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도 한때는 오빠로 불리던 (2024.11.16.(토)) *
- 우리도 한때는 ‘오빠~’로 불리던 사람들이었습니다.
1968년경에 결성되어 2024년 현재 56년이 되어가는 쎄시봉의 공연을 보게 되었다. 겉모습으로는 60대 정도의 멋진 중년들로 보였는데, 3명 모두 팔순을 앞두고 있다는 말에 청중들이 깜짝 놀랐다. 기타 하나로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었던 그들의 젊은 시절을 생각해 보면, 직접 통기타로 반주하면서 노래했던 것, 영어 노래가 많았던 것, 그리고 당시의 대중음악과 분위기가 달랐다는 것 등이 뚜렷하게 기억난다. 남녀의 사랑이 야기만이 아닌 노래 가사 내용도 무척 신선했었다.
공연에서 멤버 3명 모두 기타를 메고 연주하는 모습이 무척 멋있었고 연주 실력도 출중했다. 굳이 나이를 말하지 않으면 몰랐을 정도로 젊은 청년 3명의 공연이었다. 피아노를 치며 신나게 노래하기도 하고 홀로 무대를 휘저으며 열광적인 무대를 만들기도 하였으며 특히 이런저런 이야기로 입담을 과시하기도 하였던 조O남이 갑자기 행동을 멈추고 말한다.
- 저는 지금 이렇게 노래하면 안 되는 나이예요.
올해 팔순이라는 그의 말에 청중은 깜짝 놀라며 한바탕 웃었지만, 피아노와 기타 연주를 하며 멋들어지게 노래하는 가수이면서 화가와 작가로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그에 대해 안쓰러움과 함께 경탄과 경외감도 느끼게 되었다. 3명 중에 가장 동안(童顏)인 김O환이 말했다.
- 2년 전에 공연할 때는 70대 중반이었는데, 지금은 어느새 70대 후반이 되었네요.
또 이 무대를 연출한 주O환 PD가 나와서 말한다.
- 제가 이래 봬도 이제 칠순입니다.
관객들이 얼마나 놀랐던지! 저 얼굴들을 어떻게 70대 중반, 칠순이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특히 조O남은 야구 모자와 잠바를 입었고, 주O환 PD도 야구모자와 청바지 패션이었다. 2,30대의 젊은 오빠들이었다. 윤O주가 나와서 말한다.
- 잘 모르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은데, 우리도 한때는 ‘오빠~’로 불리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의 말에 노래가 끝날 때마다 곳곳에서 사람들이 외쳤다.
- 오빠!
- 오빠아~~~!
주O환 PD가 조O남에게 말한다.
- 제가 중학교 1학년 때, TV에서 처음 뵈었는데, 진짜 노래를 잘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관객에게 말한다.
- 56년 전의 일이네요. 56년 동안 우리가 살아있어서 이렇게 만나게 되네요. 지금까지 살아계셔 주셔서 감사합니다.
70대 후반과 80대임에도 무대에 올라와 기타를 치면서 노래하는 이 사람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유명세였을까, 명예욕이었을까, 아님.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이었을까. 아님, 오랜 시간 함께 해온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56년 동안 같은 팀으로 음악활동을 해 왔다는 것이 상상되지 않는다. 쎄시봉의 3명은 누가 보아도 서로 달랐다. 주관적인 견해로는, 윤O주는 차분하고 신실하게 보이고, 김O환은 능구렁이 같은 느낌이고, 조O남은 그야말로 자유인이었다. 음악성은 윤O주가 제일 많아 보였으나, 음악적인 것뿐만 아니라 온갖 다양한 끼는 조O남이 출중했다. 윤은 법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을 듯이 보였으나, 조O남은 이리저리 흔들리는 불안한 스타일이었다. 가치관이 서로 달라 보이는 이들이 모여서 어떻게 56년 동안 한 팀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어떻게 팀이 깨지지 않을 수 있었을까.
- 26년 동안 일하던 직장이지만, 손절하려고 합니다.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될 줄 몰랐네요.
얼마 전 A에게서 들은 저 말에 화들짝 놀랐다. A가 B라는 지인의 이야기를 전해 준 것이었는데, 26년 동안 이어온 직장 사람들과의 인연을 끊겠다는 말이 적잖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A가 말했다.
- 얼마나 힘들면 그랬을까 싶어요.
반면 이런 글도 읽었다.
- 32년 동안 근무하던 직장에서 퇴직했습니다. 매일 아침 출근하기가 너무도 싫었었는데, 요즘 출근하고 싶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드네요.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될 줄 몰랐습니다. 저도 신기합니다.
너무도 다른 성정을 지닌 사람들이 모인 사회, 학교와 직장에서 다른 누군가와 함께 일을 하거나 매일 얼굴을 보고 부대낀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쉽지 않은 일이다. 나를 이해시키는 것도, 다른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도 어렵고 불가능하다. 한 집에서 오랜 기간 함께 살아온 가족들도 서로 이해하지 못해서 충돌이 있을 수 있는데, 하물며 가족 이외의 사람들은 서로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수 있다. 가족 이외의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사이좋게 아니 별 무리 없이 잘 지낼 수 있을까. 이걸 배워가는 것이 인생인데, 이 인생이 쉽지 않다는 것을 매번 느낀다.
팔순이 다된 쎄시봉이 처음부터 저렇게 매끄럽지는 않았을 것이고, 온갖 일들을 겪으며 56년을 지내왔을 것이고, 싸우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고 갈등이 있기도 하고 튕겨 나가기도 하고 다시 돌아오기도 하고 손절하고 싶기도 하고 끝내고 싶기도 했을 텐데, 그 굴곡 굴곡마다 어떻게 견디며 해체하지 않고 잘 버텨왔을까. 5년도 아니고 10년도 아니고 무려 56년 동안.
멋진 인생을 살아낸 3명의 공연을 보면서 차마 손뼉을 칠 수 없었고 노래를 따라 부를 수도 없었다. 그들이 함께해온 56년의 세월이 너무 묵직했기 때문이다. 칠순, 팔순 그리고 구순이 넘어서도 여전히 멋진 기타 한 대씩 맨 20대 청년들 같기를 바라며. 그리고 여전히 음악을 사랑하는 친구들로 남아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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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1.16.(토)) 쎄시봉 공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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