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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하안 Oct 11. 2022

워케이션, 그거 제가 한 번 해볼게요

제주도 4박 5일 혼자 여행하기

우연한 기회로 회사가 제주도 워케이션 지원을 받게 되어서 저렴한 값에 3박 4일 워케이션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공지가 뜨자마자 세상에 당장 가야지 하며 날짜를 잡았다가 이러저러한 일로 날짜를 옮기게 되었고, 어쩌다 보니 홀로 제주행 비행기를 탑승하게 되었다.


사실 혼자 여행하는 걸 워낙에 좋아해서 너무 좋았다.

내친김에 하루 먼저 도착해서 하루 정도는 휴가를 보내야겠다 생각했고, 여행권을 변경해서 하루 먼저 가게 되었다.


김포에서 제주로 가는 오전 8시 비행기였는데

출발 전 날 자정이 다되어가는 시간이 되어서야 비행기를 타기 위해선 내가 새벽 5시에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역시 말도 안 되는 벼락치기 인간, 더하기 너무 바빠서 도저히 짐을 쌀 엄두가 나지 않았었다.

새벽 두 시까지 짐을 싸고 나서야 3시간 뒤에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알고선 오히려 잠이 깨서 4시쯤에 잠들었고 한 시간 만에 일어났다.


30인치인지 28인치인지 모를 엄청나게 큰 캐리어에 짐을 가득 담고 집을 나왔다.

아니 근데 이게 무슨 일이야, 서울은 비가 오고 있었다.



웬만하면 오기 아님 객기로 대중교통을 타고 공항에 갔을 것 같은데,

이 거대한 캐리어를 끌고 우산까지 들며 공항까지 갈 자신이 없어 택시를 불렀고 정말 다행하게도 바로 배차가 되어 택시를 탔다.


거대한 내 캐리어를 끌고 나온 순간부터 뭔가 잘못됐다는 걸 감지했다.

언덕 중간에 멈춰 선 택시에 뒷자리 문을 열고 노트북을 먼저 놓은 뒤 캐리어를 싣으려고 하자 기사 아저씨가 본인이 실어주겠다며 나오셨다.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셨다.


기사 : "아가씨 들어가요, 들어가요 내가 들게"

나 : "아 이게 많이 무거워서요...ㅠ"

하면서 바퀴라도 들으려고 했는데 아저씨가 극구 만류하셔서 옆에서 우산이라도 씌워드리려고 했는데 기사님이 조금 들자마자 어이 구구구!!! 를 외치셨다.


나 : "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무거우시죠 ㅠㅠ 자 하나 둘 셋!"

기사 : "돌덩이야!!ㅋㅋㅋㅋㅋㅋ"


무사히 탑승한 뒤 기사님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기사님 하늘색 셔츠에 방울방울 검푸른 동그란 무늬들이 잔뜩 생겨있었다.


감사 인사를 드리자 돌아온 기사님의 인사말

"즐겁게 놀다 오세요~"


기분 좋게 웃으며 공항에 도착해 수화물을 맡기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이건 수화물 위탁 기다리다가 본 진에어의 디스플레이 문구

'짐 부치는 곳' 뭔가 구수해서 찍었다.


설레는 비행기 탑승구

언제나 이 순간이 가장 설렌다.


그리고 뒤로 젖혀지지도 않는데 대체 각도 조절 버튼은 왜 만들어놓은 건지 의문인 불편한 척추 요추 바사삭 의자에 한 시간이 넘도록 앉아서 졸다가 부스스한 상태로 제주도에 도착했다.

웰컴 제주!


제주 국제공항에 도착하면 1층 식당가에 애월 카츠라는 식당이 있는데, 여기 돈가스가 썩 괜찮다.

제주 도착해서 제일 먼저 먹은 음식이 뭐냐는 말에 공항 돈가스라고 하면 그건 서울에서도 먹을 수 있는 거 아니냐는 답이 돌아오곤 하는데

뭣이 중합니까? 음식이 다 거기서 거기고 제주에서 먹으면 제주 음식 아닙니까

여하튼 여기 상당히 괜찮습니다.


돈가스를 먹으며 다음 일정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다.

4박 5일 일정 1일은 휴가 나머지 3박은 워케이션이었는데 정말 미리 정한 일정이라곤 서핑 단 하나였다.


친한 동료가 놀러 가서 서핑을 했는데 그렇게 재미있다며, 나도 버피테스트를 좋아하면 잘할 것 같다며, 운동 신경이 있으시니 잘하실 거라며 바람을 잔뜩 넣었다.


