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동화
나야 나! 파란 자전거
훈이는 엄마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주방으로 갔다. 맛있는 냄새가 풍겨왔다.
"훈아, 이거 경비실 할아버지에게 좀 갖다 드리렴."
엄마는 나무젓가락과 파전이 담긴 접시를 훈이에게 내밀었다. 훈이는 접시를 받아 들고 집을 나섰다. 훈이는 이런 심부름을 종종 하곤 했다. 엄마는 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할 때면 으레 경비실 할아버지에게 갖다 드리라고 했다. 자고로 맛있는 음식은 나누어 먹는 거라고 말했다.
훈이는 아파트를 나와 경비실로 달려갔다. 마침 할아버지는 안에서 신문을 보고 있었다. 훈이가 접시를 할아버지께 전해주고 나오려는데, 한쪽 구석에 기대어 서 있는 작은 파란 자전거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이 타는 작은 자전거였다. 좀 낡기는 했지만 아직 자전거가 없는 훈이는 호기심이 생겼다.
"왜? 네 자전거냐?"
할아버지가 자전거를 보고 서 잇는 훈이에게 물었다.
"아뇨. 저거 할아버지 자전거예요?"
"허허, 이 놈아. 어떻게 내가 저렇게 작은 자전거를 탈 수가 있겠냐. 어젯밤에 놀이터에서 주어다 놓은 거야. 아파트 게시판에 자전거 잃어버린 사람은 찾아가라고 써 붙여 놓았는데도 아직 아무도 찾아오질 않는구나."
할아버지는 파전을 먹으며 말했다.
다음날, 훈이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경비실 안을 힐끔거리며 들여다보았다. 유리창 너머로 얌전히 서 있는 자전거가 보였다. 할아버지는 어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훈이는 유리창에 바싹 다가가서 자전거를 구경했다. 자전거를 잃어버린 아이는 왜 찾으러 오지 않는 걸까?
훈이는 지난 일 년 동안이나 엄마에게 자전거를 사 달라고 졸랐다. 하지만 엄마는 다음에, 다음에 하며 지금까지 사 주지 않았다. 자전거를 보고 있으려니 자꾸만 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너, 거기서 뭐 하니?"
훈이는 마치 도둑질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깜짝 놀라서 뒤돌아보았다. 할아버지가 쓰레기 봉지를 들고 서 있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훈이는 할아버지에게 머리를 꾸벅 숙이고 나서 집으로 달려갔다. 할아버지는 훈이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훈이는 집으로 오면서 엄마에게 한 번 더 자전거 사달라고 졸라볼까 생각하다가 엄마의 얼굴이 떠오르자 입술을 삐죽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훈이는 매일같이 학교에 다녀올 때마다 일부러 경비실 앞을 지나왔다. 그리고 유리창을 통해 자전거가 있는지 찾아보았다. 자전거 주인은 며칠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훈이는 경비실 구석에서 잠자고 있는 자전거를 볼 때마다 마음이 조마조마해지는 것 같았다. 혹시나 주인이 나타나 자전거를 찾아가면 어쩌나... 할아버지가 없을 때는 유리창 가까이 가서 자전거를 보았다. 자기가 자전거를 타는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그럴 때면 손이 좌우로 움직이고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훈이가 청소를 하고 좀 늦게 학교에서 돌아왔다. 버릇처럼 경비실 앞을 지나오면서 안을 들여다보았다. 할아버지는 책상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훈이는 가까이 다가가 자전거가 있던 구석을 보았다. 그런데 자전거가 있어야 할 자리는 텅 비어있었다. 다른 쪽을 살펴보았지만 어디에도 자전거는 보이지 않았다. 훈이는 힘이 빠지는 것 같았다. 드디어 자전거 주인이 나타나 찾아간 게 분명했다. 훈이는 소중한 보물을 잃어버린 것처럼 마음이 허전해졌다.
힘없이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가 주방에서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엄마, 나 자전거 사줘! 응?"
"또 자전거 타령이니? 나중에 사줄게. 어서 들어가 숙제나 해라."
훈이가 학원에서 돌아오다가 경비실 할아버지를 만났다. 할아버지는 지난번 경비실에 있었던 파란 자전거를 끌며 앞서 가고 있었다. 훈이는 반가운 마음에 할아버지에게 달려가 인사를 했다.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오냐, 학교 다녀오는 길이니?"
"예. 그런데 그 자전거 주인이 찾아가지 않았나요?"
할아버지는 자전거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아니야. 바퀴에 바람이 빠져서 고쳐서 오는 길이다. 우리 아들이 큰길에서 자전거 대리점을 하거든. 고장이 났으면 고쳐 놓아야 탈 거 아니냐."
