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했으면 좋겠어 (2021.10.23.토) *
아주 오래 전 지금은 다른 곳으로 가신 A선생님과 함께 내 차로 서울을 가던 길이었다. 아마도 금요일 퇴근길이었던 것 같고 나처럼 서울이 집인 A선생님이 지하철로 가려는 걸 붙들어서 내 차로 같이 가게 되었다. 나는 다른 사람을 내 차에 태워서 어디에 데려다 주는 걸, 아주 좋아한다...
1시간 30분의 시간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가던 중 주변에 보이는 아파트들을 보며 A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 저기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다 행복하게 보여요..
마치 나만 빼고 모두 다 행복한 것처럼 보이네요..
나는 깜짝 놀라면서 모른 척 더 큰 목소리로 공감해 주었다.
- 그쵸....정말 나만 빼고 모두 다 행복하게 보이는 것 같아요...
우리는 단지 어두워진 거리에 불이 켜진 아파트 건물들을 바라만 보았던 것인데, A의 그 말은 무척 슬프게 들렸고 그 때까지 내가 알고 있는 A가 아니어서 깜짝 놀랐다.
A선생님은 항상 웃음이 넘치고 활달한 모습으로 교무실을 밝혀주고 온갖 일들을 도맡아 하는 싹싹한 선생님이셨다. 그런데 A선생님이 말해준 그의 진짜 삶에는 다른 모습들이 있었고, 작은 공간에서 그의 본모습이 진실된 말로 나왔던 것....
그곳을 지날 때마다 A선생님과 그의 이 말을 생각한다. 나 또한 이런 생각을 할 때가 많았으니까...나만 빼고 모두 다 행복하게 보이는 것 같은 느낌...물론! 이 말은 진리가 아니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다양한 캐릭터들을 만나는데 세월이 지나가고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을 조금씩 더 잘 이해하게 되는 것 같고 사람들을 바라보는 내 눈이 좀더 깊어지는 것 같다. 겉으로 나타나는 어떤 모습이 우리의 진짜 모습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사회화의 모습이기도 하다. 엄청 말이 많고 열정이 넘치지만 어느 모임에서는 말 한마디 없이 ‘조용하고 생각이 깊은 척’ 지내기도 하는 나를 보면 알 수 있다.
사람들 앞에서 유쾌하게 웃음을 주는 개그맨들이 집에 가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아마도 우리의 모습들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겉으로 우울한 것이 표출되는 것보다 원래 어둠이 없었던 것처럼 밝고 건강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이 ‘연기’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 알아볼 줄 알아야 할텐데....
아이들 중에도 이런 경우가 많이 있는데, 항상 웃고 활기찬 모습을 가진 아이들이 실상 혼자 있을 때 우울하고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았고, 어떤 난관에 부딪혔을 때 더 쉽게 무너지는 경우도 많았다. 또 밝고 활기찬 학급인 경우 그 분위기에 함께 휩싸이지 못하고 정신적으로 더 많이 힘들어하는 경우도 많았다. 아이들은 웃고 있지만 웃을 수 없는 환경의 아이들도 많다...
우수한 아이들이 모여 있고, 경제력이 있는 집안의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일수록 그 사이에 가려져서 혼자서 힘들게 고군분투하는 아이들을 알아봐야 할텐데......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아....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은 상담인데 말이다.......
겉으로 나타난 모습으로 사람을 제대로 알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지만, 그래서 다른 사람을 볼 때는 더 ‘깊은 눈’으로 ‘오래오래’ 바라봐야 한다는 걸 올해 새삼 느끼고 있다.
여자 치과의사와 바닷가 마을에 사는 청년과의 사랑이야기를 담은 드라마가 호평이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어차피 두 사람은 티키타카하면서 처음에는 안맞았다가 서로 좋아했다가 다시 싸웠다 하다가 결국 맺어질, 너무나도 뻔~~한 결말일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치과의사 + 갯마을’이라는 단어에서 오는, 왠지 현실과 동떨어진 듯한 조합에 더 마음이 안갔었는데....드라마에서 나오는 ‘따뜻한 가사와 멜로디’의 배경음악 몇 곡을 들어보고는 조금 들여다 보게 되었다.
화려하고 명품을 좋아하는 치과의사 Y가 평소에 하지 않던, 환자를 생각하는 진심 진료를 ‘한번’ 했다가 직장을 뛰쳐나와서는 어린 시절 와보았던 어느 바닷가 마을에 치과를 개원, 마치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의 피가로처럼 동네의 이런저런 허드렛일을 봐주는 청년 H와 좋아하게 되어 맺어지게 되는, 예쁘고 아름답고 생각할 거리도 많이 주었던 내용이었다.
