 시끌시끌한 분위기에 시부모님도 새로 사람 들어온 느낌이 난다고 좋아하셨다. 그런데 잠을 자려고 누우니 내가 없어서 조용했을 친정 생각이 자꾸 났다. 두분이 텔레비전을 보시고 외식을 하셨을테지. 현관에서 가까운 내 방을 자꾸 열어보시지는 않으셨을까. 내 상상 속에 우리집은 적막하기만 했다. 그렇게 뒤척이다가 아침이 밝았다. 


 시댁은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 그래도 새식구가 왔으니 명절 기분은 내겠다며 준비하신 갈비, 생선구이, 전, 잡채 등이 상에 올라왔고 황태국과 함께 배불리 아침을 먹었다. 어머님께서 반찬과 김치를 집에 가지고 가라며 싸주셨고, 신랑은 신혼집에 가져갈 짐을 챙긴다고 바빴다. 어느새 오후 한시가 지났다. 출발하기에 이미 늦은 시간이기도 했고, 배고프신 시부모님을 뒤로 하고 집을 나서기에는 마음이 쓰여서 근처에서 냉면 한그릇을 먹었다. 


 사실 친정과 명절 다음날부터 일요일까지 1박 2일의 여행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명절날 굳이 갈 필요 없다는 생각에 여유가 있었다. 그런데 막상 명절날 아침이 되니 우리집 아침 밥상에는 무엇이 올라왔을지, 남동생은 일어 났을지, 부모님께서 내 생각을 하시지는 않으실지- 평소 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궁금하지도 않았을 것들이 자꾸만 생각났다. 그래도 추석인데 우리집에 들려야하지 않냐고 묻지 않는 신랑이 야속했고 점심을 먹고 커피까지 시댁에서 마시고 있자니 우리집을 떠올려주고, 며느리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사람은 역시 시댁엔 없는 건가보다 싶기도 했다.


 내심 내 표정에서 불편한 마음이 들어났는지, 아니면 오후쯤 되니 어머님께서도 아차 싶으셨던 건지 어머님께서 말씀하신다. 


 "사돈어른들 집은 네가 없으니 적적하시겠다. 그래도 명절 당일에 얼굴은 비춰야 하는 건데. 안가봐도 되겠니? 우리가 너무 늦게 말을 꺼냈구나."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제서야 전날 저녁부터 불편했던 마음이 풀어진다. 야속했던 시댁 식구들에 대한 마음도 함께. 먼저 가겠다고 이야기하지 않고, 잘 참았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신랑에게 넌지시 이야기했다. 아무리 다음날 여행을 간다고 해도, 당일에 안들리면 부모님은 속상하실 것 같다고. 우리 철없는 40대 신랑은 그제서야 내가 어떤 감정인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설날에는 친정 가족들과 먼저 지내자고 이야기해주었다. 시부모님께서도 우리집은 차례가 없으니 친정에 먼저 갔다가 저녁 때 넘어오거나 그래도 된다고 이야기해주신다. 그렇게 대화를 하고 난 뒤 부풀어 오르던 감정이 가라앉는 게 느껴졌다. 


 고부갈등, 장서갈등 이런 건 모두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살피지 못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 같다. 우리 시댁과 친정은 비교적 갈등 요인이 적은 가족들이다. 차례를 지내지 않기 때문에 음식을 먼저 가서 해야 한다던가 꼭 와서 자고 가야한다던가 그런 정해진 규칙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 가족과 명절을 온전히 함께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서운했다. 평소에 함께 살 때도 사실 여행을 가거나 친구를 만나거나 하면서 홀로 명절을 보낸 적이 많았는데도 막상 내 선택이 아닌, 결혼이라는 제도를 선택함으로써 가족들과 함께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그랬다. 그런데 결혼 후에 늘 시댁에 있느라 친정에는 명절이 지나고 나서야 가게 되거나, 우리집 차례는 우리 엄마 혼자서 준비해야 한다거나, 명절 당일날 오후 늦게까지 남아 있었는데도 '더 놀다 가라.'는 말을 들어야 한다면 결국 기분이 안좋아지게 되니 신랑과 싸우게 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더 있다 가.'라는 말이 왜 이기적으로 들리는 말인지 며느리로서 명절을 겪으며 이해할 수 있었다. 


