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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vecin May 11. 2024

* 내가 도와준다고 했잖아! (2024.05.11.토)

내가 도와준다고 했잖아! (2024.05.11.) *     


 - 내가 도와준다고 했잖아!     


  음악수업은 음악실에서 아이패드와 TV를 미러링해서 수업한다. 별 이상이 없이 진행되던 수업인데 이번 주 수요일에 수업하기 위해 아이패드와 TV를 미러링해서 음악을 클릭한 순간, TV에서 음악 소리와 함께 잡음이 너무도 크게 났다. 깜짝 놀라서 연결을 끊고 이것저것 다시 시도해 보았지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할 수 없이 HDMI와 아이패드를 연결하는 어댑터를 가지고 와서 수업을 진행했다. 동글이(무선 연결 도구)의 문제인가 싶어서 담당이신 A 선생님께 연락드렸더니 신속하게 답장을 주셨다.     


 - 동글이보다 스피커의 문제일 것 같으니 시간이 날 때 보러 가겠습니다.     


  빠른 답장에 깜짝 놀랐는데, 선생님께서는 또 이렇게 답변을 주셨다.     


 - 내일 기사님께서 가 보시도록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날, A 선생님께서는 또 이렇게 답변을 주셨다.     


 - 새로운 동글이를 찾았으니 설치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이 발생했을 때, 담당자분께 연락드리게 되는데 이렇게 신속한 답변과 처리는 처음이었다. 특히나 A 선생님은 너무나도 일이 많아서 시간이 없는 분이었기에 더 놀랐다. 다음 날 B 기사님께서 오셔서 아이패드와 TV를 살펴주셨고 동글이 연결을 해 주셨으며, 무엇보다도 2018년부터 오로지 아이패드 자료를 보여주기로만 사용하던 음악실 TV가 인터넷도 된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려주시면서 인터넷 연결도 해 주셨다. 1시간 동안 서서 이것저것을 살펴보시고 연결하시고 찾아보시는 기사님이 얼마나 고마웠던지! 내가 가지고 있는 음료수 중 제일 맛있는 것을 두 손 모아 정성스럽게 드렸다.    

 

  그다음 날 A 선생님과 같은 교무실에 계시는 C 선생님께서 복도에 지나가는 나에게 물으셨다.    

 

 - 선생님! 음악실 동글이는 연결이 잘 되었나요?     


  나는 깜.짝. 놀랐다. 음악실 동글이 연결이 이렇게 소문날 일도 아니었고 무엇보다도 나와 C 선생님은 복도에서 마주치면 잠깐 목례만 하던, 한 번도 대화해 본 적이 없던 분이셨다. 나는 놀라면서 이렇게 답변했다.    

 

 - 네! 선생님! 잘 연결이 되었는데요, 미러링 연결이 어쩌고저쩌고~~     


  동글이를 연결하지 않고 곧바로 TV와 미러링을 할 수 있을 텐데 이상하게도 되지 않아서 B 기사님도 고생하다가 멈춘 상태라는 것을 말씀드렸다. C 선생님께서 이렇게 답변하셨다.     


 - 제가 2교시 후 음악실로 가 보겠습니다.     


  C 선생님의 흔쾌한 말씀에 나는 또 한번 깜짝 놀랐다. 당연히 ‘네!’라고 신나게 말씀드렸고, C 선생님은 2교시 후 쉬는 시간에도, 3교시 후 쉬는 시간에도 내려오셔서 이것저것 살펴주셨다. 결국은 TV가 예전 버전이어서 안 되는 것으로 결론을 내었지만, 본인의 담당업무도 아니고, 말 한마디 나누어 본 적도 없는 나를 위해서 3층에서 1층까지 몇 번이나 내려와서 애를 써 준 C 선생님을 발견하게 된 놀라운 경험이어서 음악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것은 아예 안중에도 없었다. C 선생님은 안되는 이유를 해결해 보려고 3교시 내내 인터넷으로 자료를 검색하셨다고 한다. 얼마나 감사한지!     


