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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도연 Apr 20. 2022

마감 기분

16비트 PC로 페르시아의 왕자를 플레이하는 것처럼

읽기 시작한 지 한 달이 넘었다. 단숨에 털어 버리고 싶다는 강박을 덜어주는 책이다. 매일 몇 장씩 넘기면서 조던 메크너와 호흡을 맞추고 있다. 그가 몰입했던 시간의 기록들이 책상머리에 처박혀 있는 내게도 위안이 된다. 이제는 오래된 친구 같다.

      

조던은 지금 페르시아의 왕자 2 작업까지 얼추 마치고 스페인 살라망카의 아파트 창가에 서있다. 브레이킹 배드의 귀엽고 잔인한 카르텔, 살라망카 패밀리가 떠오르기도 한다. 스페인의 한적한 광장이든 멕시코의 땀내 나는 사막이든, 조금은 부럽다.

     

내게도 포르투 노상 카페에 앉아 샹그리아를 홀짝일 날이 다시 오게 될까. 현실은 이제 겨우 3화를 마쳤을 뿐. 그래도 미친 150컷짜리 세 편을 넘기고 나니 남은 마감은 발가락으로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다. 물론 기분은 또 나를 배신하겠지만.

     

16비트 PC 흑백 모니터로 페르시아의 왕자를 플레이하듯, 걸음마다 조심스럽다. 어디서 칼날이 튀어 나올지, 바닥이 무너질지 알 수 없다. 물약의 정체도 먹어 봐야만 알게 된다. 자파 일당을 소탕하고 공주를 구출할 때까지, 그저 매일 부딪혀 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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