워낙 액티비티를 좋아하는 성향이라 나도 한 번 코에 물 좀 넣고 와보겠다며 무턱대고 서핑 액티비티를 등록했다.

근데 버피 테스트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지는 의문


하여간 서핑을 예약할 당시 옵션에 1박 제공이 있었는데 오 너무 좋은데? 하는 마음으로 냅다 결제부터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 나니까 동료 왈, 나랑 같은 곳을 다른 날로 예약했는데 숙박이 게스트 하우스인 것 같고 너무 저렴한 게 겁나서 본인은 예약하지 않았다.


원래 여행을 다닐 때 이동은 불편할지언정 숙박만큼은 투자를 많이 하는 편인데 이번엔 그럴 시간도 정신도 없어서 '아 스트레스'를 읊조리면서도 그냥 흘러가는 대로 두었던 것 같다.


돈가스를 먹으며 체크인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연락을 했다가 서핑 사장님께서 오후 1시로 시간을 변경하고, 서핑 끝난 후 체크인이 어떠냐고 물으셨고 흔쾌히 오후 3시에서 1시로 변경했다.


공항에 도착해 혼자 인생 네컷도 찍고 서핑 가게 근처로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공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고, 다행히 바로 앞에 해변을 바라보는 엄청나게 커다란 카페가 있었다.

분명 서울은 비바람이 불고 쌀쌀한 가을 그 자체였는데, 제주는 늦여름과 초가을 사이였다.

난 도내 유일한 가을룩이었다.


멋들어진 디저트들을 구경하고 외부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서핑 강습 전까지 해변을 바라보며 멍을 때렸다.


서울에 살다가 나왔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띄게 느껴지는 행복 포인트가 있다.

낮은 건물들 덕에 한층 더 하늘과 가까워지는 기분

서울은 건물의 끝에 하늘이 있는 기분이라면, 여행지에선 땅의 끝에 하늘이 있는 기분이다.

내 눈에 담기는 시야가 광곽이 되는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그렇게 한 시간 가량을 더 멍 때리다가 서핑 가게로 향했다.


가게로 들어서자 편한 차림으로 보드에 앉아 강아지를 어루만지고 있는 여성분이 계셨다.

인사를 건네고 쳐다보았다.


여성분 : "아 저 사장님 아니에요 ㅎㅎ 올라가셔야 돼요"

나 : "아ㅎㅎ 네 감사합니다"


그분은 나와 같은 시간에 서핑 강습을 받기로 한 분이셨다.

제주 한 달 살이를 하고 있으며, 서핑이 처음이라며 떨린다는 말을 하셨다.


듣던 나는 어머 한 달 살이 내 로망이라며, 재밌냐며, 어디 어디 가보셨냐며 평소에 볼 수 없는 텐션으로 낯선 이와 얘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서핑을 타러 갔다.

탁월한 운동 신경으로 재능 서퍼가 되겠다는 꿈을 가득 안고 나선 서핑은

연신 물만 먹어대는 허우적 인간이 되어있었다.


탄 지 20분도 안돼서 발가락이란 발가락은 다 나가서 발톱도 깨지고 아마 인대도 늘어난 것 같은데 병원은 안 가보았다.

여행지에 가면 러닝을 하는 나만의 낭만 루틴이 있어 항상 운동복과 러닝화를 챙겨 다니곤 하는데 제주도 도착 3시간 만에 러닝은 못하겠네 싶었다.


나름 조금 타보다가 자유 시간이 주어졌고, 파도도 유독 좋지 않았을뿐더러 그냥 부표처럼 떠 다니는 것조차 힐링이라 자유 시간엔 단 한 번도 파도를 타보지 못했던 것 같다.


부표처럼 가만히 떠 다니다 보니 유독 파도를 잘 타는 여성 분이 눈에 띄었다.

'와우 대박이다'


생각하며 가만히 보드를 감싸 떠다니고 있는데 여성분이 말을 걸어왔다.

서퍼 : "보드 안 타세요?"

나 : "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떠 다니는 것도 재밌네요. 근데 왜 이렇게 잘 타세요?!"


그분은 서핑을 탄 지 한 달 정도 되셨다고 했다. 나도 계속 타러 다니면 금방 늘 수 있으려나 하는 생각을 하며 또다시 몇 시간을 떠 다니다가 같이 강습받은 언니와 가게로 돌아갔다.


