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언령(言霊)과 금기어

Part 4. 해외의 미신들

by 타자

일본 병원에서 입원실 번호를 보면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1호실, 2호실, 3호실... 그리고 5호실. 4호실이 없다.


더 주의 깊게 보면 9호실도 없는 경우가 많다. 왜일까?


4는 '시(し)'로 읽히는데, 이것이 '死(죽음)'와 같은 발음이다. 9는 '구(く)'로 읽히고, 이것이 '苦(고통)'와 같다. 죽음과 고통의 장소인 병원에서, 그것을 연상시키는 숫자를 피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언어 미신은 숫자를 넘어선다. 언령(言霊) 사상, 말에 영혼이 깃든다는 믿음이 일본 문화 전반에 스며들어 있다.


언령(言霊): 말의 힘


언령은 일본 고유의 개념이다. 말에는 영적인 힘이 있어서, 말한 대로 현실이 된다는 믿음.


고대 일본인들은 말을 단순한 소통 도구가 아니라, 현실을 창조하는 힘으로 보았다. 『만엽집(萬葉集)』에는 "말령(言霊)의 도움으로 나라가 번영한다"는 구절이 있다. 좋은 말을 하면 좋은 일이 생기고, 나쁜 말을 하면 나쁜 일이 생긴다.


이 사상은 현대 일본에도 살아 있다.


일본의 스포츠 선수들이 경기 전 "가겠습니다(行ってきます)"라고 말하는 것, 새해에 "올해도 잘 부탁합니다(今年もよろしくお願いします)"라고 인사하는 것 — 이 모든 것에는 언령 사상이 깔려 있다. 말로 선언함으로써 현실을 만들어간다는 믿음이다.


금기어(忌み言葉)의 세계


언령 사상의 이면은 금기어 문화다. 나쁜 말은 나쁜 현실을 불러오므로, 특정 상황에서 특정 단어를 절대 사용하면 안 된다.


결혼식 금기어:

끊다(切る), 나뉘다(分かれる), 돌아가다(帰る) — 이별을 연상시킨다

다시(再び), 거듭(重ね重ね) — 재혼을 암시한다

끝나다(終わる) — 결혼의 끝을 연상시킨다


축사를 할 때 이런 단어들을 무심코 사용하면 큰 실례가 된다. 그래서 결혼식 축사를 위한 '금기어 피하기 가이드'가 따로 존재할 정도다.


수험 금기어:

떨어지다(落ちる) — 불합격을 의미

미끄러지다(滑る) — 역시 불합격

끝나다(終わる) — 시험에서 끝장


한국의 '미역국 금지'와 유사하지만, 일본에서는 언어 자체에 대한 금기가 더 발달해 있다.


병문안 금기어:

죽다(死ぬ), 끝나다(終わる) — 당연히 금기

계속(ますます), 거듭거듭(度々) — 병이 계속되거나 반복됨을 암시

뿌리 깊은(根深い) — 병이 깊어짐을 연상


금기어 문화의 기능


이런 금기어 문화가 왜 발달했을까? 사회언어학자 다카이에 레브라는 일본 언어 행동을 분석하며 몇 가지 기능을 제시했다.


첫째, 배려와 예의의 문화적 표현이다. 금기어를 피하는 것은 "나는 당신의 상황을 인지하고 있고, 그에 맞게 말을 조심한다"는 메시지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의 표현인 것이다.


둘째, 부정적 언급 회피의 심리적 효과다. 나쁜 말을 하지 않으면, 나쁜 것을 떠올리지 않게 된다. 환자 앞에서 '죽음'을 말하지 않으면, 환자도 가족도 그 생각에 덜 사로잡힌다. 언어가 사고를 제한하는 것이다.


셋째, 긍정적 언어 습관의 형성이다. 나쁜 말을 금하고 좋은 말을 권하는 문화는,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언어 습관을 길러준다. 이것은 개인의 심리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분위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의 비교


한국에도 유사한 금기가 있다.


결혼식에서 '가위'를 선물하면 안 된다(자른다는 의미). 새해에 '용'을 언급하면 좋다(용꿈 등 길조). 아이 이름에 '죽'자가 들어간 한자를 피한다.


하지만 일본만큼 체계적이고 광범위하지는 않다. 일본의 언령 사상은 언어 자체에 대한 신비화가 더 강하고, 금기어 목록이 더 구체적으로 발달해 있다.


비교언어학자 장태한의 2008년 연구에 따르면, 일본어에서 금기어를 피하기 위한 완곡 표현이 한국어보다 훨씬 많이 발달해 있다. 예를 들어 일본어에서는 '아내가 임신 중이다'라고 직접 말하지 않고 '아내 배에 아이가 있다'는 식으로 돌려 말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것은 문화적 차이다. 일본 문화의 간접성, 암시 선호, 화(和)의 강조가 언어 미신에도 반영된 것이다.


현대의 변화


물론 현대 일본에서도 언령 사상은 약해지고 있다.


젊은 세대일수록 금기어에 덜 민감하다. 글로벌화와 함께 "그것은 미신일 뿐"이라는 합리주의적 태도가 퍼지고 있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결혼식, 장례식, 병문안 같은 공식적이고 의례적인 상황에서는 여전히 금기어가 지켜진다. 일상에서는 무시해도, 중요한 순간에는 따르는 것 — 이것이 현대인이 미신과 공존하는 방식이다.


다음 화에서는


동아시아에서 남아시아로 이동해보자.


인도는 미신이 일상에 가장 깊이 스며든 나라 중 하나다. 결혼 상대를 점성술로 정하고, 사업 결정을 달력에 따라 내리며, 집을 지을 때 바스투 샤스트라(인도판 풍수)를 따른다.


IT 강국 인도에서 미신이 어떻게 현대 생활과 공존하는지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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