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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vecin Sep 07. 2024

* 빨리 교복으로 갈아입어! *

빨리 교복으로 갈아입어! (2024.09.06.()) *  

   

 - 이제 종례하니까 빨리 교복으로 갈아입어!     


  ‘모든 학생이 같은 교복을 입는다’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기본적인 내용은 같지만,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여학생 동복의 경우, 일반 교복 재질 한 종류만 있었는데 니트 조끼가 허용되어서 재킷은 같더라도 그 안에 약간은 불편한 양복 재질의 회색 조끼와 실로 짜인 검정 니트 조끼 2가지 중 하나를 입을 수 있다. 앞에서 보면 회색 조끼를 입은 학생들과 재킷 밑으로 내려오기까지 하는 검정 조끼를 입은 학생들이 섞여 있어서 통일감을 느끼기가 어렵다.

  남학생 바지의 경우, 좀 더 진한 회색 바지인 동복을 하복에 맞추어 입고 다니는 아이도 있고, 교복이 아닌 일반 회색 바지를 (몰래) 입고 다니는 아이들도 있다. 남방도 교복 남방이 아닌 다른 하얀색 남방을 입고 다니는 아이들도 있다. 물론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하복의 경우, 생활복도 입을 수 있어서 네이비 색상의 상의와 반바지를 입을 수 있다. 생활복이나 교복 하나로만 입어야 하지만 상·하의를 섞어서 입는 아이들도 있고 체육복과 혼용하여 입는 아이들도 있다. 물론 안된다. 또 체육복은 체육 시간에만 입어야 하지만, 여름에는 이게 체육복 바지인지 생활복 바지인지 헷갈려서 지도하기가 무척 힘들다. 여학생 하복은 좀 불편한데, 맨 위까지 단추를 잠가야 하고 리본까지 있어서 아이들이 단추 하나를 풀고 스포츠 깃으로 만들거나, 리본을 떼어내고 입고 다니기도 한다. 핑계는 늘 똑같다.     


 - 집에다 놓고 왔어요.

 - 가방에 있는데요.     


  다양한 집업이나 후드 재킷도 입고 다니는데, 자크가 있는 지퍼형은 되고 단추로 된 후드는 안되는 등 복잡하다. 또 시험을 앞두고 일주일 전에는 편하게 입게 해 달라는 민원이 많아서 체육복 등하교를 허용하기도 했으나, 사복까지 입고 오는 아이들이 있어서 올해부터는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이토록 복잡한 교복을 정리하자면, 정통 교복, 회색 조끼, 니트 조끼, 하복과 생활복이지만, 아이들은 이것들을 섞어서 입고 다니는 경우도 많아서 교복 지도를 하면서 감정적으로 부딪히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니, 확실하게 잘못되었다고 판단되기 전에는 아예 못 본 척하는 때도 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몇 주 전 구매하는 교복이니 입학한 뒤 부쩍 성장하는 아이들에게는 안 맞는 경우가 많다. 정상적이었던 치마가 짧아지기도 하고 바지가 샐쭉하니 짧아져서 올라가 있기도 하다.

  이렇게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지만, 학급 성가와 같이 단체활동을 해야 하는 경우, 내가 담임을 맡았을 때는 같은 종류의 교복을 입게 했었다. 니트 조끼의 경우, 뚱뚱해 보이기도 하고 늘어져서 밑으로 내려와서 재킷 단추를 잠글 수 없는 경우가 많아서, 회색 조끼로 통일하게끔 하는데, 채플 성가를 할 때 재킷을 벗고 회색 조끼를 입고 깔끔하게 머리를 묶고 노래하는 여학생들의 모습은 정말 예쁘고 멋있다!

  내가 만약 지금의 우리 학교 교복을 입는다면, 치마 길이는 무릎 아래로 한껏 내려서 재단하고, 치마폭은 좀 더 넉넉하게 찰랑거리게 할 것이며, 단추를 잠그면 허리가 조금 들어가는 스타일이어서 날씬하게 보이는 회색 조끼를 입고 다닐 것 같다. 후줄근해서 늘어지고 부해 보이는 니트 조끼는 아예 사지도 않을 것이다. 정장, 제복의 보수적이고 아카데믹한 멋을 마음껏 나타내고 싶다. 신발은 운동화보다 메리 제인 스타일의 구두면 어떨까. 하하. 생각만 해도 멋지다.