온몸이 만신창이에 보드는 세상에 또 왜 이렇게 무거운지

몸도 물에 절여져 있었다.


가게 안에는 강아지가 있었는데, 샤워 후에 나른해진 몸으로 하염없이 강쥐를 쓰다듬었다.


원래 내 계획은 서핑이 끝나면 숙소에 짐을 풀고 근처 헬스장에 가서 웨이트를 한 뒤 숙소에 돌아와 내일부터 시작되는 워케이션을 위해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에 대한 구상을 할 생각이었는데


같이 서핑을 한 언니가 헬스 몇 시에 가냐고 물어왔다.

나 : "헬스.. 안 가려고요"

언니 : "우와 같이 저녁 먹자!!"

나 : "좋아요!"


이미 파도의 여파로 만신창이가 된 상태에서 굳이 헬스를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원래 성격 같았으면, 저 상황에 누가 같이 뭘 하자고 하는 게 귀찮고 피곤해서 헬스 갈 생각이 없어도 헬스장을 간다고 말했을 텐데 그날은 좀 달랐다.

여행지까지 와서 굳이 평소처럼 하진 말자 하는 생각으로 비행기에 탑승했기 때문일까


호탕하고 외향적인 언니의 주도 아래 뚜벅이로는 도전하지 못할 먼 곳으로 흑돼지를 먹으러 갔다가 중문 시장도 갔다가 숙소로 다시 복귀했다.

극 외향인인 언니의 리액션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왜인지 모르게 참 편했다.

그냥 툭툭 내뱉는 내 말에도 너무 웃기다며 연신 웃어줬다.


서로 여행지에서 친구를 사귄 건 처음이라며, 모르는 사람이랑 절대 안 엮이는데 오늘은 참 신기하다는 얘기를 했다. 언니는 본인 맘에 들지 않으면 말도 안 건다며 나를 간택했다고 표혔했다.

한양 사는 사람은 처음 본다며, '스타트업'이라는 것도 드라마에서나 봤지 실제로 첨 봤다고 말했다.

더불어 서울 사람이라 그런가 차분하고 재밌다는 말도 했었는데, 그건 내가 차분하고 재밌을 뿐이지 서울 사람이라서가 아니라고 정정을 해주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언니가 서울 얘기를 했었다. 서울 여행을 한 번 갔었는데 가서 00이란 곳을 갔었다고. 내가 '전 모르는 곳이에요' 그럼 언니가 그곳에 대한 설명을 해주기를 반복.


나 : "서울 오래 살긴 했는데 서울 잘 몰라요. 서울에선 일이랑 공부밖에 안 해요 ㅋㅋㅋㅋㅋ"

언니 : "내가 너보다 서울 잘 아는 거 아니야?"

나 : "그럴 수도 있어요"

언니 : "너무 웃겨"

나 : "진심으로 가능성 있어요"

언니 : "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언니가 간택해 준 덕분에 뚜벅이가 코에 바람 좀 세게 넣을 수 있었다.

그리고 서울 오면 꼭 좋은 곳 데려가 주겠다는 약속을 뒤로한 채 언니와 아쉬운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고 숙소로 복귀했다.


숙소에 짐을 놓으러 갈 당시 운 좋게 방을 혼자 쓰게 됐다 해서 아싸를 외쳤었다.

맘 편히 짐을 풀고 있는데 느닷없이 상체 탈의한 남성분이 들어와 인사를 건네서 '아 방만 혼자 쓰고 다른 방엔 사람이 있구나'하며 아쉽다 생각했었는데 다행히 복귀한 집에는 아무도 없는 듯했다.


일단 당장 다음 날 일찍 일어나 1시간 반 가량을 달려 워케이션 지원 숙소로 간 뒤 늦지 않게 업무를 시작해야 했기에 빠르게 잠을 청했다.

저녁 22시가 넘어간 시간쯤부터 집에서 부스럭 거리며 누군가들이 얘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잠들었다.



제주도 이틀 차.


다음 날 일찍 일어나 교통편을 타고 제주시에서 서귀포로 움직일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숙소를 나가려고 하자 비가 쏟아졌다. 부랴부랴 우산을 찾아보았는데 우산이 없어졌다.

내가 제일 아끼던 연두색 우산을 서핑 가게에 두고 온 것 같은데 문은 아직 안 열었을 테고 나는 출발해야 하니 사실상 두고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안타까움을 뒤로한 채 택시를 부르고 멍 때리며 밖을 보고 있는데 어제 인사를 나눈 남성분이 다가왔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천장에서도 누가 내려왔다.

