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면접관이 정상이 아닌 것 같은데 (2024.08.03.토) *
- 어떡하죠? 아무래도 면접관이 정상이 아닌 것 같은데.
내가 접하고 있는 극소수의 사람 중 ‘따뜻한’ ‘진실한’ ‘좋은’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는 집단은 대략 2곳이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대학교 동기들이다. 함께 있을 때는 소중함을 잘 알지 못하고 지나치다가, 몸이 떨어진 다음에야 그 가치를 제대로 깨닫고 땅을 치며 후회하는 일을 반복하는 나로서는 가끔 만나는 이 친구들을 보면서 늘 생각한다.
- 좋은 아이들이야, 여전히.
대학교 다닐 때도 실력이 출중한 학번으로 소문이 자자했었는데, 만난 지 30여 년이 넘어가는 지금도 음악계와 학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소탈한 성격에 신실한 신앙인들이다. 주로 여름에 모임이 있는데 여름방학 시작 전일 때는 종종 이렇게 말해야 한다.
- 우린 아직 방학 전이야.
내가 이 말을 하면 친구들은 늘 놀란다. ‘아직도 방학을 안 했다고?’ 그러니깐 말이다. 왜 이렇게 방학이 늦은 걸까. 6월 중순이나 말부터 방학하고 9월에 개강하는 대학교와 달리 고등학교는 주로 7월 중순이나 말부터 8월 중순까지 여름방학인 경우가 많다. 늦게 시작하기도 하지만 빨리 끝나기도 하는 여름방학. 돌아보면 여름방학은 주로 3주 정도였던 것 같은데, 최근 몇 년은 공사로 인해 4주까지 했던 때도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올해의 3주 여름방학은, 무척, 아주아주 무척, 짧은 방학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방학 전 자주 사용했던 구절은, ‘길지 않은 방학’이라는 단어였다.
- 길지 않은 방학, 잘 보내고 오세요!
올해의 3주 방학을 잘 보내야 하는 이유는 3주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년은 ‘여름방학이 1주일 수도 있다는’ 놀라운 말을 어디선가 들었기 때문이다. 겨울방학에 공사가 있을 수도 있기에 여름방학이 짧아진다는 말. 그러니 올해 여름방학을 더 꿀맛같이 보내야 할 텐데 하는 것 없이 1주일을 보내고 말았다. 거기에 전·편입생 면접이 있어서 중간에 학교에 출근해야 하기도 했다.
매년 1학기 2차 지필고사까지 끝나고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전, 또는 2학기가 시작되기 전 여름방학 기간에는, 전학이나 자퇴하는 학생들이 생긴다. 2학년인데 움직이는 아이도 있지만 주로 1학년인 경우가 많다. 갑작스럽게 전학이나 자퇴하는 경우보다 1학기의 1차 지필고사가 끝난 이후부터 고민하기 시작해서 2차 시험이 끝난 뒤에 결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예전에는 여러 번의 상담을 하면서 학생을 붙들었다면 요즘에는 학생과 학부모의 결정에 그냥 따르는 편이다. 1학년 때 한번 고민한 학생은 2학년이 되어서 결국 전학이나 자퇴를 하는 일이 많았고, 오랜 시간 전학을 고민하면서 되려 별 고민 없던 다른 학생을 흔들어 놓는 경우도 많았기에, 가능하면 빨리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 학급 담임으로서는 여러모로 지혜롭게 여겨진다.
하지만, 내가 겪었던 1학년 담임선생님들은 전학이나 자퇴로 상담을 청해오면, 시간을 들여서 정성스럽게 여러 차례 상담해 주는 분들이 많다. 같은 학생과 몇 번이나 상담한다. 그런데 요즘에는 아침에 전화로 이렇게 간단하게 알려서 아예 상담하지 못하기도 한다.
- 저 오늘 자퇴하려고요.
- 저 이번 주에 전학하려고요.
갑작스럽게 이렇게 말하면 놀라지 않을 담임 선생님이 있을까. 그래서 나는 담임을 할 때 아예 3월부터 이렇게 말했었다.
- 전학이나 자퇴는 오랜 시간 저와 상담을 한 후 결정하셔야 합니다. 결정한 다음에 통보하는 것은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
행정적으로 문서로 처리만 하면 될 일이지만 한번 학교에 들어온 아이를 그냥 보내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이 되어서, 부장을 하게 된 이후로는 담임 – 부장 – 교감 – 교장의 순으로 상담하고 결정하는 시스템이 운용되고 있었고, 그 과정을 통해서 흔들리던 마음이 진정되어 다시 학교에 정착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그런데 요즘에는 이미 결정을 한 상태로 일을 진행하는 예도 많아서 아쉬움을 자아내는 경우가 많다.
