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버리는 영화 '빅쇼트'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투자자입니다. 그는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예상하고 금융 위기 이전에 CDS(credit default swap) 상품을 통해 주택 시장에 하락 베팅을 했으며 그 덕분에 경제가 무너져내릴 때 큰 돈을 벌 수 있었습니다. 그의 이 투자 사례는 너무나도 유명해져 주식 시장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마이클 버리라는 이름을 모를 수가 없게 됐습니다. 마이클 버리가 시장에 대한 반대 베팅으로 크게 유명해진만큼 사람들은 그가 실제로 어떤 투자자인지에 대해 오해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흥미롭게도 마이클 버리는 안전 마진을 그의 투자에서 가장 중요시 여기는 가치투자자이며, 오히려 요새는 보기 힘든 가치투자의 극단에 있는 '딥 밸류' 투자자(deep value investor)입니다.
마이클 버리는 스스로 자신의 투자 철학은 100% 안전 마진에 기반한 투자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는 어디서든 가치를 찾을 수 있다면 그 곳에 투자를 하며, 이는 영화 '빅쇼트'에서도 보였듯이 숏 전략 역시 포함합니다. 그는 어떤 면에서는 진정한 가치투자자라고 할 수 있는데, 가치투자를 지향하면서도 특정한 전략만을 선호하는 투자자들과 다르게 그는 말 그대로 가치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리지 않는, 가치투자의 정의 그 자체에 걸맞는 투자 방식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그는 흔히 '역발상 투자자'라고 불리우는 투자자 집단에 속하는데, 그의 투자는 (숏이 아니라면) 대부분 사람들이 선호하지 않는 섹터에서 진행됩니다. 그의 투자 전략은 투자자들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마치 '차에 치여 죽은 것' 같아 보이는 기업을 매수하여 실제 가치에 가까워지면 매도하는 것을 중심으로 합니다. 다시 말해 내재가치 대비 주가가 극히 저렴한 기업에 투자하는 전통적인 개념의 가치투자를 택하고 있습니다.
지난 4월에 발표된 13F($100M이상의 자산을 운용하는 경우 필수적으로 13F를 통해 미국 주식에 대한 포지션을 공개합니다)을 보면 마이클 버리의 이러한 역발상 투자자적인 성향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는 주가가 고점에서 80% 이상 떨어진 비디오 컨퍼런스 기업인 줌을 매수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중국 기업들(알리바바, JD)에 대규모 매수를 진행했습니다. 텐센트를 포함한 여러 중국 주식들이 미국 시장에 상장이 돼있지 않은만큼 13F에 공개되지 않는 해외 주식을 포함하면 이 규모가 더 클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흥미로운 매수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바로 은행주들을 대량으로 매수했다는 것입니다.
투자자들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겠지만 당시에는 지방 은행들의 파산이 심각한 위험으로 여겨지고 있었습니다. 실리콘 밸리 은행을 시작으로 시그니쳐 뱅크 등의 은행이 파산을 선언했으며 이것이 심각한 금융 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공포감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던 시기입니다. 여러 은행들이 연쇄적으로 파산할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투자자들은 황급히 은행주에서 빠져나왔으며 해당 섹터는 말 그대로 '차에 치인 것 같은' 모습이였습니다. 바로 이 시기에 마이클 버리는 오히려 은행주에 대한 과감한 매수를 진행하였습니다. 그는 총 7개의 은행주에 투자를 했으며 이는 1분기 13F 기준 포트폴리오의 21%에 해당하는 비중이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7개 은행주에는 그 유명한 퍼스트 리퍼블릭 뱅크(FRCB)가 포함돼있었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퍼스트 리퍼블릭 뱅크는 파산을 선언했으며 더 이상 주식 시장에서 거래되고 있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이 주식의 가치는 0이 됐으며 마이클 버리를 포함하여 역발상 투자를 진행한 투자자들은 전부 제때 팔지 못했다는 가정하에 투자 자산의 전부를 잃었습니다. 역발상 투자의 대가이자 안전 마진을 그의 투자 철학의 가장 중심에 두는 마이클 버리의 투자 결과가 투자 자산 전액의 영구 손실이라는 것은 꽤나 충격적인 결말입니다. 하지만 이보다도 더 흥미로운 사실은 마이클 버리가 이 투자로 이익을 봤을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입니다.
