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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vecin Jul 27. 2024

* 슬기로운 고등학교 생활 2023 *

슬기로운 고등학교 생활 2023 (2024.07.27.) *   

  

 - Q. 안 읽는 책을 사놓는 사람을 부르는 말은?

 - 오답: 지적 허영     


  아주아주 오랜만에 A와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 A가 타는 B 자동차는 어떤가요??

 - 아주 마음에 들어.

 - 저에게 추천해 줄 수 있는 차가 있을까요??

 - B보다는 C가 좋을 것 같은데….

 - C?? 비싸지 않을까요??

 - 돈 있잖아.

 - (화들짝 놀라며) 제가 돈이 어디 있어요??     


  아직은 멀쩡하지만 12년이 되어가고 있는 지금의 차 D도 거의 1년 동안 알아보고 선택했었기에 미래를 위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차에 대해서 알아보는 중이었다. 무언가 선택하는 데 오래 걸리는 나로서는 마음에 확 와닿는 무언가가 있어야 빨리 결정하는데, A가 말해준 C가 왠지 마음에 쏙 들었다. 전체적인 사이즈도 괜찮고 고급스러운 색상도 좋았다. C를 타게 된다면, 지금의 내 차처럼 다시 한번 레드 색상을 골라도 괜찮을 듯했고 아니면, 좀 더 묵직한 그린으로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다음 차의 색상으로 블루를 생각하고 있었지만, C의 블루는 내가 바라는 블루가 아니었다. 

  C가 내 마음에 들었던 것은 사실 앞모습보다 뒷모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에게 부드럽게 마감된 뒷모습이 특히 매력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차를 선택하는데 성능이나 유지비보다 뒷모습의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야 하는 나의 기준이 좀 우습기는 하지만, 나를 혹하게 할만한 가장 중요한 것은 뒷모습이다.

  한번 C를 생각하니, 그동안 운전하면서 전혀 내 눈에 띄지 않던 C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 차 옆으로 지나가는 C의 뒷모습을 보고서는 내 시야를 벗어나는 그 차를 보기 위해 고개를 옆으로 돌린 채 운전하는 나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기도 했다. 일단 C가 내 마음에 들어오기는 했는데 무슨 돈으로, 언제 사야 할지가 고민해야 하는 포인트다. 어떻게 하지?? 이런 나에게 E가 말했다.     


 - 내 차는 15년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 바꿀 생각 없어요.

 - 아? 진짜요?

 - 아직 멀쩡한데 왜 바꿔요?

 - 하긴, 그렇기는 하죠.     


  일반적으로 남자들은 차나 시계에 돈을 쓰고 여자들은 옷, 가방과 신발에 돈을 쓰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 또한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소비를 하고 있거나 어쩌면 더 과한 소비를 하는 쪽에 들어갈 것이다. 물론 시계에는 관심이 없지만, 차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기도 하고, 가방이나 명품 등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여자이기도 하다. 여하튼 한정된 수입 내에서 요모조모를 따져가며 소비를 하는 사람인 것은 분명하다. 이런 내가 요즘 가장 많은 지출을 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책이다.

  ‘글을 쓰고 싶다’라는 생각이 가득 차서 매주 글을 쓰며 내 생각을 풀어내고 있는데, 언젠가부터 ‘책을 읽고 싶다’라는 생각이 나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을 느낀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야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책 읽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하고 있다. 방학식이 있었던 어제, F가 물었다.     


 - 선생님~ 방학에 뭐 하고 싶으세요? 

 - 책을 읽고 싶어요. 정말 책만 읽었으면 좋겠어요.     


  이 말을 하고 매주 금요일에 나가는 주말 편지의 1학기 마지막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G 사이트에 탑재가 되지 않아서 근 1시간 동안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한번 완료를 눌렀는데, 페이지가 없어져 버리자, 내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 Oh, Shit!     


  이 말을 들은 F가 말한다.     


 - 책을 읽고 싶다는 고상한 말 다음에 ‘Oh, Shit!’라고 하시니, 반전 매력인데요. 멋있어요!

 - 하하하!     