 며느리는 누군가의 딸이다. 그런데도 주변에서, 시누이가 시댁에 도착할 때까지 시집에 있었다는 말을 종종 듣게 된다. 시댁의 시누이와 점심을 함께 먹느라 친정에 가는 길이 늦어진다면 그것이 늘 명절마다 매해 2번씩 겪게 되는 일이라면 결국 그 감정은 신랑을 향하게 되겠지. 명절 때문에 결혼을 하기 싫어진다면, 그것이야말로 주객이 전도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남자를 사랑해서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과 함께 할 수 없다면 그리고 그게 당연해진다면, 그것에 대해 그 누구도 미안해 하거나 고마워하지 않는다면 그 순간 결혼을 후회할 수 있다. 나에 대한 배려, 내 감정에 대한 어루만짐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결혼한 나를 탓하게 될 것 같고. 나는 이번 명절을 보내고 우리 신랑을 그래도 인정하게 되었다. 역지사지가 되는 시부모님을 뵙고는 가족으로서 잘 대해드리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우리 시댁에서도, 우리집에서도 우리의 결혼은 '개혼'이었다. 바꾸어 말하자면 시부모님도 시부모가 된 게 처음이시고, 우리 부모님도 장인장모님이 된 것이 처음이시다. 모두가 이런 역할에는 '초보'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시부모님께서는 친정에 가보라고 조금 늦게 운을 떼셨고 나는 내 마음이, 내 감정이 이렇게 변하게 될 줄 몰랐다. 명절에 큰 의미 부여를 안하는 사람이었으니 괜찮을 줄 알았던 것이다. 우리 신랑은 내가 괜찮다 하니 그런 줄 알았을테고. 막상 친정에 가보니 괜찮다고 하셨던 우리 아빠 역시 우리를 기다리셨는지 저녁을 먹고 아시아게임을 사위와 함께 보시면서 '더 있다 가라'를 시전하셨다. 엄마도 각종 전과 김치, 사위가 좋아한다는 문어와 소라, 갈비까지 준비해서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놓으셨더라. 집에 오는 길에 신랑이 이야기했다. 안갔으면 어쩔 뻔 했냐고. 부모님 너무 좋아하신다고. 


 나도 며느리가 된 게 처음이라, 그 입장에서 시부모님과 친정부모님을 아우르는 게 어렵다. 오히려 친정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게 더 어렵다. 시댁에서 하루 자고 오자고 말을 던지면서, 명절 당일 친정에 일찍 오지 않아 서운해 하는 두 모습의 내가 스스로도 잘 이해가 안되기도 한다. 명절을 겪어보니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서, 배려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기분이 안좋아도, 얼굴에 티내는 걸 참아야 하고 그러면서도 내 마음이 이렇다는 것을 아예 숨기면 싸움이 될 수 있으니 적절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상대방은 우리집에서 지내면서 가족들이 말실수하는 것은 없는지 지켜봐야 하고 이 시각 친정이 어떨지 생각해주어야 한다. 그 생각에 본인 마음이 불편하더라도. 그래야 시댁에서 전을 부치면서도, 설거지를 하면서도 위안이 된다. 


 나는 이번 명절이 내 마음을 알아주는 시부모님의 한마디로 눈물이 핑돌았던 그 순간 덕분에 신랑과 갈등없이 즐거운 연휴로 기억되었다. 오히려 친정에서 일어났던 다사다난한 일 때문에 신랑에게 고맙고, 미안함이 더 컸던 명절이었달까..? 결국, 마음을 알아주는 것- '미안함'과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이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던 첫 명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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