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원동력이 되는 배려
내가 사랑을 느끼는 사소한 순간이 집안 도처에 있다. 밥을 하기 위해 부엌에 가다가, 밥을 하기 위해 밥솥에 플러그를 콘센트에 꽂다가, 블로그에 글을 쓰려고 충전기를 찾다가 문득 그리고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진다. 그래서 집은 나에게 힘이 되는 공간이자, 안식처가 된다.
우리 집 밥통은 부엌 하부장 가장 아래에 있다. 밥을 할 때마다 밥솥을 꽂는 콘센트가 고정되어 있지 않고 굴러다니는 통에 늘 제일 안쪽까지 손을 넣어야 한다. 허리도 아픈데, 고개를 숙이고 안쪽까지 손을 넣어야 하는 게 귀찮아서서 혼자 투덜거리곤 했다. 그나마 수고로움을 덜기 위해 콘센트는 연장해 두었는데, 어떻게 고정해야 할지 잘 몰라서 매번 그 굴러다니는 콘센트에 코드를 꽂고 다시 정리해 두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플러그를 찾기 위해 허리를 굽혀 보니 손이 닿는 곳에 플러그가 고정되어 있었다. 밥통을 넣었다 뺄 때, 조금 더 손 쉽게 콘센트를 찾을 수 있었고 코드를 꽂은 이후에 따로 선을 정리해야 할 필요가 없어졌다.
나는 귀찮은 것이 많고 태생이 게으른 사람이다. 집안 구조, 부엌 용품 하나를 변경하는 데에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미루기 일쑤이다. 나보다 부지런한 남편은, 빨래도 청소도 모두 결심한 당일 해치워야 하는 성향을 지니고 있어 내가 조금이라도 불편하다고 하면 혼자 골머리를 앓는다. 그리고는 이내 코드를 꽂기 가장 좋은 곳에 콘센트를 고정 시켜두거나 노트북 가까이에 충전기가 위치할 수 있도록 책상을 정리하는 등 방법을 찾는다. 그런 콘센트를 발견하는 그 순간, 그렇게 하면서 '나'를 생각했을 '그'를 떠올라 늘 가슴이 뭉클하다.
우리의 사랑은 그런 형태이다. 매일, 두근거리지는 않지만 내가 만든 김밥이 짜면 짜다고 곧이 곧대로 말하지만 저녁이면 얼굴을 맞대고 웃음 지을 수 있는 것은 그가 나를 배려한다고 느끼는 그 사소한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그저께 저녁에는 퇴근을 했더니 아침에 바삐 나가느라 두고 갔던 설거지거리가 새초롬하게 건조대에 차곡 차곡 쌓여있었다. 저녁 준비를 하려고 싱크대 앞에 섰다가, 눈시울이 핑 돌았다. 그 가지런한 그릇들이 그의 배려처럼 보였다. 어찌나 깔끔하던지.
‘고마워 여보!’
텔레비전을 보다 말고 신랑의 눈이 똥그래진다. ‘갑자기 왜?’ 그리고 내가 뭐하나 보다가 이내 알아챈다. '설거지 한 거 봤어? 내가 먹은 거 하는 건데 뭐.' 나는 이 순간이 참 좋다. '너'와 '내'가 만나 '우리'를 이루어 가는 과정처럼 느껴진다. 찬바람이 불어 집에 결로가 생겨도, 밤새 내린 비에 베란다에 물이 고여도 함께 있어 괜찮다고 말할 수 있다. 그와 함께라면, 즐거우니까 마음이 따뜻해 지니까. 그 힘으로 내일도, 내일 모레도 헤쳐나갈 수 있을 것만 같은 용기가 생긴다. 그의 사랑은 나에게 그런 ‘원동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