훈이는 주인이 자전거를 찾아가지 않았다는 말에 마음이 놓였다.
"너, 자전거 탈 줄 아니?"
훈이는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예. 공원에 놀러 가서 많이 타 본걸요."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너 자전거 타고 싶지?"
"예."
"그럼, 이 자전거 타거라. 한 달이 다 되도록 주인이 나타나지 않는구나. 그 대신 타고나서는 반드시 경비실에 갖다 두어야 한다. 언제 주인이 찾으러 올지 모르니까. 알았니?"
할아버지는 훈이에게 자전거를 넘겨주었다. 훈이는 너무 기뻐서 싱글벙글거렸다.
훈이는 이곳저곳 길이 있는 데는 다 돌아다녔다. 이마에 땀이 나는 줄도 모르고 아파트 사이를 달렸다. 학교에도 갔다. 운동장에서 놀던 친구들이 자전거를 보고 한 번만 타보자며 따라다녔다. 훈이는 마치 자기 자전거 인양 어깨가 으쓱해졌다. 훈이는 해가 져서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자전거를 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동네 할머니가 짐을 들고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할머니는 짐이 무거운지, 조금 가다가 서고 다시 가다가 서곤 했다. 훈이는 할머니 옆으로 가서 자전거를 멈추었다.
"할머니, 제가 짐 실어 드릴 게요. 이리 주세요."
짐을 뒷자리에 싣고 자전거를 끌면서 할머니와 함께 걸어갔다. 집 앞에 도착한 할머니는 웃으며 훈이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칭찬을 들은 훈이는 기분이 좋아졌다. 자전거를 경비실에 가져다 놓고 싱글벙글 거리는 얼굴로 집으로 갔다.
다음날, 훈이는 학원을 마치자마자 경비실로 달려갔다.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고는 자전거를 꺼내 길거리로 나갔다. 오늘은 어느 쪽으로 가 볼까? 훈이는 즐거운 기분으로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그런데, 갑자기 자전거가 움직이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잘 굴러가던 바퀴가 꼼짝도 하지 않았다. 훈이는 혹시 자전거가 고장이 나서 그런지 이리저리 훑어보았지만 고장도 아닌 것 같았다. 훈이는 다시 한번 힘껏 페달을 밟았지만 여전히 자전거는 움직일 줄 몰랐다.
"잠깐만 기다려."
누군가 말했다. 훈이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아무도 없었다. 누가 말을 한 것일까?
"오랜만에 움직였더니 이제 좀 몸이 풀리는 것 같아. 살 것 같네..."
훈이는 자기가 타고 있는 자전거가 말을 한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자전거가 말을 하다니... 훈이는 괜스레 무서운 생각이 들어 얼른 자전거에서 뛰어내렸다.
"하하하! 놀라기는."
분명 자전거가 말했다. 훈이는 눈이 동그래져 자전거를 쳐다보았다.
"넌 착한 아이더구나. 내가 좋은 구경 시켜주마. 어딜 가고 싶니? 말만 해, 다 데려다줄 테니까..."
훈이는 자전거가 저 혼자서 핸들을 좌우로 흔들거리면서 하는 말을 듣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정말 자전거가 말을 하고 있구나. 혼자 움직이기도 하네."
훈이는 신기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정말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니?"
"물론이지. 어서 말해봐."
훈이는 속으로 생각했다. 어딜 가면 좋을까? 자전거를 타려면 공원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공원 말고. 더 좋은 곳을 골라 봐."
훈이는 자전거가 하는 말에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자전거가 알았을까?
"하하하. 난 네가 생각하는 것을 다 알지."
훈이는 바다에 가고 싶어졌다. 지난여름에 아빠의 일이 바빠서 휴가를 가지 못했었다. 친구들이 여름방학을 마치고 와서 바다에 갔던 이야기를 할 때면 훈이는 그게 부러웠었다.
"그래, 바다로 데려다 주지. 어서 타라."
자전거는 훈이의 생각을 알아채고 핸들을 흔들거리며 말했다. 훈이는 정말 자전거가 자기를 바다에 데려다줄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눈으로 안장에 올라탔다.
"핸들을 꼭 잡아! 이제 출발이다."
자전거는 훈이가 페달을 밟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점점 빠르게 달려갔다.
골목을 빠져나간 자전거는 큰 도로를 달리는 가 싶더니 금세 도심을 벗어나 들판의 한적한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였다. 훈이는 넓게 펼쳐진 들판을 바라보았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누런 벼들이 무거운 머리를 흔들고 있었다. 파란 하늘에는 흰구름이 단풍이 울긋불긋 물든 산을 넘어가고 있었다.
