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를 흔든 배우 찰리 채플린이 미국에서 매카시 열풍이 불 때 사회주의자로 몰린 것은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영화 <모던 타임스>에서 그는 자본주의의 폐해에 대해 신랄하게 풍자하고 비판하는 연기를 했다. 포드식 공장형 작업 벨트에서 그가 하는 일은 나사를 조립하는 일이다. 팬 베이어 벨트가 계속 돌아가기 때문에 자기 순서를 놓치면 안 된다. 노동자는 작업 시간 내내 잠시도 한 눈을 펴지 못하고 자기 앞으로 다가오는 나사를 조여야 한다. 이 일을 너무나 오랫동안 반복을 하다 보니 그에게는 모든 것이 나사로 보인다. 나중에는 사랑하는 여인의 유두를 보이고서 나사 돌리기를 한다. 이런 채플린의 연기는 자본주의에 대한 다른 어떤 이론 비판 못지않고, 그 영향력도 컸다.
<모던 타임즈>
이 영화를 보다 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는 우리들 모두 끊임없이 돌아가는 벨트 위에 놓인 나사 같은 부품들이라는 느낌이 든다. 일단 이 체제 안에 들어오면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자신들의 위치를 지정받고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 등급에 따라 지위가 달라진다. 물론 지위가 달라진다 해도 이 체제를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체제가 요구하는 기능을 갖추고 역할을 다한 자는 이 체제 안에서 성공한 자이고, 그렇지 못한 자의 등급이나 지위는 낮고 최악의 경우는 루저(loser)로 낙인찍혀 체제 밖으로 몰릴 수도 있다. 하지만 성공한 자들 역시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기계의 부품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가 없다. 부품으로서의 정체성을 인정할 때만이 안락한 가정과 사회적 지위를 유지할 수가 있다. 그것을 거부하는 순간 그 역시 이 체제 밖으로 내팽개쳐질 가능성이 상존해 있다.
나는 오래전부터 나 자신을 아웃사이더(outsider) 혹은 경계인(marginal man)이라고 규정지어 왔다. 내가 이 체제 혹은 이 사회의 중심에 거주한 적이 없었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런 나의 관념은 자리 잡지 못한 것에 대한 박탈감 때문일 수도 있고, 이 체제 안에 뿌리내리지 못할 것이라는 숙명적 사고 때문일 수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 체제에 대한 불신으로 끊임없이 이 체제 밖으로 탈출을 도모하기도 했다. 하지만 좋은 싫든 나는 이 체제에 중심에 자리를 잡지 못하고, 그렇다고 이 체제를 탈출하지도 못한 상태로 주변부에서 얼쩡 거리고 있을 뿐이다. 때문에 나는 하나의 정체성을 인정받기보다는 안과 밖을 넘나드는 경계인의 장점도 가지고 있다. 게다가 그나마 하던 대학 강의도 그만두다 보니 이 체제에 대한 최소한의 소속감도 없는 편이다. 말이 좋아서 프리랜서(freelancer)이지 한 마디로 생계 수단으로부터의 자유나 다름없고, 죽도록 먹거리를 찾지 못하는 한 생존 가능성이 의심받는 처지일 수밖에 없다.
채플린은 경찰의 추격을 받으면서 도망치다가 비슷한 처지로 도망을 다니는 가난한 소녀를 만난다. 둘은 바로 사랑에 빠지지만 여전히 경찰의 추적을 받는다. 하지만 이제 홀로 쫓겨 다니는 예전과 같지는 않다. 먼동이 트는 새벽에 둘은 손을 꼭 잡고 희망을 찾아간다. 사랑은 채를 린이 자본주의 체제를 벗어나는 하나의 탈출구라 할 수 있다. 그는 마르크스처럼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통해 자본주의 체제를 극복할 힘도 없고 자신도 없다. 그런 그가 이 체제를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낭만적 사랑이다. 몸은 이 체제 안에 갇혀서 매일 같이 생존을 걱정해야 하지만, 둘의 낭만적 사랑은 이 체제 어디에도 갇히지 않는다. 이들의 사랑은 이 체제를 벗어날 수 있는 강력한 힘이다. 이 현실에 뿌리를 두지 않는 낭만주의(romanticism)는 영원히 동경할 뿐이다.
나 역시 자본주의 체제를 벗어날 힘은 없다. 하지만 더 이상 힘차게 돌아가는 자본주의의 팬벨트 위에 묶여 있지 않기 때문에 나는 얼마든지 이 체제를 벗어나는 상상을 할 수가 있다. 아웃사이더나 경계인은 존재 조건상 어느 정도는 그것이 가능하다. 나는 출근하지 않아도 되고, 점심을 누구와 같이 할까, 퇴근 후에는 누구와 어울려 술을 마셔야 하는 고민도 하지 않는다. 책상 위에서 노트북을 켜는 순간 나는 공간적 구속을 받지 않고, 화엄의 인드라망과 같은 네트워크를 누구의 구속도 받지 않고 넘나들 수 있다. 나를 감시하려는 자도 쉽게 할 수는 없다. 나는 나로서, 언제든 이 체제를 넘나들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나 역시 이 체제 안의 부품이지만, 나는 최소한 이 부품에 대해 반성하면서 초월의 꿈도 꾸고 있다.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나는 아웃사이더이자 마지널 맨으로 꿈을 꾸고 초월을 한다. 채플린이 사랑을 통해 탈출했다면, 나는 글쓰기로 탈출을 시도한다.