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늦은 저녁 횡단보도 앞, 신호를 기다리며 휴대폰을 하고 있었다.
'쁘앙,,'
앞에 서 있던 자동차에서 클락션 소리가 들렸다.
근데 그 소리가 무엇인가 조용했고 또 조심스럽게 들리운 탓에 '뭐지?'하고 자연스럽게 앞을 바라보았다.
텅 빈 도로와 길가에는 신호를 기다리던 나와 그 차 밖에 없었다.
신호등은 파란불을 밝히고 있었고, 그제서야 클락션의 의미를 알아차렸다.
꾸벅 인사를 하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길, 참 따뜻한 세상이라고 생각했다.
회사 앞에는 동료들과 자주 가는 카페가 하나 있다.
피곤한 오후.
카페인 중독자인지라 오전에 이미 사 둔 커피가 있었지만, 바람을 쐴 요량으로 커피 사러 가는 동료들을 따라 나왔다.
'커피 나왔습니다~'
픽업대에는 5잔의 커피와 테이크아웃 컵에 담긴 물이 있었다.
순간적으로 마음이 몽글해짐을 느꼈다.
바쁜 사장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감사 인사를 드리고 카페를 나왔다.
문을 닫고 나오자마자 동료들에게 "사장님 너무 따뜻해요....."라는 말을 했다.
나는 애초에 무엇인가에 큰 기대를 하며 살지 않는다.
특히나 사람에 대해서는 더욱 그런 부분이 강하다.
그렇다고 내가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이 부정적이거나 시니컬한 사람은 분명히 아니라는 걸 말해두고 싶다.
살아가며, 나를 안정적인 상태로 유지하는 데에 큰 일조를 하고 있는 생각들이 몇 개 있다.
삶의 기본 값은 불행이다.
인간은 본래 나약하고 이기적인 존재다.
비약이 심한 거 아닌가 할 수도 있겠다.
근데 위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나면 많은 부분에 있어 인생이 참 단순해진다.
삶과 인간에 대한 기본값이 마이너스라고 생각해 보자, 0 이상만 되어도 그것이 긍정적으로 다가온다.
사소한 것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고, 별 거 아닌 것으로 감동을 받고, 감사를 느낄 수 있게 된다.
물론 기대치가 낮다고 해서 스트레스나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비양심적이거나 이기적인 사람을 보면 속으로 생각한다.
"사람이.. 왜 그럴까.."
근데 거기서 끝이다.
원래 인간은 이기적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면 그 이상으로 불필요한 생각이나 감정은 들지 않는다.
사람에 대한 낮은 기대치가 가져오는 효과는 단순히 인생을 심플하고 편안하게 사는 데에 도움을 주는 정도에서 멈추지 않는다.
나의 경우 상황과 사람에 대한 장점을 굉장히 잘 찾아내는 편인데, 이는 역설적이게도 낮은 기대치가 만들어 낸 나의 장점 중 하나이다.
예전에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친구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넌 진짜 세상 살기 편한 성격이다. 너처럼 살아야 되는데"
처음에는 비꼬는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친구는 진심을 담은 말이라고 했다.
나라고 해서 단점을 못 보는 것이 아니다. 다만 상식 선에 있는 대부분의 단점은 장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개인주의자를 단점으로 취급한다면 반대로 공과사를 지키며 남에게 불편한 부담을 주지않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우유부단하거나 귀가 얇은 게 단점이라면 또 반대로 그만큼 수용력이나 포용력이 높다는 뜻이다.
솔직한 게 단점이라면 누군가에겐 그 사람이 격 없이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내향적인 게 단점이라면 반대로 혼자만의 고독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고,
외향적인 게 단점이라면 또 다양한 여러 관계에 영향을 주거나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예민하다는 것은 그만큼 섬세하고 꼼꼼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대부분의 사람을 이런 방식으로 바라보다 보면 그 누구 하나 배울 점 없는 사람이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이렇게 되면 주변을 통해 참 다양한 긍정적인 자극과 감명을 받게 된다.
시기마다 눈에 많이 들어오는 장점이 바뀌곤 하는데, 요즘엔 유독 친절과 다정함이 눈에 많이 들어오는 것 같다.