훈이를 태운 자전거는 얼마 지나지 않아 파도가 철썩대는 바닷가에 도착했다. 시커먼 갯바위에 파도가 부딪쳐 하얗게 부서졌다. 멀리서 배들이 수평선 위에 아주 작게 떠 있는 것도 보였다. 훈이는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았다. 끼룩끼룩 하늘을 나는 갈매기도 보였다. 자전거는 다시 움직이더니 백사장으로 내려가 이리저리 춤을 추며 달렸다.
"어때? 좋지?"
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어디로 갈까? 산으로 가 볼까?"
자전거는 훈이를 태우고 다시 씽씽 달렸다.
산길을 오르고 있었다. 가파른 언덕을 평지처럼 손쉽게 오르고 있었다. 산은 온통 단풍이 물들어서 아름답게 보였다.
조그만 산골 마을이 눈앞에 나타났다. 마을에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아마 모두 일을 하러 나간 것일까. 나지막한 지붕들을 머리에 인 집을 훈이는 처음 보았다. 담 밑에는 해바라기들이 커다랗고 둥근 머리를 푹 숙이며 훈이를 내려다보았다. 대문도 없는 집 마당에서 강아지 한 마리가 훈이를 보고 "멍멍!"하고 짖었다.
어디서 노래가 들려왔다.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니 마을 반대편 언덕 위에 있는 조그만 건물이 하나 보였다. 노랫소리는 거기서 들려왔다. 자전거는 핸들을 돌려 반대편 언덕으로 올라갔다.
대문에 붙어있는 작은 팻말에 '산골 분교'라고 써져 있었다. 조그만 마당의 한쪽에는 꽃밭이 있고, 푸른 하늘에서는 빨간 고추잠자리들이 여기저기 날아다니고 있었다.
훈이는 자전거에서 내려 노래가 흘러나오는 유리창으로 다가갔다. 조금 열린 창문으로 안을 들여다보니 풍금을 치는 여 선생님과 앉은뱅이책상에 앉아서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이 보였다. 아이들은 모두 일곱 명이었다. 한 여자 아이의 등에는 아기가 업혀 있었다. 아기는 손가락을 빨고 있다가 훈이와 눈이 마주쳤다. 훈이는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훈이를 말갛게 쳐다보던 아기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훈이는 당황했다. 아기의 갑작스러운 울음에 노랫소리와 풍금소리는 멈추었다. 그리고 아이들과 선생님의 눈이 일제히 창밖에 서 있던 훈이를 보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훈이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서 있었다. 아이들이 창으로 다가와 고개를 내밀고 밖을 내다보았다.
"야아! 자전거다!"
아이들이 모두 밖으로 우르르 달려 나와 자전거 주위를 빙 둘러섰다. 마치 신기한 물건을 보듯이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쳐다보았다. 핸들도 만져보고, 안장에 손을 대어 보기도 하고, 발로 바퀴를 툭툭 차 보기도 했다. 자전거는 아무 말없이 그대로 가만히 서 있었다.
"얘, 나 한 번만 타 봐도 돼?"
아이들 가운데 머리를 빡빡 깎은 남자아이가 훈이를 쳐다보며 물었다. 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는 자신 있게 안장에 올라앉아 페달을 밟았지만 비틀거리다 얼마 못 가서 넘어지고 말았다. 아이들은 박수를 치고 깔깔거리며 웃었다. 넘어졌던 아이는 다시 자전거를 세우고 올라탔다. 주위에 둘러선 아이들은 자전거를 뒤따르며 박수를 쳤다. 아이들은 한 사람씩 돌아가며 자전거를 탔다. 조그만 마당에는 아이들의 신나는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훈이도 자전거를 타고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기분이 좋아졌다.
머리 위에서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맑았던 하늘에서 갑자기 비가 내리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던 아이들은 비를 피해 다시 교실로 뛰어 들어갔다.
"빨리 가자. 비가 더 많이 오기 전에."
자전거가 다급하게 말했다. 훈이도 얼른 자전거에 올라탔다. 자전거는 금세 산을 내려오더니 들판을 달렸다. 들판에서는 비가 오지 않았다. 훈이는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어느새 아파트 앞에 도착해 있었다. 자전거가 상가 앞을 지나다가 멈추어 섰다.
"이제 여기서부터는 너 혼자 가라. 난 아까 그 산골마을의 아이들에게로 가겠어. 네 덕분에 나는 새로운 주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나를 필요로 하는 주인 말이야. 고마워. 안녕."
자전거는 훈이에게 핸들을 한 번 흔들어 보이고는 저 혼자 달려가 버렸다. 훈이는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진 자전거를 찾으려 이리저리 돌아보았지만 어디에도 자전거는 보이지 않았다.
