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혼자서도 잘 살 수 있어! (2024.09.14.(토)) *
- 혼자서도 잘 살 수 있어!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 고등학교 때 친구가 평생을 갑니다. 대학교 때 친구는 그렇지 못해요.
주변 사람들을 보아도 대학교 때의 친구 이야기보다 고등학교 친구 모임이나 고등학교 때 친구 이야기를 더 많이 하는 것 같다. 아마도 성인의 경우, 대학교부터는 아무나 쉽게 사귈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니 대학교나 직장에서의 만남보다, 뭘 모르던 어린 시절의 만남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학기 초에 고등학교 1학년 아이들과 상담하면서 늘 나왔던 이야기는, 중학교 친구들 이야기였다. 주말에 뭐 했는지를 물어보면 늘 나왔던 말이 중학교 친구들을 만나서 놀았다는 이야기였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생경한 학교 분위기 때문에 익숙했던 예전 친구들을 찾아서 마음에 위로받고 힘을 내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나는 늘 이렇게 말했었다.
- 중학교 친구는 그만 만나야지, 고등학교에 적응하려면. 여기서 새로운 친구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아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둘 고등학교 친구를 사귀게 되고 중학교 친구를 찾는 일이 드물어졌다. 또 대학교에 간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찾아와서 옛이야기를 꺼내면 이렇게 말했었다.
- 대학교에 푹 빠져서 지내야지. 고등학교 시절을 그리워만 하지 말고.
하지만, 우리 학교를 졸업한 아이 중 많은 아이는 자기가 다녔던 고등학교에 대하여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었고 그 시절을 그리워하여 자주, 매우 자주 찾아와서 힘을 얻어가곤 했다. 물론 이런 아이들도 있다고 들었다.
- 제 인생에서 가장 끔찍했던 시절은 고등학교 시절이었어요. 이 학교에 오지 말았어야 했어요.
어느 모임에서 만났던 졸업생 A의 어머니가 이렇게 이야기했을 때, 나는 깜짝 놀랐고 속상했고 슬펐다. 그리고 이해가 되었다. 쉽지 않은 학교인 것을 알고 있기에 A의 말이 받아들여졌다. 3년 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외롭지 않았을까. 어떻게 견뎠을까.
나는 사실 우리 학교에서 잘 지내는 아이들이 무척 신기하다. 성적에 대한 압박감이 대단한 우리 학교에서 어떻게 잘 지낼 수 있을까?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해 본다.
- 내가 중학생이라면, 우리 학교에 지원했을까?
- 내가 우리 학교에 다니고 있다면, 잘 지냈을까?
- 내가 우리 학교에 다녔다면, 그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용의 꼬리가 될 수도 있는 상황에 대하여 심각하게 고민하였을 것이고, 아마도 뱀의 머리가 되자고 생각하여 지원하지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우리 학교 학생이 되었을 때 또 졸업한 후에 누릴 수 있는 온갖 ‘호사’를 생각하며, 또 어쩌면 용의 머리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아련한 희망에 덜컥 지원할 수도 있었겠다. 그러나, 학교에 다니면서 꽤 힘든 내적 고통과 갈등을 겪으며 행복하지만은 않았으리라 추측해 본다. 아마도 나처럼 본인에 대한 자존감이 높고 무언가 이루고자 하는 의지가 확고한데 ‘내적 성향’이기까지 하다면 무척 힘들 수 있겠고, 반대로 ‘외적 성향’이라면 밖으로 이런저런 표현을 하고 활동하면서 건강하게 극복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여하튼, 힘든 학교인 것은 분명하다. 전학을 고민하는 학생을 전학 보내기 전에 상담을 하는데 아이들의 대답은 거의 비슷하다.
- 학교도 좋고 선생님과 친구들도 무척 좋아요. 그런데 성적에 대한 부담감이 너무 커서요.
물론 다른 문제가 거론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성적으로 인해 전학을 가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전학을 가지 않고 계속 학교에 다니고 있는 아이들은 성적에 대한 부담감을 어떻게 견디고 있는 걸까. 성적을 포함한 온갖 스트레스를 함께 나눌만한 마음에 맞는 친구를 만난 걸까. 졸업한 아이들이나 재학생들이 늘 말하는, ‘친구들은 좋아요’라는 말이, 모두에게 적용되는 걸까.
평생을 두고 만날만한 고등학교 친구를 이미 만난 아이들도 있겠지만, 아직 그렇지 못한 아이들도 있고, 만나지 못한 채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도 있다. 그 아이들은, 그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친구들이 좋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들도 있고, 그 말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자기 마음에 맞는 친구’를 아직 만나지 못한 아이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채플 시간에 B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 우리가 혼자 있을 때는 아무 문제가 없어요. 사람들과 함께 지낼 때 문제가 생기는 거죠.
