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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빛 Sep 23. 2022

결혼을 결심한 이 세상의 싱글들에게 존경을.

정말, 사랑이 전부일까?

 9월 연휴, 갑작스럽게 추워진 날씨에 남자친구에게 대하를 먹으러 가자고 이야기 했다. 아직 두 집 모두 결혼한 가족이 없어서 추석이지만 한가로웠다. 느즈막히 대하를 먹으러가서 석양도 보고, 톡톡 튀는 새우를 보며 티격태격하면서 즐거운 저녁시간을 보냈고 차에 올랐다. 

 남자친구는 유독, 이 날 늦게 나를 보러왔었다. 약속시간은 3시였는데 4시 반이나 되어서 도착했고 그 사유는 부모님을 어디엔가 데려다드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럴수도 있지, 라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그는 그 시간 동안 내가 좋아한다고 넌지시 이야기했던 브랜드의 가방을 보러 백화점에 갔던 것이었다.


 그렇게, 그 날 프로포즈 아닌 프로포즈를 받았다.


 나이 먹어서 연애하는 장점이라면 이런 것일게다. 대하를 먹고 차에 올라타서 갑자기 주는 가방에 감동을 받았다는 것. 트렁크에 꽃이 가득했던 것도 아니고 아이패드에 담긴 영상도 없었다. 하다못해 나와 결혼해줄래? 와 같은 멘트도 없었지만 나는 참 그 순간 울컥했다. 주섬주섬 큰 쇼핑백에 담긴(브랜드 이름이 떡하니 찍힌) 가방을 내민 그는 대하를 먹으러 오는 길에 나에게 이런 질문을 했었다.


 "정말 나랑 결혼을 해도 괜찮겠어?"


 나는 그 질문이 뜬금없다고 생각했다. 결혼에 대한 이야기는 때때로 했지만, 그건 우리가 30대 후반이고 40대 초반이기 때문이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나에게 모든 만남은 결혼을 전제로 한것이었고, 다른 만남과 이 만남이 구별되기 위해서는 '프로포즈'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또 그런 질문이겠거니 하는 마음도 있었다.


 "아직 잘 모르겠지만, 오빠는 지금까지 내가 만났던 사람들 중에 가장 좋은 사람이야."


 내 대답이었다. 결혼을 결심할 만큼 사람이 좋은 건 사실이었으니까. 나의 그 말에 용기를 얻은 것인지, 그는 가방을 주면서 말했다.

 

 "환불과 교환은 일주일이래. 근데 이거 받고 나서 환불하면 결혼도 안되는거야."

 

 단 한번도 명품과 관련된 것을 사본 일이 없는 그에게 이 선물은 그런 의미였다. 내가 좋아했던 수많은 것 중에 이걸 선택한 그의 마음, 이 가방을 얻기 위해서 3시간 반을 홀로 대기하며 백화점에서 돌아다닌 그 마음에 나는 큰 점수를 주고 싶었다. 나도 그만큼이나 돈을 아까워하는 사람이기에 그 결심의 크기가 느껴졌다. 그래서 웃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 2주 정도가 지났다. 가방에 익숙해졌고, 나는 여전히 그의 경제력 나의 미래 그리고 우리들의 자녀가 커 갈 세상에 대해 고민스럽다. 기후위기가 이렇게 심각한데 아이를 낳아도 되는지, 이 나이에 아직 집 한칸 마련하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데 결혼을 하는 게 맞는지, 내가 그 보다 적어도 5년 이상은 직장 생활을 더 해야 하는데 내 삶이 담보잡히는 것은 아닌지. 사랑과 무관하게 그런 고민들이 영화 장면처럼 쓱 지나간다.


 결혼이란 그런 것이다.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지점을 굳이 생각하게 될 만큼 삶을 뒤흔들어 놓는 일. 그 무게는 20대나 30대나 40대나 똑같다. 아니, 어쩌면 나이가 먹을수록 더 무거워지는지도 모르겠다. 어느새 나는 변화가 두려운 나이가 되었다. 불과 5년전만 해도 즐겼을 법한 도전이 이제는 버겁다. 결혼도 마찬가지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이 큰 도전을 해도 되는지 매순간 걱정스럽다. 


 오늘 20대 초반부터 만남 남자와 결혼을 해서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가 이야기했다. 그래도 역시, "사람이 중요해!" 라고. 아이를 낳게 되면 견뎌야 하는 수많은 불합리함과 어른이 되어도 변하지 않는 경쟁심, 그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잘 하려면 결국 그 사람의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이미 결혼을 한 유부들이 싱글의 마음을 모르듯, 나 역시도 결혼한 그들의 마음을 반도 몰랐다. 이렇게 고민하고, 괴로워하며 한 결정이었을 줄이야. 가을 자켓을 지르는 수준과는 차원이 다른 마음의 결심, 반려자를 결정한다는 마음의 무게를 이제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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