13F의 특성상 실제 매수가를 파악할 수는 없지만 여러 웹사이트에서 예상 매수가를 추정하여 밝힙니다. 이 매수가는 월 평균 혹은 월 중간 값 등 다양한 기준을 바탕으로 삼는데, 그렇기 때문에 웹사이트마다 추정하는 예상 매수가가 전부 다릅니다. 따라서 실제로 마이클 버리의 실제 매수가를 확인할 순 없지만 여러 웹사이트에서 공개하는 매수가의 중간값에 가까운 추정을 한 웹사이트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그의 은행주 역발상 투자의 결과를 확인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위 표에서 보이듯이 그는 퍼스트 리퍼블릭 뱅크(FRCB)에 투자한 전액을 잃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욕 커뮤니티 뱅코프(NYCB)에 대한 투자는 단기간에 50% 이상의 수익률을 기록했으며, 전반적으로 손실보다는 이익을 본 주식들이 많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는 가장 주가가 큰 폭으로 떨어졌던 퍼스트 리퍼블릭 뱅크가 살아남을 것에 모든 것을 베팅하기보다는 해당 사태로 인해 큰 데미지를 입은 섹터에서도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고 생각하는 기업 다수에 나누어 투자했습니다. 마이클 버리가 퍼스트 리퍼블릭 뱅크의 파산을 예상하고 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당연하게도 그런 예상을 했다면 간단하게 퍼스트 리퍼블릭 뱅크를 제외하고 투자를 진행했다면 될 일입니다. 그는 미래를 정확하게 맞추지는 못했지만, 전반적으로 맞추는데는 성공했습니다.
물론 다른 매수가 추정치를 쓴다면 결과가 달라지지만(대부분의 경우 마이클 버리가 수익을 올렸다는 결과가 나옵니다) 적어도 위 표에 따르면 그가 이익을 봤으니 역시 마이클 버리는 역시나 훌륭한 역발상 투자자라는 결론을 내리면 될까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위 표를 바탕으로 계산한 그의 수익률은 약 3.6%에 불과합니다. 물론 그의 매수가가 제가 사용한 추정치보다 낮을 수도 있으며, 마이클 버리는 더욱 더 긴 시계열을 가지고 투자하고 있을수도 있기 때문에 현재의 수익률이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못하지만, 리스크 대비 그렇게 훌륭한 성과는 아니라는 단기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은 합당해 보입니다. 이러한 아쉬운 성과의 큰 원인은 역시 퍼스트 리퍼블릭 뱅크의 파산입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마이클 버리는 퍼스트 리퍼블릭 뱅크의 파산을 예상하고 투자하지는 않았을 것이며 만일 이 기업을 투자군에서 제외한다면 그의 은행주 투자는 단기간에 15%에 가까운 수익률을 기록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한 명의 투자자의 단기적인 투자 성과를 바탕으로 교훈을 이끌어내려고 하는 것은 상당히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역발상 투자가 결코 아름답기만한 투자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수 많은 투자자들이 '대중과 반대로 가야한다'고 주장하며 개념적으로나마 역발상 투자를 주창합니다. '모두가 예상하는 상승/하락은 오지 않는다' 혹은 '개미가 팔아야 주식이 오른다'와 같은 흔한 이야기들은 모두 역발상 투자에 대한 단편적 이해를 바탕으로 합니다. 코로나로 인해 2020년 초에 주식 시장에 폭락하며 모두가 매도했을 때 주식을 매수했다면 큰 돈을 벌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직접 목격하며 투자를 시작한 투자자가 많다는 사실 역시 이러한 생각에 불을 붙입니다. 마치 역발상 투자는 결단이 어렵지만, 결단을 내리기만하면 훌륭한 수익이 보장된다는 식의 편견이 많은 투자자들의 심리 속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러한 결과론적 성공만을 바라보면 역발상 투자는 과감한 결단력만 있다면 성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마이클 버리의 사례에서 보이듯 역발상 투자는 결단도 어렵지만 결단을 내린다고해서 무조건적인 수익이 보장되지도 않습니다. 마이클 버리와 같은 훌륭한 투자자에게도 순탄치 않은 역발상 투자의 길을 단순히 '대중이 이렇게 생각하니 난 반대로 투자하는 것이 역발상 투자다'와 같은 미숙한 개념으로 걷고자 한다면 그 투자 여정은 험난한 길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8/7/2023
Value Investor's Sanct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