훈이는 어쩔 수 없이 그냥 집으로 돌아가려다 문득 경비실 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훈이가 타기 위해 가지고 나온 자전거를 잃어버렸으니 큰일이었다. 훈이는 걱정이 되어 다시 상가와 아파트 주변을 돌아다니며 자전거를 찾아보았으나 끝내 자전거는 보이지 않았다. 해가 져서 이미 날은 어두워졌다. 할아버지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걱정스러웠다.
훈이는 잔뜩 풀 죽은 얼굴로 터벅터벅 아파트 안으로 걸어갔다. 할아버지는 경비실 주변을 청소하고 있었다. 훈이의 눈에서 눈물방울이 맺혔다.
"훈이구나. 어딜 갔다 오니? 어서 집에 가거라. 엄마가 걱정하시겠다. 그런데, 너 우는 거니?"
훈이는 결국 할아버지 앞에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
"너, 왜 울어? 무슨 일 있었니?"
"저어, 흑흑, 할아버지. 사실은요, 흑흑, 자전거 잃어버렸어요. 어쩌면 좋아요? 엉엉."
할아버지는 훈이가 우는 걸 보다가 허허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아. 한 달 넘게 주인을 찾아보았는데도 나타나질 않았으니. 자전거가 새로운 주인을 찾아갔나 보다. 허허. 울지 마라."
훈이는 할아버지의 말에 죄송한 마음이 조금 수그러졌다. 눈물을 닦고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하려는데, 등 뒤에서 웬 아저씨의 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어, 할아버지. 말씀 좀 묻겠는데요, 저기 게시판에 어린이 자전거 주워다 보관하고 계신다고 해서 왔는데요."
훈이는 그 말에 깜짝 놀라 할아버지를 쳐다보았다. 할아버지는 훈이를 한번 쳐다보고는 아저씨에게 또박또박하게 말했다.
"아, 그 자전거요? 벌써 주인이 찾아 간 걸요."
할아버지는 훈이를 바라보며 빙긋이 웃어 보였다. 훈이도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하고 집으로 올라갔다.
평소에는 저녁 늦게서야 오시던 아빠가 문을 열고 훈이를 맞아주었다.
"너 이논, 어딜 갔다 이제 오는 거니?"
"아빠, 오늘은 일찍 오셨네요?"
"아빠, 오늘 초등학교 동창회가 있다고 일찍 들어오셨단다. 어서 씻고 저녁 먹을 준비해라."
엄마가 주방에서 나오시며 말했다.
"훈아, 아빠 초등학교 졸업앨범 보여줄까?"
아빠는 방으로 들어가더니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낡은 앨범을 꺼내와 훈이에게 보여주었다. 오래되어 빗이 바랜 앨범을 한 장 한 장 넘기니 아이들의 얼굴이 나타났다. 머리를 양갈래로 따은 여학생, 차돌처럼 동글동글한 얼굴의 남자아이들이 수줍게 웃고 있었다. 그 아이들 중에서 아빠의 이름이 적힌 아이의 얼굴을 보고 훈이는 킥킥거렸다. 아빠의 어릴 적 얼굴은 아주 장난꾸러기 같은 모습이었다.
훈이는 학교 건물 앞에서 찍은 아이들의 단체 사진을 보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한 아이가 자전거를 붙들고 서 있었다. 훈이가 놀란 것은 그 자전거가 낮에 훈이가 타고 다니다 잃어버린 자전거였기 때문이다.
"아빠, 이 자전거는?"
옆에서 함께 앨범을 들여다보고 있던 아빠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 자전거? 아빠가 다녔던 학교는 산골에 있었지... 그래서 우리는 자전거 구경할 기회가 없었단다. 그런데, 아빠가 학교 다닐 때 우리 마을 이장님이 읍내 볼일을 보러 가셨다가 길거리에서 주인 잃은 자전거를 발견하셨단다. 이장님은 우리 산골 학교에 가져다주셨지. 우리는 서로서로 돌아가면서 학교 마당에서 자전거를 타고 놀았단다. 몇 년 전에 동창생들과 함께 산골 분교에 갔었는데, 이젠 폐교가 되어 공부하는 아이들이 없더구나. 지금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 한 사람이 거기서 살고 있더구나. 그 자전거는 아빠가 졸업할 때 후배들에게 물려주었단다. 그 자전거 옆에 서서 사진을 찍은 아이가 바로 아빠란다. 하하..."
아빠는 어린 시절을 생각하듯 지그시 눈을 감고 말했다. 사진 속의 자전거가 훈이의 놀란 눈을 쳐다보고는 싱긋 웃으며 핸들을 흔들어 보였다.
"안녕, 나야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