- 가장 힘든 훈련은, 사람이 같이 생활하는 것입니다.
- 공동체를 통해서만 인격이 빚어집니다.
나 혼자서는 아무런 불편함이 없는데, 다른 사람과 있을 때는 하나부터 열까지 참고 인내하고 누르고 해야 하는 일투성이인 것을 지금까지도 겪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학교라는 공동체에서, ‘세상에 이런 사람이’라며 놀라게 되는 학급 아이들과 부대끼며 세상을 배워나가고 사람에 대해 익혀나가야 하는 아이들이 견뎌야 하는 그 무게가 절대 가볍지 않음을 늘 느끼고 있다. 특히 우리 학교같이 성적으로 인한 스트레스 지수가 높은 학교에서 ‘진짜 친구’를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다른 사람을 챙겨주고 생각하고 배려하는 것이 배움의 하나이지만, 관계 문제로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 뭐라고 할 수도 없다. 자신의 문제만으로도 힘드니까. 특히 ‘이기심’ ‘독특함’ ‘독단성’과 함께 타인에 대한 ‘배려 없음’과 ‘예의 없음’과 ‘거칠고 사나운’ 특성을 그대로 표출하는 요즘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또 서로 엮이지 못하고 혼자 있는 아이들은 어떻게 가르치고 이끌어야 할까. 오래전 이런 아이들 문제로 고민하는 C에서 이렇게 말했었다.
- 혼자 있는 D 때문에 너무 힘들어하지 말아요. 다른 아이들도 변해야 하지만, D도 움직여야 해요. 하지만 시간이 걸리는 일이에요. 우리가 그 결과를 보지 못할 수 있어요. 관계 때문에 힘들어하는 D가 그 고민에서 벗어나서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다른 사람들이 D를 챙겨주어야 D가 잘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 없이도, 혹 친구가 없어도, D 혼자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D를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요!
수업이 끝나고 오후 3시면 하교하던 중학교와 달리, 오후 5시까지 또는 밤 10시까지 함께 지내야 하는 아이들끼리 문제가 없다는 것이 더 놀라운 일일 수 있다. 친구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고, 좋았다가 절교하기도 하고, 다시 만날 수도 있고, 다시 혼자일 수도 있고.
- 친구 : 오래 두고 가깝게 사귄 벗
여기서 내 눈에 들어오는 단어는 ‘오래’라는 단어다. 오래 보면서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아니까. 언젠가 E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 오랜 시간 알게 되면 관계가 조금씩 변하는 것 같아요.
채플 시간에 ‘친구’에 대한 주제로 설교가 나간 뒤, 이런 이야기들이 오갔다.
- 오늘 말씀이 좋았어요!
- 반마다 친구 문제가 요란하니까요!
- 2학기가 되어서 표면으로 드러나는 거죠!
성적 문제만으로도 머리가 아픈데 위로를 받을 친구를 찾지 못해서, 또는 친구인 줄 알았다가 헤어져서, 또는 어느 그룹에도 속하지 못해서, 혼자여서 외롭고 힘들어하고 있는 많은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 이건 단지 내 생각이야. 혼자인 것이 외롭고 쓸쓸할 수 있지만, 네가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 오히려 너만의 독특함이 강점일 수 있어. 친구와 함께하면서 네가 다듬어질 수도 있지만, 다듬어지지 않은 네 모습 그대로가 더 좋을 수도 있어. 네 이야기를 들어줄, 위로받고 싶어 하는 사람을 찾는 에너지를, 다른 곳에 집중해 보자. 글을 쓴다든가, 책을 읽는다든가, 무언가에 몰입해 보는 거야. 생각보다 결과가 좋을 거야. 다른 누군가에 의해 평가될 수 없는, 너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이기에 혼자인 것이라고 생각해. 왜냐하면, 함께 하는 것보다 너 혼자만으로도 충분히 빛날 수 있기 때문이지. 누군가와 함께하더라도 우리는 모두 결국 혼자이니까. 너 혼자의 힘을 믿기를 바라. 혼자서도 잘 살 수 있어야, 다른 사람과도 잘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해. 우리가 공부하는 수많은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혼자서도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기 위해서가 아닐까.
혼자 책상 앞에서 책과 씨름하고 있을 수많은 아이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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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출근길에 멋진 합창곡을 들었다. 내가 합창에 빠졌었던 이유를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고나 할까. 아이들에게는 ‘혼자서도 잘 살 수 있어!’를 외치지만, 마음속으로는 ‘그래도 함께 할 친구가 있으면 좋겠지!’라고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 지란지교(芝蘭之交) : 벗 사이의 맑고도 고귀한 사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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