'저기에도 사람이 있었네'


그분들은 내가 택시를 안전히 탈 수 있게끔 우산과 함께 캐리어를 대신 실어주셨다.

캐리어를 끌어주시면서 무거울 줄 알았는데 가볍네요라는 말씀을 하셔서 웃어넘겼는데

트렁크에 캐리어를 싣을 때 괴성을 들을 수 있었다.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이른 아침 다른 숙소로 향했다.


근데 너무 웃겨

네 많이 무거워요... 22킬로짜리 캐리어거든요...


그리고 택시에 탄 뒤 업무를 시작했다.

택시에서 일하고 있는 나.. 좀 멋있어 보인다는 잡생각을 했다.



워케이션 숙소 카페

워케이션 지원 호텔 2층에 있는 전용 카페였는데, 뷰가 말도 안 되게 좋았다.

또 음료를 주문하면 프로모션으로 블루보틀 커피 에일을 주고 있었는데,

체크아웃할 때쯤 보니 이 맥주가 4병이나 있었는데 병따개를 구할 수가 없어서 하나도 못 마시고 돌아온 게 아쉽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며 네이버 지도를 돌아다니길 반복.

누가 무슨 음식을 좋아하냐 물으면 다 상관없지만 매운 것과 생선 구이를 못 먹는다 말하곤 했었다.

덤으로 회도 못 먹냐 하면 그건 또 좋아해서 그냥 비싼 거는 먹는 거 아니냐며 놀리기도


생선 구이를 못 먹는 이유는 초중학교 급식에서 맛 본 헛 구역질 나는 코다리 강정과 북엇국, 가시가 가득한 생선가스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못 먹고 못하는 게 존재한다는 게 가끔은 좀 싫어서 극복해봐야지 하다가도 '굳이?'라는 생각이 들어 도전하다가도 포기했던 적이 있던 것 같다.


근데 이 날은 주변에 죄다 고등어 갈치를 취급하는 식당만 즐비해 있길래 에라 모르겠다. 한 번 먹어보지 뭐 하는 생각으로 갈치구이와 고등어구이 맛집이라는 식당에 갔다.



갈치 너... 좀 더 친해지면 가시 발라내기 쉽겠는데?

굉장히 단순한 애였다. 고등어는 그래도 좀 친숙했지만 살에 파묻혀 가시가 잘 안 보인다는 단점이 있었다.


비록 먹은 것보다 걸러낸 게 더 많아서 식당 아주머니께서 왜 이렇게 먹냐며 혼을 내셨지만 생선 구이를 맛있게 먹었음에 상당히 만족했다.

나 이제 생선 구이 먹을 수 있다!!!!!


- 생선 구이 트라우마를 극복했습니다 (완)


그리고 퇴근 시간이 다 되었지만, 중요한 프로젝트의 배포를 코 앞에 두고 있던지라 워케이션이지만 야근을 해야 되는 상황이었다.

바로 앞에 제주 올레 시장이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저녁거리를 사서 돌아와 업무를 해야겠다 생각했다.

옴뇸뇸

시장을 돌아다니는데 유독 줄을 많이 서 있는 곳이 있어 보니까 만둣집이었다.

뭔 만두 하나 사려고 이렇게 줄을 서;;라고 생각하며 나도 따라 섰다.

두 개를 사서 하나는 포장하고 하나는 그 앞 벤치에 앉아 먹었다.

뭐야;; 그냥 밀가루에 치즈 맛이잖아하며 순삭 시켰다.


우도 땅콩 아이스크림도 먹고 잉어 뻐끔거리는 것도 찍었다.


그러다가 진짜 저녁에 먹을 게 필요해서 검색하다 보니 마농 치킨이 유명하대서 마농 치킨을 사러 갔다.


마농 치킨 설명

- 제주에선 센스 있게 "마농 치킨 한 마리 줍서"라고 주문해보세요


ㅁ.. 마농 치킨 한 마리..ㅈ...!!! 주세요

가 서울 뚝딱이인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숙소에 돌아와 제주 맥주와 마농 치킨 그리고 넷플릭스와 함께 일을 했다.

이런 소확행이 또 어딨냐고,,, 야근을 해도 제주도에서 하니까 괜히 기분이 좋았다. 좋아!


그렇게 제주도 이틀 차가 끝났다.



제주도 사흘 차.


