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교실에서 배운 관계의 온도

- 가까워지는 순간들

by mjbooks

교사가 되기 전에는 관계란 마음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라 생각했다.

좋은 마음, 진심, 성실함.

그 세 가지면 충분할 줄 알았다.


조금만 애쓰면, 조금만 기다리면 사람과 사람 사이는 결국 이어진다고 믿었다.

하지만 특수학교 교실에서의 관계는 그 믿음에서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

이곳에서 관계는 마음만으로 시작되지 않았다.
관계는 늘 몸의 거리, 감정의 속도, 그리고 타이밍에서 결정되었다.

어떤 날은 아이가 내 옆으로 오지 않는다.
말을 걸어도 고개를 돌리고, 이름을 불러도 반응하지 않는다.

그럴 때 예전의 나는 조금 더 다가갔다.
조금 더 설명했다.
조금 더 설득하려 했다.

교사로서 해야 할 일이라 생각했고, 포기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라고 여겼다.

그러다 문득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스쳤다.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왜…’

그 생각이 시작되는 순간, 관계는 이미 어긋나기 시작한 상태였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가까워지려는 마음이 상대에게는 따뜻함이 아니라 침범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특수학교 교실에서 아이들은 자기 마음의 경계를 말로 설명하지 못한다.

대신 몸으로 말한다.

몸을 돌리고, 소리를 키우고, 물건을 밀치고, 때로는 사람을 밀친다.

그 행동을 ‘관계 거부’로만 읽으면 교사는 금세 상처받는다.

나는 왜 이렇게 애쓰는데, 왜 나를 받아주지 않는 걸까.

하지만 그 행동을 “지금은 이만큼만 가능하다”는 거리의 언어로 읽기 시작하면 관계는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그때부터 나는 관계의 온도를 재는 법을 교실에서 배우기 시작했다.

오늘은 말을 걸 수 있는 날인지, 오늘은 시선만 허락되는 날인지, 오늘은 그냥 같은 공간에 조용히 있어주는 날인지.

관계에는 항상 적정 온도가 있었다.

그 온도를 잘못 읽으면 아이는 무너지고, 나는 빠르게 소진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관계를 “다가가는 일”이 아니라 조율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물러서고, 한 박자 늦추고, 상대가 허락한 만큼만 머무는 일.

아이와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선이 있다면, 그 선을 넘지 않는 연습을 하는 것.

가까워지는 순간은 대체로 아주 조용하다.

아이의 행동이 갑자기 좋아지는 날이 아니라, 문제 행동이 눈에 띄게 사라지는 날이 아니라, 아이가 내 곁을 지나가며 아무 말없이 잠깐 멈췄다가 다시 걸어가는 순간.

그 짧은 멈춤 속에서 나는 안다.

오늘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것을.

교실에서 관계는 항상 완성형이 아니다.
매일 다시 시작되고, 매일 다시 조정된다.

그래서 관계는 성취가 아니라 상태에 가깝다.

오늘 내가 이 아이와 맺은 관계는 어제와 다르고, 내일과도 다를 것이다.

그 변덕스러움 속에서 나는 한 가지를 배워가고 있다.

가까워진다는 건 상대를 끌어오는 일이 아니라, 나의 욕심을 한 발 늦추는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한 발의 여유가 때로는 관계를 가장 멀리까지 데려간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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