친절과 배려가 자연스러운 사람을 볼 땐 그런 것들이 몸에 베이기까지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대해왔을지를 떠올리며 마음이 몽글해지곤 한다.
또 다소 어색한 부분이 있지만 노력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럼 본디 선하고 친절한 사람이 노력까지 하는구나, 참 따뜻한 사람이네 하는 마음에 눈길이 한 번 더 가곤 한다.
조용하고 무뚝뚝해 보이지만 친절한 사람도 있다.
드러내길 싫어해 생색내지 않고 묵묵히 남 모를 배려를 하는 바람에 다른 사람들 눈에 띄기 쉽지 않은 사람
그럼 혼자 속으로 "참 친절하네... 이걸 주변 사람들도 알아주면 좋을 텐데" 하고 생각한다.
나는 다정함도 지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이다.
다만 온전한 친절과 건강한 다정함을 위한 필요 충족 조건은 '여유'에 있다고 보는 편이다.
최근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라는 책을 천천히 읽고 있는데 이 책에서 '보노보'와 '침팬지'를 비교하며 다정함에 대해 흥미롭게 서술한 부분이 있어 눈길을 끌었다.
침팬지는 성별이나 무리와 상관없이 갈등 상황에서 곧바로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는 반면, 보노보는 매우 협력적이고 우호적인 사회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차이의 배경에는 환경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였고, 보노보가 서식하는 콩고강 남부 지역은 자원이 풍부해 식량 부족 문제가 없으며, 다른 경쟁 개체들도 없어 평화로운 공존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결국 모든 개체에게 있어 가장 우선순위는 생존과 번식이며, 생존에 문제가 없는 상태가 되어야 협력적인 태도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내게 있어 건강한 친절과 다정함이란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순수하게 '그냥'하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이러한 건강한 친절과 다정함은 내가 여유롭고 안정된 상태일 때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불안한 상태에 놓였다고 느낄 때면, 현실에 압도되어 주변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음을 깨닫곤 한다.
이런 시기에는 평소에 섬세하게 보이던 주변이 마치 블러 처리된 것처럼 흐릿하게 보이기도 하고, 또는 선명하게 보이더라도 나 자신을 위해 에너지를 아끼고자 다른 이들과의 상호작용을 최소화하곤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런 불안정한 시기를 줄이거나 피하기 위해, 또 진정성 있되 투명하게 살고 싶은 마음에 나는 의식적으로 세상을 따뜻하게 보려고 노력하는 것 아닐까 싶다.
새로 출근한 직장에는 신규 입사자를 위한 '서포터'라는 제도가 있다.
3개월의 수습 기간 동안 입사자의 적응을 도와줄 팀원을 매칭시켜 주는 것인데, 4년 차 경력 입사라 아무 기대도 하지 않고 들어왔다가 꽤나 큰 감동을 받았었다.
친절과 다정함에 감동받은 일화는 너무 많지만, 서포터 외에 다른 팀원들도 모두 많이 신경 써주시곤 했다.
신규 입사자이다 보니, 나를 두고 양쪽에 같은 파트 팀원이 한 분씩 앉아있는 배치로 자리가 구성되어있다.
나의 경우 어느 회사를 다니더라도 자리를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일하는 편이다.
이는 꽉 막힌 자리보다 시야가 트인 곳에서 집중이 잘되는 편이라 주로 경치가 보이는 창문 쪽에 붙어있는 걸 좋아하기 때문인데, 새 회사에서는 적응 기간이라 질문할 것도 많고 바로 자리를 옮겨 다니기 눈치 보이는 부분이 있어 한 달 정도는 가만히 자리에 있었던 것 같다.
문제는 너무 고요하면 또 집중이 안 돼서 노래를 듣고 싶은데 그러질 못해 조금 고통스러웠다.
그 생각을 하며 내 양쪽에 앉은 동료들을 떠올렸다.
두 분 다 에어팟을 갖고 계신 것 같은데, 자리에서 에어팟을 끼고 계신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에어팟을 얼마나 끼고 싶으실까..." 생각했다.
