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5일 연중무휴 야간진료 (2024.08.17.토) *
- 365일 연중무휴 야간진료, 오전 8시 ~ 오후 10시
A 목사님의 휴가로 B 부목사님이 설교하게 되었다. 여느 때 같으면 오후 12시 30분에 끝났을 예배가 12시에 끝났다. 보통 20분~25분 동안 점심을 후다닥 먹고 오후 1시부터 성가 연습을 했을 텐데 다른 때보다 30분이 더 주어진 것을 처음 경험한 사람들이 안절부절못하며 헤매고 있었다.
- 왜 이렇게 시간이 남지?
- 예배가 일찍 끝나서 그래.
C와 D가 이렇게 말했다.
- 점심시간이 1시간은 돼야지.
- 좀 쉬었다가 성가 연습을 하니까 너무 좋다!
밤낮없이 푹푹 찌는 날씨임에도 감기에 걸린 가족이 있어서 E 병원에 가게 되었다. 사람이 너무너무 많아서 오랜 시간 순서를 기다리며 병원을 둘러보다가 벽면에 붙어 있는 글자를 보고 깜. 짝. 놀랐다.
- 365일 연중무휴 야간진료, 오전 8시 ~ 오후 10시
돌아오면서 F와 이야기했다.
- 오전 8시부터 밤 10시까지, 365일 내내 운영한다는 게 가능한 걸까?
- 몇 명이 돌아가면서 하겠지.
- 대단하기는 하지만, 너무 힘들겠다. 처음 시작하는 병원인 건가?
인터넷을 들어가 보니 더 흥미로웠다.
- 365일 매일 야간진료 (07:45~22:00)
- 점심시간 : 1 진료실 14시~15시 / 2 진료실 13시~14시 / 3 진료실 12시~ 13시
점심시간에 오는 환자가 발길을 돌리지 않도록 점심시간을 조절하고 있는 것을 보니 왜 그렇게 사람이 많은지도 알 수 있었다. 다만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화장기 없는 얼굴로 (친절하게) 진료하던 마스크 쓴 의사의 피곤해 보인 모습이 기억에 남을 뿐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 오래된 것들이 많은데 그중에 신발, 구두류가 있다. 좋은 구두도 없지만, 일단 돌아다닐 일이 많이 없다 보니 구매한 지 한참 된 신발들이 많이 있다. 구두를 신을 일이라고 해 보았자 집에서 주차장까지, 주차장에서 학교 교무실까지 그리고 주일날 정도가 다인데, 운전할 때도 운동화로 갈아신으니 정말 구두를 신고 돌아다니는 일이 많지 않다. 하지만, 많이 신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가끔씩 뒷굽을 교체해야 하거나 수선해야 하는 일들이 생긴다. 특히 제일 많이 신는 학교 슬리퍼의 뒷굽을 갈아야 하는 일은 자주 있는데, 평일에는 구두 수선방에 갈 시간을 도저히 낼 수가 없어서 토요일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1학기 내내 하다가 결국 놓쳐버리고 방학하는 날 학교 슬리퍼를 집으로 가져오면서 생각했다.
- 방학하면 구두 수선방에 가야겠어.
한쪽에 놓아둔 슬리퍼를 쳐다보면서 3주의 방학을 내내 보내고는 개학을 3일 앞둔 어제서야 (어쩔 수 없이 드디어) G 구두 수선방에 가게 되었다. 역 주변에 총 3곳이 있었는데 잘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고른 곳이었다. 슬리퍼를 포함해서 이것저것 다른 구두들도 챙겨서 총 6켤레의 신발을 맡기면서 아저씨와 이야기하게 되었는데, 나를 깜. 짝. 놀라게 하는 말씀을 하셨다.
