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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향 Jan 10. 2022

나도 한 번에 대학교에 갈 수 있을 줄 알았다.

사주에서 예고된 달콤한 N수의 맛

보통의 열아홉 살이 그러하듯 내 인생 목적은 한 방에 대학교에 붙는 것이었다. 문예창작과에 가기 위해 열여덟 살부터 입시를 시작한 나는 내가 수시로 대학교에 갈 거라는 오만함에 젖어있었다.


뭐, 나 정도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실력이 출중하신 과외 선생님께 글을 배웠으며, 작은 상이지만 학교 밖 백일장에서 수상을 한 경험도 몇 번 있었다. 흔치 않게 고삼 일 학기에 내신을 올렸고, 실기나 백일장에 크게 긴장하는 성격도 아니었다. 나는 적당히 새내기 패션이나 검색하고, 최애의 콘서트에 가기 위해 용돈이나 모으면 될 줄 알았다. 내 미래가 남들처럼 적당히 흘러갈 거라는 착각이 유독 숨 쉴 통로처럼 느껴졌기에 나는 '미래의 나'에게 과도하게 집착했다.


하지만 현실이 어디 그러하던가. 제법 잘 친 것 같다고 믿었던 대학교는 물론, 1순위였던 대학교, 붙으면 좀 고민할 것 같다고 여겼던 대학교 모두 먼저 나를 거부했다.


죄송합니다, 합격자 명단에 없습니다.


벌써 우울해하지 말자. 최저 있는 대학교가 남았잖아? 잠깐 울고, 기운을 차려봤지만 현실은 내게 냉정했다.

사탐에서 미끄러져 최저를 맞추지 못한 것이다.

늦은 저녁, 가채점을 끝내자마자 불현듯 그해 여름에 명동에서 보았던 사주가 떠올랐다.


"A대학교나 B대학교에 제가 갈 수 있을까요?"

"음, 힘들 것 같은데. 둘 다 엄-청 열심히 해야 가능할 거야."

"그러면 내년에는요?"

"내년에도 엄청 열심히 하면 가능할 거야, 아마."


나는 왜 그 말의 정확한 맥락을 짚지 못했나. 열심히 하면 그래도 올해 갈 수 있대! 앞에서 말한 "힘들 것 같은데."는 적절히 필터링을 마친 뒤였다. 찝찝한 마음은 뒤로 하고, 테이블 위에 펼쳐진 타로카드를 보며 내가 어느 대학과 잘 어울릴지 덱을 하나씩 뽑았지.


A대학- 올해는 힘들다.

B대학- 아무래도 열심히 하면 가능할 듯.

C대학- 가능성 있는데, 본인이 준비가 안 되어있다.


두리뭉실한, 이제 와서 생각하면 부정인 답을 듣고 오로지 "열심히 하면 된다."만 믿어보려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주 끔찍하게도 이 결과는 맞았다. 마지막 남은 C대학, 준비를 하나도 하지 않은 채 1차에 붙었다가 면접에서 운 뒤 2차에서 장렬하게 떨어졌거든. 나는 소름이 바짝 돋은 팔을 쓸며 앞으로 내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고민해야 했다. 내겐 일단 길잡이가 필요했다.


사주 그거, 좀 더 봐볼까?


그 이후로 나는 "아무래도 힘들 것 같은데."의 향연을 견뎌야만 했다.


네가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야, 절묘하게 네 팔자에서 딱 열아홉 살에 학운이 모두 나갔어.

ㄴ왜 나만?!

포기하지 말고, A대학교에 딱 n번 도전하면 될 거야.

ㄴn번의 실기인가, n년의 입시인가.

전공은 잘 맞는데 아무래도 삼재가 끝나야 해. 올해가 지나야 풀리겠네~

ㄴ저와 같은 해에 태어나서 한 번에 대학 간 애들은 삼재가 아닌가요?

이 친구 지금 대학을 못 갔거나, 아니면 실력에 비해 아주 낮은 곳에 간 팔자인데?

ㄴ소름 돋아. 나 지금 생년월일밖에 말 안 했는데!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정말 n 수를 해서 A대학교에 삼재가 끝난 뒤 들어갔고,

글쟁이로 사는 게 내 숙명임을 느꼈으며,

힘들면 사주를 들춰 보게 되었다.


나를 숨 막히게 하던 지독한 입시에서 벗어나서야 줄기차게 보고 다녔던 사주의 기억들이 제대로 각인됐다. 믿거나 말거나 넘기려다가도 긍정적인 말 한마디에 기대고 싶어 했던 마음을 누가 알까? 나의 줏대 없던 안쓰러운 시절은 끝났지만 말이다.


나는 이제 시인과 에세이스트, 작사가의 삶을 꿈꾸며  사주를 다닌다. 그러다 보니 이젠 내가 단식으로  팔자를 간단히   있는 경지에까지 올랐다.


아직 경험이 많지 않아 궁금하다. 나는 과연 어느 역술가분의 표현처럼 "재미있는" 사주를 가지고 있는 게 맞을까. 일단 평범하고 무난하게 내 인생이 흘러가진 않는 건 알겠다. 그렇게 늦게 대학에 들어가 놓고, 또 휴학을 2년이나 했거든.


과연 나는 주어진 순리대로 살아가고 있는 걸까?

결국 온전한 나를 만들기 위한 과정을 함께 읽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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