  예전에는 우리 학교 교복을 입고 시내 중심가로 나가면 사람들이 돌아보면서 수군댄다고 했다.     


 - 와! OOOO고등학교 학생인가 봐!

 - 교복 예쁘네!

 - 공부 잘하는 학생인가 봐!     


  시내버스를 타도 사람들이 쳐다보고 특히 중학생들이 힐끗힐끗 쳐다본다고도 했다.     


 - OOOO고등학교 다니나 봐.

 - 나도 가고 싶어.     


  여학생들인 A 학급 시간이었다. 너무너무 더운 날씨이기에 모두 편하게 생활복을 입었는데 딱 2명이 불편한 하복 상의를 입고 있었다. 일어나라고 하고 질문했다.     


 - 왜 교복을 입었나요?     


  나의 이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 아이들이 고개를 갸우뚱하기에 다시 질문했다.     


 - 하하. 혼내는 게 아니고요, 생활복을 입어도 되는데 왜 불편한 하복, 상의를 입었는지 궁금해서요.     


  그제야 B가 대답했다.     


 - 저녁에 비전홀에서 모임(부킹예배)이 있어서 교복을 입었습니다.     


  나는 B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 다시 질문했다.    

 

 - 저녁에 비전홀에 모임이 있어서 교복을 입었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어요.

 - 비전홀이나 미션홀에서 전체 모임이 있으면 교복을 입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 비전홀이나 미션홀에서 전체 모임이 있으면 교복을 입어야 한다고 배웠다고요??

 - 네!     


  교복을 입고 뒤쪽에 서 있던 C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말했다.     


 - 와! 입학했을 때 배웠던 것을 실천하고 있는 거군요??

 - 네!

 - 그래서 저녁 7시에 있는 모임 때 교복을 입고 가야 하니까, 5교시인 지금 교복을 입고 있는 거였군요??

 - 네!     


  이런 놀라운 학생들을 본 적이 없다. 나는 정말 깜. 짝. 놀랐다. ‘비전홀에 갈 때는 교복을 입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라니! 

  어제는 D 학급 복도를 지나가고 있었는데 회장이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 이제 종례하니까 빨리 교복으로 갈아입어!     


  이 말이 무슨 말인지 몰라서 회장을 불러서 물었다.     


 - 종례와 교복이 무슨 상관이 있나요??

 - 아, 저희 반은 담임 선생님께서 조회와 종례 할 때는 교복을 입어야 한다고 하셔서요. 

 - 교복을 입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요?

 - 선생님께서 종례하지 않으십니다.

 - 아??     


  입학 초인 3월에 몇몇 학급에서 조회와 종례를 할 때는 교복을 입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지금까지 그것을 지키고 있는 줄은 몰랐다. D 학급 아이들과 담임 선생님이 얼마나 대단한지! 며칠 전 내가 좋아하는 E 선생님이 말했다.     


 - 금요일 오후에는 수업이 없지만 가능하면 조퇴하지 않으려고요!

 - 아? 왜요?

 - 일주일의 마지막 날인 금요일에 종례를 해야 아이들의 일주일을 잘 마무리해 주는 것 같아서요. 금요일 종례는 꼭 합니다.

 - 아! 멋진 말이어요 선생님!

 - 그리고 가능하면 옷도 깨끗하게 갖춰 입으려고요.

 - 아, 그건 또 왜요?

 - 아이들 앞에 서는 교사니까요.     


  산책하던 발걸음을 멈추고 E를 잠깐 바라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 정말 감동적인 말들인데요. 근래 잘 들어보지 못한 말이어요. 새겨 둘게요.     


  조회와 종례를 위해 또 전체 모임을 위해 교복을 갖춰 입겠다는 학생과, 아이들의 일주일을 잘 마무리해 주기 위해서 금요일 조퇴를 하지 않고 예를 갖추어 옷을 입겠다는 교사가 내 주변에 있다. 나에게 놀라운 깨달음과 배움을 준 이 자랑스러운 이들을 어디에 알려야 하지??     


****************     


*** 예배가 있는 날 오전, 교복을 입고 비전홀로 오라는 메시지를 받았고 아이들에게도 보냈다. 아이들은 애써서 교복을 입고 왔는데, 예배를 마치고 나가는 아이들 사이에서 체육복 바지를 입은 F를 발견했다. 위에는 멀쩡하게 교복 상의를 입고 있었는데 말이다. 귀여웠던 F!     


#교복#조끼#동복#하복#생활복#조회#종례#체육복#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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