업무가 끝난 뒤 헬스장에 가려다가 돌연 편의점에 들어가 주전부리를 샀다.


제로콜라, 제로카페인, 프로틴 음료 그리고 갑자기 돼지바.


공원 벤치에 앉아 돼지바를 먹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편의점에서 간단한 마른안주 몇 개와 함께 크루져 맥주를 샀다.

전 날에는 일을 했지만 이 날은 글을 쓰며 넷플릭스와 맥주를 마셨다.



제주도 나흘 차.


아침 일찍 일어나 전 날 사다 둔 프로틴 음료를 마신 뒤, 숙소 근처 헬스장에 일일 권을 끊고 방문을 했다.

이때 스트레칭 제대로 안 하고 벤치 프레스 하다가 이 이후로 등에 담 걸려서 애 좀 많이 먹었다.


출근 전 상쾌하게 웨이트를 했으나, 미쳐 서울에서 챙겨 오지 않은 헬스 장비에 대한 아쉬움을 가진 채 숙소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 귤나무도 봐서 신기했다.


아침은 대충 배달시킨 커피와 스콘으로 때웠다.


그렇게 또 호텔 카페에서 일을 했다.


시카 롯토인가 바닐라 시럽과 에스프레소를 섞은 음료를 주문했는데 상당히 맛있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이 날은 나름 제주도까지 왔는데 워케이션 시작 이후 너무 일만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급하게 갈 곳을 찾다가 약천사를 방문해야겠다며 퇴근하자마자 택시를 타고 이동을 했다.


약천사 입구

들어서자마자 입이 떡 벌어지는 경관을 맞이했다.

천국 재질이다. 여긴 천국이야

금방이라도 승천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말이 그렇다는 거지 진짜 승천한다는 건 아니지만.

끝없이 펼쳐진 녹음과 고인 물에 비추어진 하늘은 내 걸음을 멈추기에 충분했다.


청귤 나무

청귤 나무 처음 봤다.



약천사에 도착해 드넓게 펼쳐진 초원을 보니 남아있던 근심도 모두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무야호

혼자 왔지만 굴하지 않고 사진도 열심히 찍었다.

무야~~ 호~


그렇게 역 천사를 누비다가 세련된 염주도 하나 구매해서 아직도 잘 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는 길, 정류장 전광판엔 버스가 1시간 뒤에나 온다며 놀리기라도 하듯 번쩍거리고 있었다.

그럼 걸어가지 뭐~!


그렇게 10킬로미터를 걸으며 해변을 마음껏 볼 수 있었다.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또 해변을 보면서 걸을 수 있을까.

반바지를 입은 탓에 산모기에 10방은 뜯겼지만,

이것 또한 낭만이다.



시장에서 흑돼지 족발을 포장해서 숙소로 복귀했다.

족발을 먹으며 또 남은 업무를 하다 나흘 차를 종료했다.



제주도 닷새 차.


이 날은 오션뷰 헬스장에서 오전 pt가 예약되어있었다.

같은 헬스장이라도 오션뷰라면 액티비티가 될 수 있겠다 싶었고, 먼저 방문했던 회사 직원들의 강력한 추천으로 방문하게 되었다.



헬스장에서 만난 선생님은 굉장히 유쾌하고 재밌으셨다.

웨이트를 접하고 운동에 진심이 된 지 어언 2년이 다되어가는 시간.

아직도 운동이 어렵고, 자세나 성장 측면에서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데 선생님을 만나 뵙고 감동을 받았다.


전문적인 지식과 수행능력에 그동안 나는 운동을 한 게 아니고 무게를 드는 것에만 초점을 두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게를 추가하지 않은 빈봉만으로도 땀이 뻘뻘 나고 벌벌 떨리는 걸 보니 기분이 상쾌했다.


거꾸로 매달리는 묘기를 보여주시며 나도 할 수 있다는 말에 "안될 텐데요..?"를 읊조리며 도전을 했다.

여러 번의 도전 끝에 결국 성공했다. 아 정말 재밌네.


선생님은 나와 비슷한 점이 많아 보였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당장 행동해야 하고, 남이 뭐라 하든 개의치 않으시는 분. 본인을 믿으며 사시는 분이었다. 에너지도 좋으셨고, 계속해서 날려주시는 따봉과 칭찬에 기분도 좋았다.


선생님께서 좀 더 공부해서 스포츠 지도사 자격증을 따 보라며 권유를 하셨는데, 빈말인 줄 알았던 그 말이 진심이라는 말씀에 더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카페에서 빵을 사서 먹으며 업무를 시작했다.

