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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의선 Apr 10. 2024

회전교차로

내가 오래전에 살던 강서구에서 김포로 가는 길 중간에는 아주 오래된 회전교차로가 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있었으니 최소 20년 이상은 됐을 것 같다. 최근에야 많이 생기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회전교차로가 매우 드문 교통 시설이었다. 어딜 가든 신호등과 횡단보도가 있었고 이것이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이었다. 


그 회전교차로 근방이 차가 아주 막히는 곳은 아니었지만, 회전교차로 덕분에 나와 내 가족들은 신호를 기다리는 일 없이 빠르게 근처를 지나다닐 수 있었다. 아마도 일반적인 신호등 체계였다면 적어도 몇 분씩은 더 기다려야 했으리라.


양천로에 위치한 회전교차로. 교통량이 많지 않아 교차로 설치에 적합하다.  / 출처: 네이버지도


한 번은 주변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회전교차로가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나의 말에 약간은 부정적으로 반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는 안전은 신뢰만으로는 보장될 수 없기에 교통사고로부터 가장 안전한 방법을 적용하려면 회전교차로는 정답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회전교차로의 안정성은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입증되기도 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


회전교차로는 기본적으로 사용자 간 신뢰, 그리고 양보와 배려라는 인간에 대한 믿음에 기반한다. 신호등 체계에서 운전자는 자체 판단을 하지 않고 신호등이라는 사물의 명령에 따라야만 하지만, 회전교차로는 아날로그적인 사람을 특성을 그대로 인정하고 자체 판단에 맡기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판단의 주체가 사물에서 사람으로 변경되는 것이다. 분명 문제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그렇게 됨으로써 사람들은 자율성과 주체성을 가지고 각자의 판단을 하게 되고, 자연스레 주인 의식과 책임감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나는 사고의 감소 원인의 상당 부분이 이런 이유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때로는 사고를 줄이기 위해 또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게 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사람을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의 특성상 아무리 통제하려고 해도 사고는 생기게 마련이고 통제로 인한 시간적 비용적 비효율 또한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인간을 가장 잘 통제하는 방법은 높은 주인의식, 그리고 강한 책임감과 같이 내적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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