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도 괜찮아?
나는 중고 자취러. 지금으로부터 약 6년 전 첫 번째 자취에서 남은 거라곤 고독이라는 안 좋은 인상뿐. 그러던 내가 자취가 이렇게 간절해질 줄은 몰랐다. 함께 살고 있는 구성원이 변했기 때문이었을까? 아빠와 나. 단 둘만 남은 집에는 따가운 눈초리와 날 선 대화가 쌓여가고 있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독립해 타지에서 지내고 있는 언니와 이 세상에서 독립해 버린 우리 엄마. 우리가 함께했을 때의 순간이 너무나도 그리웠다.
퇴근하고 나니 아빠가 꼬깃꼬깃한 우편물을 건네주며 안 보여주려다 주는 거라는 말을 덧 붙였다. 작년에 신청했다가 예비번호 8번을 받고 기억 속에서 사라진 LH 행복주택 계약 서류였다. 퇴사 고민도 하고 있을 무렵이라 여러 가지 생각에 복잡했다. 단단해도 모자랄 판에 불안정한 독립이라니. 계약하고 이사하는 과정까지 떠올리니 만사가 귀찮았다. 아빠는 출퇴근이 조금 힘들더라도 계속 함께 지냈으면 한다고 말씀하셨다. 언니의 생각은 달랐다. 무조건 이사 가는 것을 추천했다. 배정받은 아파트에서 회사가 아주 가까웠기 때문이다. 단 하나의 장점만으로도 이사 가야 할 이유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부동산 사기 사건이 너무 많아 엄두도 못 내던 때에 어차피 독립할 거면 이번이 기회인 것은 확실했다. 내부 열람 기간에 구경이라도 하고 오자는 마음으로 들어선 집의 첫인상은 깨끗하고, 아늑했다.
고민은 짧고, 굵게. 정해진 기간 안에 계약까지 마무리해야 했기에 결심하자마자 하자 수리, 가스, 인터넷 연결, 대망의 짐 옮기기까지 가족들의 도움으로 속전속결로 진행되었다. 새로운 공간에서의 삶을 살아볼 수 있는 기회이면서 두 번째 독립. 20살 첫 번째 독립은 처참히 실패했지만 달라진 게 많다. 왠지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
단단한 독립, 심히 단단하지 못한 내가 꿈꿀 수 있는 동경의 삶이다. 엄마와 다른 세상에서 살게 되면서부터 휘청휘청 흔들리는 삶을 멈춰 세워줄 나만의 가치관이 필요했다. 즉, 앞으로 어떻게 살 거냐. 여전히 답은 '나답게'. 나다운 건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해보면 주체적인 삶이 떠오른다. 주체적인 것은 자유스러우면서도 자주적인 것이다. 다른 사람이나 무언가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영향 중에서도 나는 이게 제일 좋아라며 하나를 꼽아 들 수 있는 삶. 그리고 선택을 책임지며 살아간다.
단단해지고 싶은 마음은 책임의 무게가 무거울 때는 누군가에게 기댈 줄도 알고, 가벼울 때는 누군가의 힘듦을 대신 등에 업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의지하기 전에 스스로 단단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 부담 없이 기대고 의지하기 위해서다.
어쩔 수 없이 원하지 않는 파도에 밀려오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자신의 모습을 괴리에 빠지지 않고 당당하게 받아들이는 자세를 갖추고 싶다. 단단해지기 위해서 무엇이든 남들보다 나아져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의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는 것부터 시작인 것 같다. 이대로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