점심에는 숙소 앞 맛집에서 전복 뚝배기와 해물 파전을 시켜 돔베고기와 함께 점심을 해결했다.

사실 웬만하면 다 맛있게 잘 먹는 편인데 글쎄.... 전복 뚝배기 집은 별로였다.


헬스장에 신발을 두고와 퇴근 후 가지러 갈 겸 들렸던 고기 국수 맛집



뭐야 진짜 왜 이렇게 맛있는 건데?

고기 국수는 게눈 감추듯 순삭 해서 먹었고, 흑돼지 만두는 맛있지만 배가 불러서 남겼다.


그리고 느릿느릿 부른 배를 부여잡고 숙소로 복귀했다.


오랜만에 야근이 없는 날이기도 하고 바로 다음 날이 출국이었기 때문에 몇 시에 일어날지를 계산하고 맥주 한 캔을 하며 누워서 sns를 하다가 오전에 수업했던 피티 선생님의 인스타에 글이 올라온 것을 보았다.

이 글을 보고 적잖은 감동을 받았다.


2년 전의 나는 스쾃 한 개도 못하던 운동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는데, 할 줄 아는 게 노력밖에 없어서 항상 노력만 하며 사는데 결국 지나고 보면 이렇게 이뤄내니까 바빠도 버티고 사는 거 아닐까 싶었다.


이번 여행에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서 평소에 느끼지 못한 상황과 감정들을 마주하게 되다 보니 참 많은 경험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새로웠고 신기했다.


그렇게 감동을 받은 닷새가 지나고,



제주도 엿새.


오후 반차인지라 오전 업무를 해야 해서 11시 비행기 탑승을 위해 5시부터 일어나 택시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수화물을 맡기기 위해 탑승권을 확인했더니 세상에 비행기가 13시였다.

나도 참 나다. 오히려 좋아를 외치며 식당가에서 제육볶음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카페에서 업무를 시작했다.

오전 업무를 끝내고 비행기에 탑승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제주도는 정말 아름다웠다.

지형물에 부딪혀 깨지는 파도는 픽셀처럼 하얗게 표시되는 듯 보였고, 암석마저 푸르고 아름답게 보였다.



그리고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김포 공항에 도착했다.


수없이 펼쳐진 끝없는 계단에 한숨을 쉬며 캐리어를 끌고 내려가자 어떤 분께서 본인이 들겠다며 도와주셨다. 헉 무거운데 괜찮으세요?를 외쳤지만 스스럼없이 냅다 23킬로짜리 캐리어를 가볍게 공중에 들고 계단을 내려가셨다.


실 압근(실전 압축 근육)이 이런 건가

아직 살만한 세상이라는 생각을 하며 연신 감사함을 표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편히 왔습니다.


여행기간 내내 채워진 인류애는 동네에 도착하자마자 바사삭 사라졌지만 그래도 즐겁고 행복했다.



혼자 여행할 때마다 새삼 살기 좋은 세상이란 생각을 한다.

낯선 호의들이 모여 내 여행을 가득 채운다.


개인주의자인 내가 혼자 놀기를 지속할 수 있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결국 사람들 덕분이다.


20킬로가 넘는 캐리어를 꾸역꾸역 들어 내 짐을 옮겨주시던 사람들

서핑하다 만난 여행지 첫 친구, 언니 덕에 혼자면 먹지 못했을 흑돼지도 먹고,

8살 아가와 친구도 먹고,


오션뷰를 보러 갔던 헬스장에서 운동에 최선을 다하시는 선생님을 만나 뵙고 짜릿한 느낌에 감동까지 받았다.


어차피 내 인생은 계획대로 되었던 적이 없다.


계획 없는 여행에선

일어나는 모든 일이 우연이고 낭만이다.

기대가 없기 때문이다.


낯선 이들의 호의 덕에 내 여행은 좀 더 따뜻했고,

문 닫은 식당 덕에 못 먹던 생선구이를 먹게 되고,

버스가 끊긴 덕에 수평선을 보며 10킬로를 걸을 수 있었다.


얼마나 낭만적이야


그리고 어떻게든 또 된다.

그것 또한 낭만이고 경험이 된다.


나는 또 이 경험으로 인해 다음엔 어디를 놀러 갈지 행복한 고민을 지속할 수 있다.


그래서

다음엔 어디를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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