중요한 것은, 얼굴 잘생기고 긍정적인 이미지의 (지나치게) 활달한 H는 이웃 사람들에게 늘 친절하고 유쾌함과 도움의 손길을 선사하는, 모든 이들이 의지하고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실상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자기 때문에 죽게 되는 엄청난 일들로 마음 문을 굳게 닫아버린,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의 몇 년간의 행적을 묻고 싶고 궁금해하지만 직접 묻지는 않는다. 단지 겉으로 드러나는 H의 밝은 모습만을 보고 그것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정말 성숙하고 마음 따뜻한 사람들이다. 누군가의 슬픔과 아픔이 보이지만 감히 묻지 않고 조용히 바라만 보아준다는 것....
드라마 첫 회부터 H의 반짝거리는 모습 속에 숨겨진 무언가 ‘깊은 슬픔’이 보였었는데, 결국 Y에게 자기의 ‘깊은 슬픔’의 연유를 이야기하며 오랜 시간 자기의 삶에 스스로 씌어놓았던 ‘인생의 굴레’를 벗어던지는 H의 모습이 감동적이다.
두 사람이 작은 결혼식을 할 때 이런 대화를 한다.
- (H) 늘 이렇게 잔잔하지만은 않을거야. 풍랑도 있을거고 태풍이 불어닥치는 날도 있을거야.
- (Y) 비 좀 맞으면 어때. 바람.. 좀 불면 어때.. 우리가 같이 한배를 탔는데~
그런데 이런 대화가 있기 전에 Y가 더 감동적인 멘트를 날린다.
- 내가 맨 앞에서 H의 삶을 활짝 열어줄게!
어쩜 이렇게 멋진 말을 할 수가!
H의 어두운 인생에 갑자기 끼어든 Y는 H의 ‘깊은 슬픔’을 한번에 걷어내고 앞장서서 그의 삶을 바꿔준다. 마치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 그동안 많이 고생하고 슬퍼했지만, 이제 나를 만났으니 걱정하지 마!
그 슬픔은 아무 것도 아니야!
내가 있잖아!
그런데 여기에 더 멋진 캐릭터가 있었다. 대학교 때부터 Y를 좋아했지만 차마 말을 못하고 잊혀져 있던 G... 십여년 뒤에 바닷가 마을에서 다시 만나게 되지만 H와도 쿨하게 친구가 되며 Y의 행복을 빌어준다. 이렇게 상큼하고 시원하고 매력적인 성격을 가진 주인공은 처음 봤다고나 할까...
가벼운 목소리로 중간중간 다양한 노래들을 들려주는데 가슴 속에 확 꽂히는 가사를 지닌 노래가 나를 잡아 끌었다. G가 부르지만 마치, 환한 햇빛같은 Y가 어둠 속에서 혼자 슬퍼하고 있는 H를 향해서 따뜻하게 말하고 있는 느낌...
- 난 오늘 너의 웃음 속에서
크고 깊은 우울함을 봤어
웃음으로 감추고 있었지만
나도 모르게 봤어
차라리 울었으면 좋겠어
그럼 모른 척하고 있을게
묻지 않고 아무 말 안 하며
네 옆에 있을게
난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나 때문이 아니더라도
난 네가 사랑을 하면 좋겠어
설레어 밤새 잠들지 못하게
난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나 때문이 아니더라도
난 네가 사랑을 하면 좋겠어
설레어 밤새 잠들지 못하게
너의 그 모든 슬픔 속에서
내 손을 잡고 나와준다면
웃음으로 가득 찬 네 얼굴을
본다면 좋겠어
웃음으로 숨기고 있는 크고 깊은 우울함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올라오는 울음을 꾹꾹 눌러 참고 슬픔을 숨기고 있는 사람을 티나지 않게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모른 척하고 가만히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될까....
슬픔 속에 있는 사람에게 감히 손을 내밀어 잡아 이끌 수 있을까....
내가 그럴 수 있을까....아님..
누군가 나를 이렇게 도와줄 수 있을까...
아...정말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것은, 아이들과의 상담인데.........
피아노의 당김음 반주가 귀에 아른거려서 음원이 나오기만을 기다린 노래..
행복했으면 좋겠다..
- https://www.youtube.com/watch?v=nEBqEIggQI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