- 새벽 4시면 일어나서 아침 6시에 출발, 7시 10분 정도에 도착해요.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6시경까지 합니다. 부천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데, 멀기는 하지만 힘들지는 않아요. 점심을 주변 식당에서 먹으면 되지만, 만 원이 넘기도 하고 식당에 가서도 혼자 먹는데 ‘그냥 여기서 혼자 먹으면 되지’라는 생각에 주먹밥을 싸와서 먹습니다. 그래서 점심시간에 문을 닫지 않아요. 비가 오면 사람들이 구두를 닦지 않으니까 열지 않고요, 예전에는 토요일에도 했지만, 이제는 토요일도 하지 않아요. 일요일과 공휴일은 당연히 하지 않고요.
토요일에 갔었다면 바람맞을 뻔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그날따라 오랜만에 짜장면을 먹었기에 ‘주먹밥‘이라는 단어에 찔리기도 했지만, 작은 공간에서 하루를 보내는 아저씨의 일상 이야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욕심 없음’, 능숙하게 구두를 다루는 손놀림 그리고 무심한 듯하면서도 편안하던 표정이 기억에 남는다.
- 저는 H 활동은 빠질게요. I와 J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쉼이 있어야 하거든요. 저에게는 휴식이 중요해요.
연속되는 활동에 ‘집중을 위한 쉼’을 위해서 하나는 빠지겠다는 나의 말에 K는 아쉬워했지만, 쉬지 않고 계속되는 활동이 나에게 어떤 상태를 줄지를 알기에 더 중요한 일들을 위해 과감하게 무언가는 하지 않는 용단, 어쩌면 ‘욕심’이라고 할만한 것들을 이제는 큰 고민 없이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반드시 ‘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삶으로 배웠으니까.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면서 이것이 옳다 또는 그르다고 평가할 수는 없지만,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하거나 공부하는 것은 보는 사람을 숨이 막히게 하고 안타깝게 하는 면이 있기도 하다. 일하는 것 자체에도 의미가 있기도 하지만, 잘 쉬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면도 있으니까. 사실, E 병원에게 묻고 싶었다.
- 오전 8시부터 밤 10시까지, 365일 내내 운영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설마,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는 아니기를, 좀 더 나아가 다른 대단한 의미가 있으면 더 감동적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E 병원이 부촌에 있다는 사실이 조금 안타까울 뿐이다. 그런데도 365일 야간진료에 오전 8시부터 밤 10시까지 운영한다는 것에 동의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크게 박수를 쳐 주고 싶다.
30분으로는 어림없는, 좀 더 긴 1시간의 점심시간이 필요하고, 수입이 별로 많지 않아도 1주일 중 하루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어 주어야 하고, 가끔은 비가 오면 모든 것을 내팽개칠 수도 있는, 나름의 ‘쉼’의 기준을 가지고 있는 사람 중의 한 명으로서, 이제는 아쉽게 흔적 없이 끝나버린 여름방학을 어쩔 수 없이 보내주며, 다시 열심히, 쉬지 않고 달려야 하는 2학기, 5개월을 생각하며 호흡을 가다듬어 본다. 천천히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천천히 깊게 숨을 내쉬고….
2학기를 맞을 준비가, 시작할 준비가 된 걸까. 2학기를 기대해도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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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지 않은 방학의 마지막쯤, 연휴 사이에 끼어있는 어제, 학교에 출근했다. 일명, 개학하기 전 교실 점검 및 2학기 준비인데, 선생님마다 학교에 출근하기 전날은 잠자리에 들기가 힘들다는 이야기들을 했다. 서로에게 이런 질문들을 했다.
- 방학은 어떻게 보내셨어요?
방학 내내 학교에 나오신 (놀라운) 분들도 계시고, 학교에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은 분도 계시고, 여행을 다녀오신 분도 계시고 나처럼 별 대단한 것도 없이 보낸 분들도 계시고….
새로운 책걸상으로 바뀐 교실을 둘러보니 (생각지도 않게) 갑자기 의욕이 솟구친다. 연두색이 예뻐서 사진을 찍어서 아이들에게 보냈다. 아이들은 2학기를 기대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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