  내가 늘 하는 말이 있다.     


 - 아무나 보내지 않으신다는 거죠!     


  정말 그랬다. 우리 학교에는 아무나 오지 않으신다는 걸 늘 깨닫고 확인한다.     


  오래전 D 선생님과 E 선생님의 대화 중 나왔던 이야기. 

    

 - 선생님! 이거 어떻게 해야 하나요?

 - 이렇게 하면 되지.

 - 감사합니다!

 - 내가 도와준다고 했잖아!     


  나는 이토록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없었다. 다른 일을 하고 있다가 내 귀에 들렸던 이 문구에 고개를 들어서 선생님들을 바라보았었다. 그리고 말했다.     


 - 너무나도 멋진 말인데요! ‘내가 도와준다고 했잖아’라니! 보통은 ‘내가 언제 도와준다고 그랬어!’ 일 것 같은데요.     


  음악실 문제를 이야기했을 때 수많은 일 속에서 나를 기억하시고 신속하게 일을 처리해 주셨던 A 선생님, 선생님들의 수많은 노트북 수리 속에서 음악실로 내려와 1시간 넘게 살펴주셨던 B 기사님, 나와 말 한마디 해 본 적도 없지만 귀한 시간을 내서 음악실을 내려왔다 올라갔다 하면서 해결해 주려고 노력하셨던 C 선생님까지, 모두다. 나에게 이렇게 말한 듯한 느낌이다.     


 - 내가 도와주고 싶었어!     


  아주 오래전 무언가 결정하지 못해서 오랜 시간 고민하던 나에게 F는 이렇게 말했었다.     


 - 내가 도와줄게! 걱정하지 마!


  물론 나는 그 말을 ‘믿고’ 어렵게 일을 시작했고 잘 마무리했었으며, F는 때때마다 나를 잘 도와주었었다. 늘 이렇게 말하면서.     


 - 내가 도와주고 싶었어!

 - 내가 도와줄게! 걱정하지 마!

 - 내가 도와준다고 했잖아!     


  이렇게 말해주는 누군가가 지금의 나에게도 있다면 정말, 얼마나 좋을까.     


****************     


*** 윌리엄 셰익스피어(1590~1613, 영국) 원작,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1891~1953, 러시아) 음악, 케네스 맥밀런(1929~1992, 영국) 안무로 구성된, 로미오와 줄리엣 발레 공연을 보았다.     


  셰익스피어의 원작에 걸맞는 프로코피예프의 음악도 무척 좋았고 마치 연기자들의 연극을 보는 것 같은 맥밀런의 안무가 특히 눈을 사로잡았다. 깃털같이 가녀린 몸으로 무대를 휘젓는가 하면, 파워풀한 단체 펜싱 경기를 보여주기도 한다. 고급스러운 색상의 의상과 정교한 무대 세팅도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말 한마디 없이 오로지 표정, 손짓과 발놀림, 그리고 연기만으로 3시간 동안 드라마를 끌어간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고, 관련된 이야기를 모르고 무심코 보더라도 이야기에 푹 빠질 수밖에 없는 구성이라는 것이 대단했다. 공연을 보면서 내내 생각했다.     


 - 살아가는데 말이 필요한가?

 - 누군가를 사랑하는 데에 손짓, 표정, 몸짓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아.     


  특히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는 손을 내밀어야 하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도 손을 내밀어야 하는데, 발레는 공연 내내 양손을 가만히 두지 못한다. 항상 상대방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 특징이다.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 도움을 청하는 것도, 누군가의 손을 잡아서 도움을 주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일인데, 나에게도 그런 용기가 있었으면….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은 비극으로 끝났지만, 손끝부터 발끝까지, 표정과 온몸으로 서로에게 끊임없이 이렇게 표현하고 있었다.      


 - 너를 사랑해!     


  * (2024.05.11.(토)) 케네디 맥밀런의 <로미오와 줄리엣> 발레 공연 중 커튼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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