전학을 가는 학생 즉, 전출생도 있지만, 반면 전입생 즉, 다른 학교에서 들어오는 학생도 있다. 그래서 그 학생들을 면접하기 위해 학교에 나갔던 것. 전출을 고민하던 아이들은 2학기에 들어오는 전입생을 보면서 신기하게 생각한다.
- 나는 나가려고 고민했는데, 들어오는 저 아이는 뭐지?
아마도 우리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가능하다면 3학년까지 잘 버티고 버텨서 졸업까지 하기를 바랄 것이고, 좋은 성적은 아니더라도 좋은 대학교에 가고 싶어 할 것이다. 고등학교 3년을 다니는 동안 전학을 고민해 보지 않은 학생이 있을까? 아마도 90%는 전학이나 자퇴를 고민해 보았을 것이고 그걸 꿋꿋이 참고 3학년까지 올라가 있는 것이고 졸업까지 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1학년 아이들에게 이야기한다.
- 저기 3학년을 보면서 늘 생각하기를 바라. 전학이나 자퇴를 고민했겠지만 그걸 참고 지금 3학년까지 가 있는 거니까.
전학을 가는 가장 큰 이유는 다른 학교에 가서 좀 더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서이고, 전학을 가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다른 학교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할 것 같기 때문으로 알고 있다. 몇 년 전, A 학교로 전학을 갔던 B가 하루 만에 다시 학교로 돌아온 적이 있다. 다 알아보고 다짐하고 전학을 갔지만 전학을 갔던 첫날 그 학교 분위기에 깜짝 놀라서 하루 만에 다시 돌아온 B의 이야기는 내내 회자되었고, 그때 전학을 고민하던 우리 반의 C가 전학 갔다가 다시 돌아온 B를 만난 후로 마음을 다잡고 공부하여 졸업까지 한 일도 있다.
중3 지원자 중에서 신입생을 뽑는 입학사정관은 수도 없이 했지만, 다른 학교에서 우리 학교를 지원하는 전입 지원자들의 생활기록부와 자기소개서를 보면서 채점하고 질문을 만들고 또 직접 면접하는 전·편입생 면접관은 처음이었다. 생각지도 않게 신기하고 새로운 느낌이어서 즐거웠다고나 할까. D에게 말했다.
- 오! 입학사정관과는 또 다른 기분인데요?
E를 질문했는데 F에 대하여 장황하게 설명하기에 다시 E를 질문했더니 이제는 G를 설명하는 긴장된 학생들을 보며 귀엽고 애처롭고 예쁘게 보이기도 했다. 아이들은 자기소개서의 글에서 또 면접하면서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 이 학교에 꼭! 들어오고 싶습니다. 저를 꼭! 뽑아주세요!
면접관을 하고 온 다음 날, 기사를 읽다가 이런 제목을 발견했다.
- 어떡하죠? 아무래도 면접관이 정상이 아닌 것 같은데.
‘면접관이 모두 정상적일 수 없다. 우리가 사회에서 또라이를 만나듯 면접장에서도 그럴 수 있다.’라는 글로 시작되는 기사를 읽으면서 ‘크크크’하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전·편입생 면접관으로서의 신선한 기분을 가진 채 읽으니 더 우스웠고 맞는 말도 많아서 함께 면접관을 했던 선생님들에게도 보내드렸다. 합격생들을 신 학급에 배정하면서 이렇게 말해본다.
- 여러분들도 느끼셨겠지만, 면접관들은 정상이었고 또라이는 아니었어요.
- 오고 싶었다는 그 간절한 마음을 계속 품을 수는 없겠지만, 얼마나 오고 싶었던 학교였는지, 기억은 해 주기를요.
-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마시고요!
********************
*** 먹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로서는 방학을 맞이하는 아이들에게 언제나 먹는 것을 들려 보냈었다. 여름에는 아이스크림으로, 겨울에는 떡으로. 올해 여름방학 하는 날에도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들려 보내주었다.
내가 얼마나 기다리는 순간, 시간, 그림인지, 아이들은 모를 것이다. 어떤 결과이건, 한 학기를 끝내고 학교를 내려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이, 터벅터벅 내려가는 힘 빠진 모습이 아닌,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들썩거리며 즐겁게 뛰어 내려가는 모습이기를 바란다는 것을 말이다.
길었던 1학기를 보내고 방학을 보내고 있는 아이들에게 몇 마디 해 본다.
- 전입생이 있어. 새로운 느낌일 거야. 그 친구들에게 물어봐.
- 왜 온 거야??
#면접관#대학교_동기#여름방학#방학#전·편입생#전학#자퇴#전입#전출#상담#졸업#입학#입학사정관#방학식#아이스크림
* 아이스크림을 담고 있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