  저번 주에도, 이번 주에도 책을 샀더니 지금 내 책상 위에는 6권의 안 읽은 책이 놓여 있다. 언젠가 H가 말했었다.     


 - 이삿짐 옮길 때 일하시는 분들이 제일 힘들어하는 것이 책이더라고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서 읽는 것도 많이 해 보았지만, ‘내 책’이 아닌, ‘남의 책’이어서 그런지 손에 잘 잡히지 않았고, 읽었던 내용도 책을 반납하면서 그대로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짐이 될 수도 있는 책들이지만, 또 지금 당장 읽을 수는 없지만 일단, 읽고 싶은 책을 사고 있다. 그리고 읽어야 하는 책들을 보면서 배가 부른 것 같이 풍족하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사실이 기쁘고 기다려지고 기대가 되는 것도 신기한 일이다.


  Q. 안 읽는 책을 사놓는 사람을 부르는 말은?

  오답: 지적 허영

  정답: 출판계의 빛과 소금     


  2024년 6월 말에 5일 동안 있었던 <제66회 서울국제도서전>이 역대급 흥행으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고 한다. 예상외의 성공으로 출판사들이 놀랐나 본데, I 출판사가 홍보부스에 붙여 놓았다는 문구가 재미있었다. 안 읽는 책을 사놓는 사람에 대한 답변 중 나는 어느 쪽에 속하는 걸까? ‘지적 허영’을 보이는 사람일까 아님, 출판계의 빛과 소금인 사람일까. 이 기사에 대한 댓글들을 요약하면, 읽지 않아도 책을 구매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는 의견들이 많았고 나도 그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이다. 

  차를 구매하는 것에는 오랜 고민이 필요하지만 결국 때가 되면 사게 될 것이고, 옷과 가방과 신발은 꼭 필요하지 않아도 큰 고민 없이 혹해서 산 뒤에 후회할 수도 있겠지만, 안 사고 후회하는 느낌을 남겨놓는 것보다는 살 수 있는 형편이라면 후회함 없이 사라고 하고 싶다. 몇 번을 반복하다 보면 꼭 필요한 소비인지를 배울 수 있으니까.

  책은 다른 것들과 달리, 일단 ‘읽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책’을 발견했다면 지금 당장 읽지 않아도 사놓을 것을 권하고 싶다. 갖고 싶어서 구매하건, 읽고 싶어서 구매하건, 일단 사놓고 보면, 언젠가는 읽게 될 것이고, 행여 읽게 되지 않더라도 가끔 그 제목만 보더라도 깨닫게 되는 그 무엇이 있게 되지 않을까. 전시용이라도 말이다.

  지적 허영이라고 불리더라도, 출판계의 빛과 소금이 아니더라도, 책상 위에 널브러져 있는 책들을 조금이라도 펼쳐볼 수 있는 시간, 기다리고 기다리던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책에 푹 빠져 있을 시간이 기대된다. 자, 오늘부터 시작!     


***********     


*** 2023년 3월부터 2024년 2월까지 매주 한편씩 썼던 글이 책으로 나왔다. 일명 <슬기로운 고등학교 생활 2023>. 

  예년보다 조금 늦어졌기에 더 뿌듯하고 감사하다. 단번에 쓸 수 없는, 매주 한편씩 썼던 나의 귀한 일상, 2023년의 시간, 그 일상과 시간의 기록, 이야기.


  J가 이렇게 말했다.     


 - 작성하시면서 즐거우셨기를, 그리고 읽는 사람들에게도 선생님의 마음이 잘 전해지기를….    

 

  J의 말을 듣고 이렇게 기도하게 되었다.     


 - 쓰고 싶은 마음을 주셔서 글을 쓰게 되었고, 썼던 글을 책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을 주셔서 책으로 만들게 되었으니, 만든 책들이 꼭 필요한 사람들의 손에 들려져서 읽히도록 해 주시고 위로와 격려를 할 수 있도록 해 주세요.     


  지적 허영을 가지고 있거나, 출판계의 빛과 소금인 사람들은 빨리 구매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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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기로운 고등학교 생활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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