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와 지금은 부부싸움의 양상이 다르다
<우리 부모님의 부부싸움>
나의 초등학교 시절
우리 엄마와 아빠가 한창 싸울 시기의
어느 날
엄마가 우리 형제를 데리고 외가에 다녀왔는데
늦은 저녁에 귀가했다
하필 그날 아빠가 일찍 퇴근해
먼저 귀가했었는데
우리 모자에게
문을 안 열어준 적이 있다
그때 아버지도 참.. 못됐었다
아마 아버지 생각에는
지아비 귀가하기 전까지
저녁 차려놓고 기다리지는 못할망정
애들까지 데리고 늦게까지 돌아다니냐는 거지
아버지가 배가 고파서 더 화가 났었을 수도 있다
집 전화 말고는 연락수단이 없던 시절이니
밥 차려놓으라 미리 연락도 못했을 거다 (집에 없었으니)
아파트 복도에서 문 열어라 못 연다 한참 실랑이를 하다가
어머니는 동네 창피해서
(같은 층 복도 라인에 누가 사는지 다 알고 지내던 시절이다)
다시 외가댁으로 가서 하루를 자고 다음날 돌아왔다
엄마 입장에선 외갓집에 이모(큰 언니)에게도 창피했을 거 같다
근데 철없던 나와 동생은 외갓 집에서 하루 자는 게 좋았다
<나의 부부싸움>
나 역시
20여 년 전 신혼시절 나와 와이프는 철이 없었고
서로 엄청 싸웠었다
아이들이 태어나며 잠시 좋아졌다가
육아 철학이 달라 또 싸웠다
결혼 20년 차인 지금은
싸우다 지친 나머지
서로에게 연민의 정이
들어 덜 싸운다
(결코 안 싸우지는 않는다)
그때와 다른 점은
당시엔 상대를 내 스타일로 바꾸려 노력했다면
지금은 상대 약점까지 인정하게 되었다는 점
좋게 말하면 인정, 나쁘게 말하면 포기
그래도 싸우는 건
당시엔 서로가 왜 저러는지 몰라서 싸웠다면
지금은 상대가 왜 그러는지 알면서도 싸운다는 점이다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다르다
마치 바둑의 고수처럼
몇 수 앞 정도는 알면서 합을 겨룬달까?
약속대련 같은 느낌이다
이 상황에서
내가 이렇게 말하면
쟤는 조렇게 발끈할 거고
그럼 나는 요렇게 받아치고
그러면 쟤는 저렇게 화를 내겠지?
서로 상대의
발작 버튼이나
레드라인은 안 넘으며
아슬아슬하게 싸운다
이러한 사태와 결과를 알면서도 싸운다는 건
그 포인트가 지긋지긋하게 싫다는 거다
다만 싸움의 빈도는 줄었다
연민이 생긴 거 보면
서로 끝까지 같이 살 수 있을 것 같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