에어팟을 끼고 있으면 혹여 내가 질문을 하지 못할까 봐 두 분 다 참고 계신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원래 내 성격 같았으면 "에어팟 끼셔도 돼요"라고 말했을 것이다. 근데 말하지 못했다.
실제로 질문할 게 많았기 때문에 차마 책임질 수 없는 그 말을 할 수 없었다.
어느 날 물을 뜨고 자리에 돌아오며, 내가 앉아있는 왼쪽 귀에서만 에어팟을 빼고 있는 동료를 보았다.
그 모습을 몇 번 본 뒤에 양쪽 다 끼셔도 된다는 말씀을 드렸는데, 원래 한쪽은 빼고 일한다는 답을 들었었다.
내가 자리를 옮겨 다니며 일을 하기 시작하고, 자리에 있던 양쪽 동료 두 분 모두 에어팟을 끼고 일하고 계신 모습을 보았다.
역시 모두 따뜻한 배려였다.
지금 회사는 9:00~10:30까지 자율 출근제이다.
입사 초반, 몇 시에 출근하든 먼저 출근해 있던 서포터를 보고 신경 쓰이는 마음에 "설마 저 때문에 일찍 오시는 거라면.. 안 그러셔도 돼요!"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갓생을 산다고 하셨었나, 아침잠이 없다고 하셨었나.. 너스레 있는 웃음으로 답변하시기에 아닌 것 같지만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던 적이 있다.
금요일엔 선택적 재택근무를 하는데 적응을 위해 재택보단 사무실 출근을 선택했었다.
서포터분 또한 사무실 출근을 하길래 또 나 때문인가 생각했었다. 또 아니라고 하셨었다.
같이 밥 먹는 멤버분이 실제로 금요일 출근하는 사람 중 한 명이라고 말씀해 주셔서 마음이 좀 가벼워지긴 했었다.
매일 9시쯤에 출근했던 서포터분은 이제 금요일 오전엔 재택을, 평일엔 10시를 조금 넘긴 때에 출근하고 계시다.
참 따뜻한 분이다.
몇 주 전, 입사 n주차를 맞이하여 동료 피드백을 받았다.
HR 분께 메일로 피드백이 전달되었으니 확인해 달라는 연락을 받고, 심호흡을 한 뒤 조용한 곳에서 메일을 확인했다.
'겸허히 받아들이자'
불교 경집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다른 사람에게 매도를 당하거나 비판받아도, 존경을 받거나 칭찬을 받아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있으세요.'
동료 피드백을 보고 아무렇지 않은 척 넘기는 건 실패했다.
하나같이 좋은 말 밖에 없었다.
예전에는 아무리 칭찬을 들어도 정말 아무 감정 변화 없이 넘겼던 것 같은데, 나이를 어째 거꾸로 먹은 건지 생각했다.
단지 좋은 말을 들어서 감동받았던 것이 아니었다.
같은 팀 내에서만 진행될 것이라 생각했던 피드백은 팀 외의 같은 직군(=파트)에게서도 진행된 듯 보였다.
지금 회사가 바쁜 시즌인지라 많은 이들이 휴일엔 잔업을, 평일엔 야근을 하며 업무를 진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바쁜 와중에... 다 맨날 야근하시면서...... 언제 이렇게 피드백을 써주신 거야....." 하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진행해 주신 것 같았고, 장문으로 길게 써주신 분들이 많아 감동은 배가 되었다.
회사 생활을 하며 처음 받아 보는 공식적인 동료 피드백이었다.
아 이게 내 장점이 맞았구나 하는 생각에 지난 사회생활들이 스쳐 지나갔다.
동료들이 관심을 갖고 따뜻하게 바라봐 준 덕에 객관적인 나를 좀 더 알 수 있었다.
나 또한 동료들에게 유의미한 피드백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다짐할 수 있는 계기였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나는 이 말에 동의한다.
아직까지 세상은 자비롭고, 다정하고 친절한 사람들이 있어 사회가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서툴지만 노력하는 사람도 참 멋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게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욕심은 없다. 그런 이미지는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고
근데 같이 따뜻하지는 못할지라도, 친절을 잘 알아채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으로는 계속 살고 싶다.
같이 있으면 언제나 적당한 온기가 느껴지는 사람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